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윤석열 인터뷰

② “청와대가 지시하니까 한다는 건 한국 사회에서 근절돼야”

2021.07.09 08:00 입력 2021.07.09 14:33 수정

야권 대선주자로 나선 윤석열 전검찰총장이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박민규 선임기자

야권 대선주자로 나선 윤석열 전검찰총장이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박민규 선임기자

윤 전 총장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태어났지만, 친가의 고향은 충남 논산 노성면이고, 외가는 강원도 강릉을 본거지로 한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다. 윤 전 총장은 서울대 법학과 79학번으로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지만 2차 시험에 연거푸 떨어졌고 1991년 9수만에 합격했다. 35세에 초임검사로서 대구지방검찰청에 첫 부임했다. 이후 특수통 검사로 잔뼈가 굵었다.

- 법대 진학은 검사가 되고 싶어서였습니까.

“아니에요. 20대에 판검사를 꿈꾼 적은 단 한번도 없었어요. 법대에 진학한 건 부친의 영향이 컸어요. 물리학이나 수학, 혹은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부친이 경제학이 너무 구름 잡는 이야기가 많다면서 구체성이 있는 학문을 하면 좋겠다고 하셨거든요. 법대를 가더라도 경제공부도 해서 나중에 경제법이나 법경제를 연구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그래서 교수 할 생각으로 들어갔어요.”

- 그런데 어쩌다 검사가 됐나요.

“매년 100명 정도 뽑던 사시합격자 수를 1981년인가 300명 정도로 늘렸어요. 사시도 합격 못하고 강단에 서면 좀 그렇지 않겠나 싶어 사시 붙고 유학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차 합격에 9년이나 걸리면서 꼬이고 말았지만요(웃음). 1980년대 중반엔 연수원 마치면 변호사 하려고 했어요. 돈 벌면 시사 월간지도 발행해볼 생각이었죠. 그런데 제가 검찰 시보를 한 수원지검의 선배들이 환송회 때 ‘윤시보가 검찰 적성이 맞으니 졸업시험 잘 쳐서 꼭 우리 회사로 오라’더라고요. 그렇게 어찌어찌하다 검사가 된 거예요.”

- 검사 일은 재미 있었습니까.

“오래 안 할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했죠(웃음). 제가 1994년 만 서른세살에 임관했는데 우리 동기들 중 2, 3번째로 나이가 많았어요. 그래서 몇년 하고 관둔다 하고 열심히 했는데, 그러다보니 늪에 빠져가듯 검사생활에 취해가더라고요. 천직이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 2002년에는 어쩌다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태평양의 변호사로 변신했나요.

“그때는 신승남 검찰총장이 옷 벗고 그 동생이 구속되고 소위 특검이란 것이 처음 생기고 하면서 검찰이 많이 어지러웠어요. 우리 부가 각종 게이트의 중심이 돼 수사도 하고 수사도 받는 상황이었죠. 그때 제가 굉장히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무엇보다 수사는 정확히 해놔야 한다는 것, 내가 책임지는 것이지 누가 나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죠. 그 시기에 당시 법무법인 태평양으로 이직한 이명재 전 서울고검장이 저를 많이 당겼어요. 나이도 있고, 장가도 가야 하지 않느냐는 현실적 이야기를 하시면서 같이 일하자고 하셨거든요. 혹했죠.”

- 그런데 왜 1년 만에 검찰에 복귀했습니까.

“이명재 선배가 제가 옮겨간지 얼마 안돼 검찰총장으로 가셨어요. 그런 어느날 제가 대검 중수부 산하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에 저녁시간에 들어갈 일이 있었어요. 순간 엘레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중국집 ‘철가방’의 짜장면 냄새가 코끝을 확 자극하면서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 왜요.

“나중에 철야수사라는 게 없어졌지만 제가 서울지검 검사로 일할 때는 밤샘수사가 기본이었어요. 조사하는 사람도 월요일 새벽에 나와서 금요일 밤에 귀가하는 식이니 죽을 맛이었죠. 잠을 쫓으려고 담배도 많이 피우고, 커피도 많이 마셨어요. 미역국이나 북어국은 속이 미슥거려서 못 먹었겠어서 당시 서울지검 앞에 ‘취성루’라는 중국집에서 아점으로 짜장면을 시켜 먹었어요. 그런데 막 비벼서 먹으려고 하면 부장이나 3차장이 찾아요. 보고하고 돌아오면 짜장면이 불어 있죠. 커피포트에서 끓인 물을 부으면 곱배기가 되는데, 밤새 못먹었으니 얼마나 맛있겠어요. 검찰이 그리웠던 거예요.”

