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사상에는 약자엔 약하고 강자엔 강한 정신이 깔려 있죠”

2018.06.03 21:43 입력 2018.06.03 21:46 수정

중국 문호 루쉰 전집 번역 참여 유세종·이주노 교수

루쉰 전집 번역에 참여한 이주노 전남대 중문과 교수(왼쪽)와 유세종 한신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루쉰의 삶과 사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루쉰 전집 번역에 참여한 이주노 전남대 중문과 교수(왼쪽)와 유세종 한신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루쉰의 삶과 사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중국 문호 루쉰(魯迅·1881~1936) 전집(총 20권)이 최근 완간됐다. 2007년 번역위원회가 꾸려지고 꼬박 11년 만이다. 국내 첫 루쉰 전집이다. 전집은 루쉰 소설부터 시, 평론, 일기, 편지, 잡문 등을 총망라했다. 12명의 중국 문학 연구자들은 균일한 번역을 위해 81차례 정기 월례모임을 진행했다. 200자 원고지로 5만2000장 분량, 20권 총 쪽수로는 1만3144쪽에 이른다. 중국 런민문학출판사에서 펴낸 1981년본 전집과 2005년본을 바탕으로 했다.

“루쉰을 읽는다, 이 말에는 단순한 독서를 넘어서는 실존적 울림이 담겨 있다.”

전집을 펴낸 한국 루쉰전집번역위원회는 발간사에서 이렇게 썼다. 21세기 한국에서 ‘루쉰을 읽는다’는 것의 ‘실존적 울림’이란 무엇일까. 전집 번역에 참여한 유세종 한신대 명예교수(65·이하 ‘유’)와 이주노 전남대 중문과 교수(60·이하 ‘이’)를 만나 루쉰의 사상과 삶, 루쉰의 글쓰기에 관해 물었다.

■ 루쉰은 어떤 인물인가

어떤 인물인가
특정한 사고에 매몰되지 않고
사유 경계 헤쳐나가는 집요함
“부조리·절망에 맞선 반항인”

루쉰은 어려서 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하고 1902년 일본으로 건너가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문학으로 중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의대를 중퇴, 도쿄에서 외국소설 번역 일을 하다가 1909년 귀국했다.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28년 3월22일의 루쉰.  그린비출판사 제공

1928년 3월22일의 루쉰. 그린비출판사 제공

- 한국에서 루쉰은 <광인일기>와 <아Q정전>(1921)을 쓴 작가로 친숙합니다. ‘작가 루쉰’ 이외에 전집에서 발견할 수 있는 루쉰의 면모는 어떤 것입니까.

유 = “루쉰 앞에는 여러 수식이 붙습니다. 작가, 혁명가, 사상가, 전사, 문화운동가, 학자…. 루쉰의 정체성은 반항인입니다. 그는 모든 부조리와 절망에 반항했어요. 자신이 공부한 것만 믿었습니다. 끊임없이 회의하고 도전하고 탐색했어요. 동서고금 다양한 사상가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을 자기의 피와 살로 소화한 다음 버리는 거예요.”

이 = “사람들은 대부분 20~30대에 형성된 세계관에 기대어 세계를 해석하잖아요. 루쉰은 거의 쉰이 된 나이에도 젊은이들과 논쟁을 벌이면서 자신의 사유 영역을 확장했지요. 그가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을 학습하고 수용한 것이 40대 후반이었어요. 특정한 사고의 틀에 매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허물을 벗고 나아갔던 것이지요.”

유 = “변증법적 사고라고 하죠. 기존에 알고 있던 것에 새로운 것이 들어오면 검증하고 대체하고 변화하고요. 정반합의 사고를 통해 나선식으로 계속 나아갔죠.”

이 = “1930년대 이미 루쉰의 사유형태를 변증법이라고 평가하는 이가 있어요. 사유의 경계를 줄기차게 밀어나가는 것은 좋게 해석하면 끈질긴 집요함이라고 표현하겠지만, 어떤 이의 눈에서는 융통성 없음으로 비칠 수 있겠죠.”

