황분희씨(73)가 다섯 살 된 손자를 불렀다. “여기 소변 좀 받아와 봐. 할머니가 쓸 데가 있어서 그래.” 두달 뒤, 소변 검사결과가 나왔다. 몸무게 16㎏인 손자의 소변에서 리터당 17.3베크렐(Bq/L)의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 반면 울산으로 출퇴근하는 사위의 소변에서는 리터당 6베크렐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
검사지를 든 손이 떨렸다. 손녀·손자가 태어났을 때 “여기 들어와서 살라”고 권한 건 황씨였다. 황씨가 사는 곳은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나아리는 월성원전(월성 1·2·3·4호기, 신월성 1·2호기)을 끼고 있는 마을이다. 주민들은 가깝게는 원전에서 915m 떨어진 곳에서 산다. 원전에서 직선거리 914m까지는 거주 제한구역이다.
■5세 아이 소변에서 17베크렐 검출
황씨는 원전에서 직선거리 1.2㎞에 산다. 1980년대 중반에 나아리로 이사를 왔다. 앞에는 바다가, 뒤로는 산이 있는 ‘배산임수’에 반했다. 땅 1000평에 집과 축사를 지었다. 작은 밭도 가꿨다. 손녀·손자를 키우면서는 축사를 했던 자리에 아이들을 위해 온갖 과일나무를 심었다.
핵무기가 무섭다는 건 알았지만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색깔도 냄새도 없는 깨끗한 에너지, 안전한 에너지, 효율적인 에너지라고 믿었다. 민간기업이면 몰라도 정부가 국민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었다. 황씨를 비롯한 마을 사람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지냈다.
살기도 좋았다. 특히 자영업자들에게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좋은 시절이었다. 월성에 가면 돈을 쓸어담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던 때였다. 하나 착공이 끝나면 또 하나 착공이 시작됐다. 그렇게 1990년대에 월성 2·3·4호기가 지어졌고, 2000년대에는 신월성 1·2호기가 착공에 들어갔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홍희씨(55)도 그때 나아리에 들어왔다. 바다가 보이는 마을, 거주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데 원전 경기 덕에 돈은 잘 돌았다. 그러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났다. 원전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나는 모습을 뉴스로 봤다. “일본이 우리보다 후진국도 아닌데… 우리는 괜찮을까?”
후쿠시마 이후, 기자들이 나아리를 비롯한 양남면을 찾았다. 기자들은 그동안 듣지 못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원전과 마을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곳은 없다, 색깔도 없고 냄새도 없어 누출돼도 모른다, 저선량이라도 방사능에 계속 노출되면 암에 걸릴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정부는 계속 괜찮다고 했다. 외부에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느끼는 건 달랐다. 동네에 많은 암환자가 원전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나아리 마을 중심가에는 두 집 건너 암환자가 있었다. 가족력도 없는 중학생 2명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원전과의 상관관계를 인정받은 건 갑상선암 뿐이다. 1심에서는 승소했지만 2심과 3심에서는 패소했다. 1심 재판부는 2014년 10월 고리원전 인근에서 20여년을 살다 갑상선암에 걸린 박금선씨가 한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박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원전 주변지역(5㎞) 이내에 거주하는 여성의 경우 갑상선암 발병률이 원거리(30㎞) 거주 여성보다 2.5배 높다는 서울대학교 의학연구원의 ‘원전 종사자 및 주변지역 주민 역학조사 연구’(2011)결과를 인용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기준치 이하라는 한수원 입장에 힘을 실어줬다.
■저선량 내부피폭 연구는 불충분하다
주민들은 판결을 믿지 못한다. 동네에 갑상선암은 물론이고 각종 질환을 앓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는 것이다. 양남면에서는 갑상선암이나 질환을 앓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황씨는 2012년 갑상선암을 진단받아 수술했고, 남편은 갑상선 항진증을 앓고 있다.
나아리에서 소주방을 운영하던 박모씨(67)는 2011년 갑상선암을 진단받았다. 그는 30대 후반, 3년 동안 발전소에서 건물을 청소했다. ‘중요한 곳’에 들어갔다 나오면 방사능 수치를 측정했다. 옷에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이 묻어 있으면 측정기에서 소리가 울린다고 했다. 소리가 울린 적은 없다.
수렴1리에서 횟집을 하는 신외자씨(73)도 비슷한 시기 갑상선암을 진단받았다. 신씨의 횟집은 원전 직선거리 5㎞에 자리한다. 의사는 신씨에게 “혹시 바닷가 쪽에 사십니까? 희한하게 바닷가 쪽에 사는 분들이 갑상선에 문제가 많네요”라고 말했다. 얼마 뒤, 아들(당시 40세)도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마을에는 “해녀들이 떼로 갑상선암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주민들은 ‘기준치 이하’라는 말에 분노한다. 신씨는 “기준치 이하 방사능은 몸에 좋나? 그렇게 좋으면 왜 계속 경주에 짓노. 서울에 가져가뿌라”라고 말했다. 신씨가 갑상선암 수술 흔적이 남은 목 부분을 내보이며 말했다.
