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미군 폭격때 110명 희생 ‘월미도 원주민 희생자 위령비’ 제막

2021.11.02 16:01 입력 2021.11.02 16:06 수정

인천 중구 월미공원에 건립된 ‘월미도 원주민 희생자 위령비’|인천시 제공

인천 중구 월미공원에 건립된 ‘월미도 원주민 희생자 위령비’|인천시 제공

인천상륙작전 당시 미국 폭격으로 희생된 인천 월미도 원주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위령비가 2일 제막됐다.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인천상륙작전때 월미도 폭격으로 원주민들이 희생되고, 재산상의 피해를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권고한지 12년만이다.

진실화해위원회와 인천시는 이날 월미공원에서 ‘월미도 원주민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위령비에는 ‘1950년 한국전쟁 인천상륙작전 당시 유엔군 소속 미군 폭격으로 월미도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원주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한 신원이 확인된 10명의 실명 이외에 희생자가 100명이라고 적혔다.

한국전쟁에서 월미도는 연합군의 교두보로 선정돼 1950년 9월10일과 12일 미군은 월미도를 폭격했다. 이로 인해 원주민 110여명이 희생됐다. 1953년 휴전이 이뤄졌지만, 원주민들은 고향으로 귀환하지 못했다. 월미도가 미군기지와 한국 해군기지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생활터전을 잃은 월미도 주민들은 1997년 귀향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2004년부터 고향을 돌려달고 호소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8년 한국전쟁 당시 월미도 폭격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주민들의 겪은 재산상의 피해는 국가가 배상하도록 권고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한국전쟁 기간 중 월미도에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고, 뒤늦게나마 이들을 추도하기 위해 위령비를 건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원장은 인천지역 진실규명 신청 사건 중 ‘실미도’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실미도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1·21사태(김신조 사건)에 대응하는 북한 침투 작전을 위해 1984년 창설된 실미도 부대에서 훈련받던 24명의 공작원들이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탈출해 서울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군·경과 대치하면서 공작원 20명, 경찰 2명, 민간이 6명이 사망했다,

생존 공작원 4명은 군사재판을 통해 1972년 사형이 집행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공작원들이 실미도에 감금돼 가혹행위를 당하는 등 인권침해을 당하고 사건을 진상을 왜곡·축소·은폐 등 조작한 것으로 보고 진실규명에 나선 것이다. 실미도 사건은 2006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하다 진실화해위원회로 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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