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올해 한국 콘텐츠에 55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지난 2월 밝혔다. 2016년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넷플릭스가 2020년까지 5년간 한국에 투자한 금액은 7700억원. 올해는 5년간 투입한 액수의 70%가 넘는 금액을 투자한다. 넷플릭스는 그간 드라마에 집중한 제작 역량을 영화는 물론 예능, 시트콤, 다큐멘터리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넷플릭스가 K콘텐츠에 주목하는 이유는 가성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신과 함께>,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을 제작한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한국 콘텐츠가 매력적이라는 사실이 최근 몇년새 증명되면서 지금은 미국 콘텐츠 다음으로 세계시장에서 영향력이 크다”고 말했다. 현재 넷플릭스가 투자하는 미국 드라마는 회당 평균 제작비가 100억원이 넘는다. 반면 한국 드라마의 회당 제작비는 <킹덤> 20억원, <스위트홈> 30억원, <오징어게임> 22억원 수준이다. 원 대표는 “그런데 반응은 뜨거우니 당연히 K콘텐츠에 주목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9년 공개된 <킹덤>을 시작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제작된 <인간수업>, <스위트홈>(이상 2020)과 <D.P.>, <오징어게임>(이상 2021)은 잇따라 세계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영화 <#살아있다>(2020)와 <승리호>(2021)는 전 세계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달성했다.
1997년에 설립된 넷플릭스 전 세계 가입자 수는 2021년 6월 기준 2억900만명. 이중 미국 가입자 수는 7400만 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아 미국 통합 부문 차트인은 흥행의 척도가 된다. 한국의 넷플릭스 가입자 수는 2021년 5월 기준 400만 명이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신규 가입자 유입효과가 있는가, 기존 가입자가 이탈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되느냐가 중요하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한국은 콘텐츠를 자체 제작할 수 있는 손에 꼽히는 스토리텔링 강국”이라며 “오랜 시간 다져진 뛰어난 역량을 기반으로 탄생한 한국 콘텐츠들은 넷플릭스의 성장에도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이는 다양한 장르의 K콘텐츠는 글로벌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IT 강국이다. 원동연 대표는 “한국은 웹툰·웹소설 플랫폼이 발달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원천 소스가 무궁무진하다”며 “스토리 비즈니스의 생태계가 조성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배경으로 그는 “1960~70년대에 비해 막강해진 국력 하에서 교육받으며 상상력을 키워온 뛰어난 창작자들”을 꼽았다. 이는 비단 스토리텔링뿐 아니라 시각효과 등 다른 분야까지 아우른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다양하고 개성 있는 소재 속에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보편적 정서”도 K콘텐츠의 매력으로 꼽는다. 그는 “다른 나라의 콘텐츠들이 사건에 집중한 전개를 보여준다면, 한국의 스토리텔링은 사건보다는 그것에 대한 감정을 디테일하게 조명하기 때문에 시청자들도 장르를 불문하고 쉽게 공감하고 반응한다”고 말했다.
한국 창작자들의 시나리오는 1순위로 넷플릭스로 몰린다. 세계 2억명의 시청자가 있기에 창작자가 흥행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로부터 받는 제작비도 한국 드라마 평균 제작비에 비하면 월등히 높다. 제작사는 제작비의 10~20%를 보장받는다. 한국 공중파 방송이나 극장에서 꺼릴 장르나 소재도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흥행에 따라 제작사가 받는 추가적인 인센티브는 전혀 없다.
넷플릭스 편중은 장기적으로는 한국 콘텐츠 시장을 종속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원 대표는 “현재 티빙, 웨이브 등 국내 OTT 플랫폼이 있지만, 로컬 플랫폼이 더 경쟁력을 가지고 해외로 진출해야 한국 콘텐츠가 넷플릭스에 종속되지 않는다”며 “정부나 기업은 미래의 우리의 먹거리는 콘텐츠 비즈니스임을 인지하고 성장을 도모할 전략을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