작가로서 두각을 드러내던 루쉰은 1926년 톈안먼(天安門)에서 매판적인 돤치루이(段祺瑞) 정부에 항의하던 시위대 47명이 학살당한 이른바 ‘3·18 참사’ 때 “민국 이래 가장 어두운 날”이라며 군벌을 비판했다가 도피 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이후에 대학을 떠나 잡문과 강연을 통해 우익에 대한 비판적 정치적 입장을 계속 글로 썼다. 그는 중국좌익작가연맹에도 참여했고, 판화운동도 전개했다.

- 루쉰은 중국 근·현대사의 주요 장면에 등장하죠. 사상가, 혁명가, 사회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요.

유 = “그는 권력도 싫어하고 사람 많은 곳도 싫어했지만, 그의 삶은 정치적이었죠. 루쉰의 철학 사상이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그의 사상의 출발점은 ‘태어난 이상 살아가야 한다’라는 것이에요. 루쉰은 자신을 ‘중간물’이라고 했어요. 생명의 사슬에서 지금 여기 존재하는 중간자인 것이죠. 삶이란 중간물로서 자신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 출발점이었어요. 루쉰은 봉건 시대의 끝에 태어나 70여년간 중국의 구국운동이 실패한 것을 목격했어요. 아편전쟁 패전부터 양무운동, 변법유신운동, 신해혁명의 실패까지…. 그는 전통에서 다음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중국인들이 어떻게 변화하여 새 시대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그의 혁명사상이 있게 됩니다. 그가 생각하는 혁명은 중국의 모든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하는 것이었어요. ‘미완의 혁명을 위해서 계속 나아가는 사람’을 진정한 혁명인이라고 했어요.”

■ 루쉰은 어떻게 읽혔는가

어떻게 읽혔나
작가 사후 마오쩌둥이 신격화
공산당 문화 아이콘으로 선취
한국에선 시기 따라 위상 달라

- 한국 독자들은 루쉰 소설은 익숙하지만, 루쉰의 글을 폭넓게 읽기 어려웠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유 = “중국에선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루쉰이 신격화됩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루쉰 전집은 살아남았죠. 중요한 것은 루쉰의 의도와 상관없이 루쉰의 이미지가 위인으로 화석화됐다는 겁니다. 마오쩌둥은 루쉰 정신으로 식민 시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죠. 그렇게 해서 루쉰은 공산주의자가 돼버렸어요.”

이 = “루쉰이 세상을 떠난 지 사흘 뒤 공산당중앙은 루쉰을 ‘공산주의 소비에트운동의 친애하는 전우’로 일컫고, 서거 1년을 기념하는 강연에서 마오쩌둥은 루쉰을 ‘공산당의 조직원은 아니지만 그의 사상, 행동, 저작은 모두 마르크스주의화하였다’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1940년 1월 마오쩌둥은 <신민주주의론>에서 루쉰을 ‘위대한 문학가이자 사상가, 혁명가’로 자리매김합니다. 이건 루쉰을 문화적 아이콘으로써 선취한 것이지요. 다시 말해 루쉰의 정신적, 문화적 가치를 중국공산당의 혁명적 자원으로 독차지한 셈이지요.”

유 = “1920~1930년대 조선에도 루쉰 작품이 전해져요. 1948년 이후 한국에선 반공 이데올로기로 중국과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은 금기시됐죠. ‘레드 콤플렉스’ 때문에 루쉰에 대한 편견도 오랫동안 유지됐어요. 제가 박사학위를 위해 루쉰을 연구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주변에서 과격한 반응들이 있었어요.”

