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지적 오만과 권력욕이 부른 ‘최악의 전쟁’

2014.01.24 20:08 입력 2014.01.24 22:37 수정

▲ 최고의 인재들…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송정은 황지현 옮김 | 글항아리 | 1103쪽 | 4만8000원

‘최고의 인재들’(원제: The best and the brightest)이란 제목을 봤을 때 경제·경영서나 처세서인 줄 알았다. 한국에서 툭하면 나오는 아이비리그 출신의 잘난 미국 CEO나 금융계 거물을 다룬 책 말이다. 책을 들춰보니 첫인상의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하버드나 예일 같은 이른바 명문대를 나온 미국 정재계의 슈퍼엘리트 이름이 책에 가득하다. 하지만 책은 경영이나 처세에서 다루는 것처럼 이들을 시대의 영웅이나 구루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부제는 ‘왜 미국 최고의 브레인들이 베트남전이라는 최악의 오류를 범했는가’이다.

[책과 삶]지적 오만과 권력욕이 부른 ‘최악의 전쟁’

데이비드 핼버스탬(1934~2007)이 1960년대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과 증강 결정에 관한 전후 맥락과 당시 정책에 관여했던 인물을 취재해 쓴 것이다. 미국이 어떻게 베트남에 가게 되었는지, 그 전쟁의 판을 짠 사람들은 누구인지에 관한 내용이다. 저자는 뉴욕타임스에서 일하던 1964년 베트남전 당시 “전황은 좋다”는 군 당국에 의문을 제기한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은 인물이다.

500회에 걸친 인터뷰와 문헌 조사로 행간의 여백 없이 1103쪽에 이르는 책 내용을 20장 안팎으로 요약하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저자가 4년간에 걸친 취재와 집필로 말하려는 바를 전하는 건 가능하다. 저자는 얽히고설킨 인맥과 베트남전 이면에 깔린 미국의 힘과 성공 이데올로기, 국가 지도자들의 출세·권력욕을 드러내며 이렇게 말한다. “고위 공직자들이 뭐라고 주장하든 베트남 전쟁은 주요 정책의 실패였다.” 그리고 실패 과정을 복원해나간다.

책의 출발은 1967년 저자가 베트남에 취재 갔을 때다. 미국은 북베트남에 비해 군사적 우위에 있었지만 정치적 우위에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이공이나 워싱턴의 미국 엘리트들은 전쟁을 낙관했다. 낙관주의에 두려움과 환멸을 느낀 저자는 1964년의 문제의식을 확대시켰다. “금세기에 가장 유능하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남북전쟁 이래 가장 최악의 비극을 기획하게 되었는가.” 그 ‘유능한 사람들’은 1961년 베트남전 개입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1964~65년 증강과 폭격 결정을 내린 린든 존슨 대통령 밑에서 일하던 고위 관료들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존 F 케네디·린든 존슨·로버트 맥나마라·존 맥노튼·맥조지 번디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존 F 케네디·린든 존슨·로버트 맥나마라·존 맥노튼·맥조지 번디

▲ 정부는 실패를 인정하고 중단하는 것보다
효과 없는 프로그램을 밀어붙이는 게 더 쉬웠다
국가의 희생은 뒷전이었다

저자가 출생 과정부터 뒤지기 시작한 인물은 베트남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귀에 익은 로버트 맥나마라, 맥조지 번디, 존 맥노튼 등이다. 이들은 베트남전 정책을 결정할 때 막후에서 실권을 휘두르던 인물들이다. 좋다는 가문에서 태어나 좋다는 학교를 나와 좋다는 대학 교수나 굴지의 대기업 사장을 지내다 입성한 공통점이 있다.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번디는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은 종이를 읽는 척하며 교사로 하여금 ‘뛰어난 에세이’를 지었다고 착각하게 만든 적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번디는 장기적 전망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의 실용적 사고는 종종 극단으로 치달았다. 하버드 대학 법학과 교수 출신인 존 맥노튼도 뛰어난 학자였다. 이후 베트남 내 미국 정책의 타당성을 강력하게 의심했지만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말이 맥나마라를 위한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을 때 자신의 권력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눈먼 충성과 완벽한 자기희생만이 관료의 권력을 보장한 것이다. 맥나마라는 1960년 포드자동차 사장을 지낸 뒤 이듬해 국방장관에 올랐다. “게릴라 전쟁을 치르는 것은 부도난 외국 회사를 매입하는 일과 같았다”고 여긴 인물이다.

