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피사의 전망대 | 정운영

2017.05.01 22:18 입력 2017.05.01 22:21 수정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화려하고도 슬픈 ‘장문’ 예찬

[류동민의 내 인생의 책] ②피사의 전망대 | 정운영

직업 특성상 나는 지인들의 글을 자주 읽는다. 나는 대개 그들을 두 부류로 나눠 기억하는데, 하나는 글이 말보다 나은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말이 글보다 나은 사람이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글과 말이 똑같이 유려한 이가 바로 정운영이다.

대학에 입학한 첫 학기 경제학개론을 시작으로 대학원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의 강의를 공식적으로만 네 학기나 들었다. 그는 줄곧 시간강사 신분이었으며, 그 기간 중 어느 대학에서 해직당함으로써 전업 시간강사가 되었다. 내 기억 속에서 그의 말과 글은 분리할 수 없도록 엉켜 하나가 되어 있는데, 말을 받아 적으면 그대로 글이 되고 글을 읽으면 그대로 말이 되는 언문일치의 유려함 때문이다.

<피사의 전망대>에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과객의 부(賦)’라는 글이 실려 있다. 십년 넘게 하던 서울대학교의 강의를 그만두는 날 차를 몰고 학교로 들어오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수필이다. “혹시 진리라는 것이 있다고 해도 그 진리가 이긴다는 미련은 버려야 한다”는 문장에 실린 허무, “결국 어떻게 사느냐는 문제는 삶의 고비고비에서 싸우느냐 마느냐를 선택하는 것이지, 그 싸움의 결과로서 이기느냐 지느냐를 판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끌어안는 결연함, “사실 대학 강의는 다소 쓸모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다짐이다. 쓸모 있는 부분은 자본이 앞장서서 맡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다소 시니컬한 경고. 이 모든 것이 “지천한 은행잎”에 “11월 오후의 처연한 교정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삶의 어느 순간에 만나는 이런 치기를 아주 근사한 조화라고 생각할 만큼 나는 모순으로 가득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 누구는 부르주아적이라고, 또 누구는 기지촌적 지식인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의 화려하면서도 왠지 밑바탕에 서글픔이 깔린 “잡문”을 그 어떤 고전 못지않게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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