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지난 후 비로소 생기는 ‘사랑의 자리’

2018.06.01 20:46 입력 2018.06.01 20:52 수정
백수린 소설가

좁은 문

앙드레 지드 지음·이혜원 옮김 | 웅진싱크빅 | 359쪽 | 9000원

[책 굽는 오븐]청춘이 지난 후 비로소 생기는 ‘사랑의 자리’

얼마 전 오랜만에 모교에 다녀왔습니다. 공사로 여기저기 그 모습이 많이 바뀌어 있었지만 문과대학 건물 주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십대 초반을 보낸 캠퍼스를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시절 생각이 났어요. 공강 시간에 동기들끼리 즐겨 가던 학교 앞 다방의 추억도요. 그곳에서는 커피를 시키면 토스트를 무한정 먹을 수 있었어요. 새하얀 생크림을 발라 먹던 토스트를 생각하면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의 진폭이 너무 커서 고통스럽기까지 했던, 하지만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속수무책으로 화창하기만 했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환희와 고통 사이의 낙차가 큰 탓인지 청춘은 오래전부터 많은 소설가들이 즐겨 다루는 소재입니다. 고전소설인 <좁은 문>에도 청춘의 열병을 앓는 두 남녀가 등장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촌지간인 제롬과 알리사가 바로 그들입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방학 때마다 외삼촌 집에 내려가서 지내는 제롬은 어느 날 알리사가 어머니의 불륜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그녀를 고통으로부터 지켜주기로 결심합니다. 그때부터 제롬은 알리사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지만 알리사는 제롬을 사랑하면서도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독실한 신앙을 가진 알리사는 자신을 향한 제롬의 세속적인 사랑이 그의 영혼에 해를 끼친다고 확신하게 되고, 제롬을 구원하기 위해 그의 사랑을 외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은 알리사라는 인물을 통해 도덕과 신앙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롬의 사랑을 끝내 거부하며 고독하게 죽어간 알리사는 숭고한 자기희생을 통해 절대적인 신앙을 완성하는 성녀일까요? 아니면 그릇된 신앙으로 파멸에 이르는 광신자인 걸까요? <좁은 문>은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책 굽는 오븐]청춘이 지난 후 비로소 생기는 ‘사랑의 자리’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고, <좁은 문>을 다시 읽었을 때 제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알리사의 신앙심보다는 소설 도처에서 언급되는 불안이었습니다. 두 주인공이 불안에 떠는 이유는 사랑하는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사랑을 받아달라고 상대에게 강요하는 제롬이나 문제를 회피하기만 하는 알리사는 서로 다른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상대의 의중을 알 수 없다는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만 사랑을 완성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같은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결국 비극적인 방식으로 끝나죠.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열정이나 도취에 대해 쉽게 말하지만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의 완성은 청춘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한 것은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넘치는 것은 젊음뿐, 상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릴 여유는 조금도 갖지 못해 서로를 오독하는 시기를 지나야 우리는 사랑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도요. 공고한 ‘나’의 성을 허물고 타인에게 마침내 자리를 내어줄 때, 사랑은 눈부신 그 폐허에서 시작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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