분노에는 근거가 있다. 실제 인공방사성 물질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80년도 되지 않았다. 그 피해를 규명하는 연구도 일부만 진행된 상태다. 신씨 모자와 황씨, 박씨를 비롯한 원전 인근 주민 중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618명은 한수원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진행 중이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방사선에 의한 건강피해를 추정하는 계산식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 이후 생존자들을 연구하면서부터인데, 이들은 핵무기 폭발 때 순간적인 고선량의 방사선 외부 피폭과 방사능 낙진을 맞았다”고 말했다.
양이 의원은 “하지만 원전 주변 주민들의 피해는 다르다”며 “주민들은 저선량 방사선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내부피폭됐는데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비하다. 저선량 내부피폭에 의한 암 발생은 밝혀지지 않은 점이 많기 때문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인과관계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환경정책기본법 제44조 제1항은 ‘환경오염의 피해에 대한 무과실책임’을 정하고 있다. 변영철 변호사는 “공해물질이 배출돼 어느 곳에 도달했는데 그곳에서 피해가 발생했다면, 기업측이 해당 물질이 피해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인과관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는 게 핵심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박금선씨 2심 재판부는 “저선량 방사선 피폭과 암 발병 여부를 입증할 만한 연구결과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박금선씨를 대리한 변 변호사는 “연구결과가 없기 때문에 나온 법리를, 연구결과가 없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618명 공동소송도 대리하는 변 변호사는 1980년에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이 누출된 것을 추가로 확인했다.
■“경주에 오만 더러운 것을 다 갖다놨어요”
주민들이 도저히 못 살겠다고 생각한 건 2016년 지진을 겪으면서다. 2016년 9월 12일 경주에서 규모 5.1, 5.8의 강력한 지진이 잇따라 발생했다. 규모 5 이상의 두 지진이 연달아 같은 지역에서 발생한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한수원은 월성 1·2·3·4호기를 모두 가동 중단했다.
“지진이 나면 건물 밖에 나가라고 하는데, 생각해보니까 밖에 원전이 있잖아? 핵발전소 사고가 나면 집에 있으라고 배웠거든. 밖으로 나가야 하는지, 집 안에 있어야 하는지 판단이 안 되니까 미치겠는 거야.”(황분희) “아이고 유리창에 쩍쩍 금이 가는데 유리창 보담도(보다도) 저게(원전) 터질까봐 어찌나 무섭던지….”(신외자)
이장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2010~2020년 6월) 동안 월성원전 30㎞ 이내에서 226건의 지진이 발생했다. 반면 한울원전 지역에서는 15건, 고리 6건, 한빛 1건 등의 지진이 발생했다.
주민들은 더 적극적으로 이주를 요구하고 나섰다. 원전 때문에 재산권 행사는 불가능하고 건강도 염려되니 이주만이 답이라는 것이다. 황씨는 집과 땅을 내놓은 지 오래됐지만 보러오는 사람은 없다.
최근에는 맥스터 건설까지 논란이다. 한수원은 ‘고준위 핵사용후 연료 저장소’라고 부르지만, 주민들은 ‘핵쓰레기장’이라고 부른다. 통상 고준위핵폐기물의 밀폐·격리보관 기간은 10만년으로 본다. 처리 방법을 알아낸 국가는 하나도 없다.
양남면에서는 반대 의견이 높지만(55.8%), 정부는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임시 저장시설 포화율이 97%에 이르러 2022년 3월까지 증설하지 못할 경우 원전을 멈춰야 한다. 복잡한 설명 뒤에 붙는 한수원의 결론은 한결같다. “안전하다.”
이재걸 고준위핵폐기장건설반대 양남면대책위원회 사무국장(56)은 “안전해야죠! 고준위 핵폐기물이 들어 있는데 당연히 안전해야지”라며 “평소에는 당연히 안전해야 하고 문제는 지진이나 전쟁이 나도 안전하냐는 겁니다”라고 물었다.
이 사무국장은 시골 바닷가에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10년 전 양남면 신서리에 들어왔다. 신서리는 월성원전에서 6~7㎞ 정도 떨어져 있다. 남은 생을 지낼 계획이었기에 한옥을 직접 지었다. 나아리만큼 원전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지만 맥스터는 다르다는 생각이다.
“원전은 언젠가 멈추겠지만 핵쓰레기장은 영원히 남아요. 지금도 원전에 중저준위폐기장이 있는데 고준위핵폐기물을 또 들여온다? 경주에 오만 더러운 것을 다 갖다놨어요. 여기 얼마 안 되는 시골 사람들, 이렇게 살다가 죽으라는 말로 들려요. 전기는 도시에서 다 쓰면서….”
‘2019년도 지자체별 전력 발전량 및 판매량’을 보면 원전이 밀집한 부산, 경북, 전남 등의 전력 자급률은 각각 180%, 180%, 172%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도시의 전력 자급률은 대전(1.78%), 서울(3.92%), 광주(6.53%) 등이다. 전기는 대도시에서 쓰고 고통은 변방에서 진다는 주민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주민들은 말한다. “내보내달라. 우리를 내보내주거나, 저걸 내보내라.”
“서울 사람들은 일본산 생선에 방사성 물질 1베크렐만 나와도 난리가 나고 도로(서울 노원구)에서 방사능 나온다고 온 나라가 떠들썩했잖아요. 내 손자는 몸에 17베크렐이 들어 있어요. 며칠 지나면 몸에서 빠져나간다고요? 그러면 뭐합니까? 우리는 또 먹는데… 우리한테 ‘오버’한다고 할 거면 서울에 가져가세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