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생활에서 시작합니다…생활이 예술보다 훌륭하죠”

2018.04.01 21:49 입력 2018.04.01 21:51 수정

공공미술 프로젝트 위해 ‘모이자 모으자’ 행사 최정화 작가

작품 재료 구하기 위한 과정 “시민들 참여 그 자체가 작품활동”

“9월 전시 땐 ‘저기 내 그릇이 있네’ 할 것이고 작품은 그들의 것”

최정화 작가가 지난달 3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서 진행된 ‘모이자 모으자’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행사는 최 작가의 신작 공공미술 프로젝트 ‘민들레 민(民)들(土)레(來)’ 일환으로 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최정화 작가가 지난달 3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서 진행된 ‘모이자 모으자’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행사는 최 작가의 신작 공공미술 프로젝트 ‘민들레 민(民)들(土)레(來)’ 일환으로 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서 작가 최정화가 몸을 구부린 채 그릇들을 주어 여기저기 옮겼다. “이것들을 모아 꽃을 만들 겁니다.” 최정화가 말했다. 밥그릇, 국그릇, 냄비, 양푼, 사발, 솥, 양동이, 함지 같은 갖가지 그릇을 시민들에게서 모아 8.4m 높이 조각을 만들려고 한다. 최정화 너머로 ‘모이자 모으자’라는 현수막을 내건 대형 천막 부스가 보인다. 그릇 접수처다. 무궁화, 연꽃, 장미, 국화 등 여러 꽃 작품을 만든 그가 이번에 선택한 꽃은 민들레다. 지난달 31일 오후 2시 서울관 마당에서 열린 ‘모이자 모으자’ 행사는 신작 공공미술 프로젝트 ‘민들레 민(民)들(土)레(來)’ 과정 중 하나다.

“생활과 예술이 밀접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겁니다. 생활이 예술보다 훌륭하죠. ‘생생활활’(生生活活). 이런 말을 계속해왔어요. 예술은 생활에서 시작합니다.” ‘생생활활’은 최정화의 미술 철학이다.

플라스틱 제품이나 재래시장 물건 같은 흔히 볼 수 있는 것들, 누구에게나 익숙한 것들을 예술 영역으로 끌어들여온 그는 민들레 프로젝트에서 생활 그릇을 작품 소재로 택했다. 단순히 작품 재료로 쓰는 건 아니다. 시민들이 집에서 다 썼거나 또는 각별히 의미 있는 그릇을 모아 가져오는 것 자체가 작품 참여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최정화는 이 그릇을 갖고 민들레 꽃과 홀씨를 모티프로 대형 민들레꽃 조각을 만들어 서울관 마당에 설치한다. 조각은 나무그늘 같은 휴식처가 된다. 한 시민은 매직으로 ‘우리 가족, 엄마 아빠 사랑해’라는 글을 적은 스테인리스 식판을 가져왔다. 이 프로젝트엔 ‘관계 만들기’ ‘장소 만들기’ ‘일상 만들기’ 의미가 들어간다.

최정화는 행사 내내 그릇 사이를 옮겨다녔다. 바둑돌 놓듯 스테인리스는 스테인리스끼리 모았다. 탑도 여러 개 만들었다. 양은 찜통과 함지 같은 큰 그릇으로 기단·탑신부를 쌓고 그 위에 작은 밥그릇을 얹은 탑이다. “이대로 전시해도 될 것 같아.” 최정화가 말했다. 걸음마를 막 뗀 아기가 탑 맨 위 밥그릇을 고사리손으로 들어 바닥에 내던졌다. 어린이들이 그릇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최정화가 웃으며 이 장면을 쳐다봤다.

최정화는 이날 오전 9시30분 행사 시작부터 나와 마당에서 그릇을 매만지고, 시민들과 인사하며 기념 촬영에 응했다. 이 모든 게 이 공공미술에 포함된다. 이날 현장에 나온 박영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그간 최 선생이 해오던 작업의 연장이다. 그는 항상 새로운 공공미술을 보여준다”고 했다.

‘모이자 모으자’는 처음이 아니다. 최정화는 일본 가고시마와 요코하마, 영국 런던과 리버풀 등 해외 여러 곳에서 이 행사를 실시했다. 2008년 서울디자인올림픽 때 잠실 경기장 외벽에 전시한 ‘플라스틱 스타디움’ 작품도 시민들의 플라스틱 생활재를 모아 만든 것이다. 그 뒤 이 행사를 한국에선 열지 않다가 지난해 은평한옥마을 공공미술프로젝트 ‘집宇(우)집宙(주)’ 특별기획전 때 은평 주민들을 대상으로 ‘모이자 모으자’를 개최했다.

최정화 작가의 ‘민들레 민(民)들(土)레(來)’ 구상 이미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최정화 작가의 ‘민들레 민(民)들(土)레(來)’ 구상 이미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민들레 프로젝트를 위한 ‘모이자 모으자’는 서울관에서 1일 오후에도 진행됐다. 4월7일 대구시립미술관, 5월5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도 열린다.

최정화는 ‘MMCA(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8’ 작가로 뽑혔다. 이 프로젝트는 9월8일 개막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의 하나다. 최정화는 선정 소감을 묻자 “좋죠. 시민들과 함께해서 더 좋고요”라고 짧게 답했다.

신인작가 등용문으로 불린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받은 1987년을 기점으로 하면 그의 예술 이력은 30년이 넘는다. 박 학예연구관은 “최 선생은 1990년대 초반 한국 미술 문화지형도를 바꾼 중요한 작가인데, 그저 키치한 걸 하는 작가로만 한정돼 알려졌다. 그건 ‘최정화’를 아는 게 아니다. 한국에선 저평가된 작가”라고 했다. 최정화는 국내외에서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상을 받았다. 국제비엔날레 단골 초대 작가다. 다방면에서 활동한 그는 최근 평창 동계패럴림픽 미술감독도 맡았다. 민들레는 개인전 개막 하루 앞선 9월7일 선보인다. 최정화는 “작품을 다 만들면, ‘모이자 모으자’에 참여한 시민들이 민들레를 보고 ‘저기 내 게 있네’ 할 것이다. 작가가 만들고 나면 그 작품은 관람객의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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