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생이던 1990년대에도 “너는 꿈이 뭐니” 하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어쩌면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한 모범답안은 대통령, 의사, 변호사, 교사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답하고 나면 그들은 대견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거나 용돈을 주거나 하고 곁에 선 부모님은 흐뭇하게 웃는다. 그 시절의 참 흔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나의 꿈은 꽤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다. 되고 싶은 것을 3개(씩이나) 말해보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1) 농부, 2) 어부, 3) 사냥꾼, 이라고 답한 이후로 꾸준히 그랬다. 모두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었고 어느 교사에게는 호된 꾸중을 들은 일도 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그러나 나는 꽤나 진지했다. 지금에 와서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우선 농부가 되어 내가 기른 농작물을 수확하고 싶었고, 어부가 되어 바다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엄청난 것을 잡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사냥꾼에 이르면 그저 설레는 것이었다. 저 산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잡을 때까지 산에 있으면 된다. 그게 참된 직장인의 자세다. 그래도 농부-어부-사냥꾼으로 순위가 매겨진 것을 보면 어린 시절에도 조금은 더 안정적이라 생각되는 것을 고른 듯하다. 나중에 한국의 산에는 맹수가 거의 멸종했으며 허가를 받아 꿩이나 멧돼지를 잡는 게 고작이라는 것을 알고 국어 교사라든가 작가라든가 하는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꿈을 가지게 되긴 했으나, 사실 지금도 나의 꿈은 어부나 사냥꾼에 닿아 있다.
코로나로 인한 집합금지가 사라지고 중·고등학교에서 인문학 강연 요청이 종종 들어온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는 ‘꿈’에 대한 것이다. 저희는 어떤 꿈을 꾸어야 하나요, 하는. 며칠 전에도 고2 학생이 나에게 따로 찾아와 물었다. “다들 꿈을 가지라고 하고 저도 찾고 싶은데 못 찾겠어요. 어렵고 막막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는 이들에게 꿈을 꾸라고 말한다. 그런 게 없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그러나 그들의 꿈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 목적지를 다 정해두고 속도와 방향까지도 통제하고자 하는 이들이다. 내 어린 시절의 모범답안과 그들이 듣고자 하는 모범답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듯하다. 그러나 그들의 전공까지 정해두고 입시를 위해 학원으로 내모는 지금의 현실에서, 혹은 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누군가를 돌보아야 할 그들의 몸과 마음에서, 꿈이라는 것이 과연 피어날 수는 있는 것인가.
우리는 청소년에게 우선 꿈을 꿀 시간을 주어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한다고 알려주거나 무엇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어울리는 꿈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그들의 시간을 사는 방법도 있겠다. 너희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면 그만큼을 시급으로 계산해서 줄게, 최저시급보다 많이, 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도 누군가가 “그렇게 살아 언제 성공할래” 하면 반감이 들 뿐이지만 “그렇게 살아서 언제… 이걸로 옷이라도 좀 사 입어라” 하고 100만원을 준다면 진심에 감화되고 말 것이다.
비영리단체 유스보이스에선 지금 TMI 프로젝트에 참여할 청소년을 모집 중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네가 꿈을 꾸기 위해 고민하겠다면 그 시간을 우리가 살게’라고 요약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근래 들은 가장 재미도 의미도 있는 일이어서 공유해 두고 싶다. 이 글을 읽은 청소년이라면 한번쯤 찾아보면 좋겠다.
나의 여섯 살 아이의 꿈은 ‘박병호’라는 것 같다. 그와 함께 야구장에 갔을 때 KT위즈의 박병호 선수는 두 개의 홈런을 쳤다. 나는 다만 아이가 그런 멋진 꿈을 꾸기를, 그리고 나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스스로 꿈꾸는 시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의 아이도, 당신도, 당신이 사랑하는 누군가도 자신의 타석에 설 수 있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