이 = “한국에서 중국현대문학이 독립적인 학문 분야로서 자리 잡은 게 1980년대 중반이었어요. 이전 세대 연구자들 가운데 루쉰 연구자가 없지는 않았지만, 현대문학이라는 총체적인 틀 속에서 루쉰을 사유하지는 못했어요. 저나 유 교수님도 개별적인 스터디를 통해서 루쉰 글을 읽었죠. 반공을 국시로 하는 사회에서 중국현대문학 자체가 편견의 대상이었으니까요.”

이 = “한국에서 받아들인 루쉰의 모습은 시기에 따라 달라져요. 1920년대는 무정부주의자로, 1930년대는 ‘좌경화한’ 작가로, 1960~1970년대 오면 실천적 지식인상으로 받아들여지죠. 물론 루쉰을 그저 공산주의자로 보는 사람도 있었지요. 루쉰은 읽는 사람이 처한 환경과 사고의 스펙트럼에 따라서 굉장히 다양하게 읽혀요. 우리나라에서 이번에 전집이 출판되었는데, 10년 뒤 다음 세대는 루쉰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합니다.”

- “생각해 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보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은 이와 같이 울림을 주는 문장으로도 유명합니다. 전집을 관통하는 루쉰 글쓰기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유 = “일기를 보면 루쉰은 하루에 대단히 많은 양의 글을 씁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루쉰은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태도로 쉼 없이 일해요. 마오쩌둥은 루쉰을 두고 식민 중국사회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허리를 굽히지 않는 ‘경골(硬骨)’이라고 했어요. 글도 마찬가지예요. 핵심만을 간단명료하게 전달하는 힘 있는 간결체 문장이에요.”

■ 루쉰을 새롭게 읽기

새로운 독법은
국가폭력 다룬 ‘광인일기’ 등
현재적 의미 읽어내는 게 중요
도그마화한 담론 벗어났으면

- 루쉰 전집을 한국 독자들이 읽는다면, 어떤 것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이 = “루쉰 작품에 든, 인류의 보편 가치를 읽어내는 게 중요한 것 아닐까요. <광인일기>는 중국 역사를 식인의 역사로 규정합니다. 식인으로 형상화된 국가폭력, 사회 시스템의 폭력성은 단지 1918년 중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지요. 루쉰의 글을 특정한 시대와 사회의 텍스트로만 볼 게 아니라 현재적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죠.”

유 = “중국에서는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루쉰 신격화에 대한 반성이 있었고, 최근엔 ‘일상 루쉰’을 주목합니다. 전집 번역을 하면서 혁명가 루쉰이 어떻게 일상 루쉰과 결합하고, 작가 루쉰이 어떻게 혁명가 루쉰, 화가 루쉰, 아버지·남편 루쉰과 연결되는지를 발견하면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이 = “개인사를 살펴보면 조부의 과거 부정 사건, 동생 저우쭤런과의 불화, 본처 외에 연인 쉬광핑과의 사랑 등 3가지 사건이 루쉰의 사고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사건들이 가져온 절망과 고독, 애증은 오래도록 내면에 침전되었을 것이고, 이후 글을 쓸 때 힘의 근원이 되었을 겁니다. 개인사를 알면 루쉰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편지와 일기를 읽어볼 필요가 있죠.”

유 = “루쉰 사상의 근저에는 약자에 대한 속죄의식과 강자에 대한 도저한 전투의식이 있습니다. 그는 ‘쩡자’()의 정신으로 실천했어요. 몸부림치는 정신이죠. 사상이라기보다는 삶의 태도예요. 절망과 어둠의 시대에서 다시 일어서고,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내고, 쉼 없는 집요함으로 더 나은 곳을 꿈꾸는 루쉰을 읽길 바랍니다. 또한 루쉰에게서 배울 것은 고독을 견디는 지혜가 아닐까 싶어요.”

이 = “루쉰을 읽는 사람들은 루쉰에 관한 도그마화한 담론에 매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재해석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루쉰의 글에서 우리 사회에서의 현재적 의미를 어떻게 움켜낼 것인가를 다양한 지점에서 고민하자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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