- 1981년 서울법대 동아리 형사법학회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모의형사재판을 했다죠. 거기서 검사 역을 맡아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전두환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고요.

“제 기억이 맞다면 모의재판은 5·18 직전인 1980년 5월8일에 학생회관 2층 라운지에서 밤새워 진행됐어요. 보도통제로 정확한 정보가 없었고, 막연히 전두환·노태우 이런 사람들이 군사반란을 일으켰다는 소문만 듣던 때였어요. 당시 동아일보에 입사한 선배들로부터 정보를 듣고 온 법대 4학년생들이 궐석 모의재판을 계획했는데 저는 재판장을 맡았어요. 고 신현확 총리께 너무 죄송했지만 잘못된 정보로 인해 그분이 쿠데타 수괴인 줄 알고 사형선고를 내렸어요, 전두환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했고요.”

- 그 모의재판으로 인해 강릉으로 피신까지 했다면서요.

“다음날 호외가 돌아다녔어요. 신군부 세력에 대한 법과대생들의 궐석재판이 있었다는 내용이 자세히 나와있었고 재판장인 윤석열 학생이 이렇게 선고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어요. 민주화가 안 되면 어디 끌려갈 수 있겠구나 싶었죠. 5월17일에 보안사령부에 근무하는 먼 친적이 집에 전화를 걸어 석열이를 빨리 피신시키라고 했대요. 그래서 외가의 친척집으로 석달간 피신했다가 학교에 돌아가도 된다는 소식을 받고 복귀했죠.”

야권 대선주자로 나선 윤석열 전검찰총장이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박민규 선임기자

야권 대선주자로 나선 윤석열 전검찰총장이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박민규 선임기자

윤석열이라는 이름 석자가 대중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 건 2013년 초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직전 대선에서의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때였다. 수사팀장이었던 그는 정권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수사를 밀어붙였다. 박근혜 정부는 ‘혼외자’ 문제를 샅샅이 털어 채동욱 검찰총장을 불명예 퇴진시켰다. 그해 9월 국정감사장에서 윤 전 총장은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후 중징계를 받고 이듬해 1월 대구고검 평검사로 좌천 발령을 받았다.

- 2012년 국정원 여론조작 수사의 팀장을 맡으면서 운명이 크게 출렁거렸습니다.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당연하죠.”

- 왜요

“정보기관 그것도 국가안보기관이 여론을 조작해 자유선거를 방해하는 것이나, 국가안보에 써야 할 안보자원을 정치권력이 사적으로 전용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니까요. 또 국정원이 대통령에게 국내 정치나 중요 행정에 대해 보고하고 그게 내각에 전달돼 어떤 행위가 이뤄지면 책임정치에 반하는 것이죠. 출발이 어디서 나온 건지도 모르고 청와대가 지시하니까 한다는 건 한국사회에서 근절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 좌천된 후 선후배 동료들로부터 거의 왕따를 당했던 것으로 압니다.

“저를 불편하게 여겼죠. 그래서 혼밥을 많이 했어요(웃음).”

- 검찰을 그만둘 생각은 안했습니까.

“박근혜 정부가 4년이나 남았으니, 집사람에게 그냥 사표 내겠다고 했어요. 그동안 좋은 보직받고 잘 나가다가 고검 발령받고 그만두면 사람들이 욕하지 않겠냐며 말리더라고요. 무엇보다 국정원 댓글 수사팀 후배들 때문에 나올 수가 없었어요. 제가 그만두면 자기들도 같이 사표 쓰겠다면서 댓글조작 사건이 대법원 선고까지 가는데 2년 걸리니 그때까지만 자리를 지켜달라고 했어요. 제가 버티고 있어야 자기들을 함부로 못 대한다니 어쩌겠어요.”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은 한번의 파기환송 끝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18년 국정원법 위반, 공직선거법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 법정구속되며 마무리됐다)

- 2014년 재보궐 선거 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2016년 4월 총선 때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양정철 전 비서관을 통해 공천을 제의했다죠. 왜 거절했습니까.

“저는 선출직 정치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제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또 제가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면 정치적 성향 때문에 국정원 댓글 사건을 어떻게 했다는 말이 나올 것 아닙니까. 게다가 수사가 한창 진행중인데 아무리 제가 (댓글 수사팀에서) 직무배제를 당했다고 해도 후배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 인터뷰 ③편이 이어집니다

[단독] 윤석열 인터뷰(1) 문정부 관련 사건들 겪어보고 ‘이권카르텔’·‘국민약탈’ 등 출마선언서 가감 없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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