1961년 케네디 행정부에서 이들을 처음 만난 부통령 린든 존슨은 “굉장한 시대와 대단한 사람들이 만났다”며 흡족해했다. 존슨의 친구 셈 레이번이 “그들은 모두 저마다 똑똑하겠지. 하지만 그중 한명이라도 보안관 일을 시켜본다면 그들을 정확히 알 수 있을 걸세”라고 한 말이 훗날 사실이 될 거라고는 존슨은 알지 못했다. 이들은 의욕에 넘쳤다. 케네디 행정부 출범 분위기를 저자는 이렇게 서술한다. “미국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새로운 미국 민족주의의 이상을 자극하고, 세계 문제를 해결하는 미국의 역할에 강렬하고 역동적인 정신을 불러일으킬 터였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잘못된 결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최고위급들은 베트남을 잘 몰랐다. 호찌민이 베트남 민중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1961년 케네디가 1만8000여명의 군사 자문단을 보낼 때도, 1965년 존슨이 증강과 폭격을 결정할 때도 그랬다. 이들은 전쟁이나 전투 의지에 반하는, 통찰력과 지식을 지닌 활동가·정보가들의 분석을 무시했다. 1964년에는 미국 국방정보국 직원들이 교통·산업시설의 대대적 파괴가 북베트남에 타격을 주더라도 북베트남 사람들이 고통을 기꺼이 견뎌낼 것이라고 보고했지만 묵살됐다. 첩보 담당자들이 도미노 이론의 유효성을 의심하는 의견을 보냈을 때도 도미노 이론이 실제로 유효한지 판단하려고 하지 않았다. 1950년대 한국전쟁, 중국의 공산화, 조지 매카시의 영향으로 반공산주의 자장에 들어온 이들은 수용될 가능성이 낮은 이 지역에 ‘서유럽 백인의 반공산주의’를 도입하려고만 했다. 1946년 베트남 등과 프랑스 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 지속된 이 지역의 식민-반식민 구도를 보지 못했다.

존슨 행정부에서 조지 볼만이 유일하게 증강 정책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인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고 반공산주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며 무력을 잘못 사용하는 것만큼 무력을 파괴하는 것은 없으므로 베트남을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료들은 1965년 만장일치로 폭격을 결정했다. 저자는 미국을 최악의 비극으로 몰고간 정책 결정에 이른 이유를 여러 모로 분석한다. 그는 “사이공과 워싱턴 사람들은 관료적 가속성과 개인적 야망이라는 특별 연료를 태우며 제멋대로 행동했다. 무엇이 잘못이고 무엇이 옳은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정부는 실패를 인정하고 중단하는 것보다 효과 없는 프로그램을 계속 추진하는 게 더 쉬웠다”고 말한다.

총평은 이렇다. “케네디나 린든 존슨 둘 다 자체 판단만으로 제도들을 밀어붙였고, 여러 행정 조직의 명분을 정당화하거나 고양하기 위해 국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상이나 계획을 추진하려 했다.” 저자는 민주주의와 위임받은 권력의 관계에 대해서 말한다. “일종의 개인이었던 그들은 1964년 선거를 통해 획득한 권한과 전쟁 개입에 관한 결정이 반드시 같지 않다는 사실에 구애받지 않았다.”

시간을 초월하며 보편성을 획득한 책이 훌륭하다는 건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은 출간(1972년)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 현실에 대입해 읽어도 무리가 없다. 케네디가 선임한 엘리트들은 미국 동부의 정치와 금융 기득권을 안도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작동되는 엘리트 충원 방식도 읽을 수 있다. 미국의 주류, 거대 로펌, 금융기관을 대변하는 이들이 행정부에 즐비했다. 게다가 스스로 기득권층이었다.

저자는 이 책을 “탐정소설처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자의 주관, 의견을 소설 기법을 빌려 담아내는, 1960년대 전후 미국에서 유행한 ‘뉴저널리즘’에 입각해 쓴 책이다. 미국의 권력 작동 방식, 엘리트란 인간들의 행태와 속내를 미주알고주알 묘사한다. 인생론의 교훈도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엘리트들이 발산하는 추상적 기민함이나 유창한 언변과 진정한 지혜 사이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한다. “진정한 지혜란 고통 뒤에 얻는 성과물이다. 때로는 쓰디쓴 경험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에 그런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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