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움 덜어낸 퀴어소설가 김봉곤 박상영 대담, "올해만 게이할 건 아니니까 퀴어 소설은 계속된다"

2018.12.23 17:11 입력 2019.08.12 11:07 수정

퀴어 당사자의 서사를 선보여 함께 주목받은 소설가 김봉곤(오른쪽)과 소설가 박상영이 지난 19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퀴어 문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퀴어 당사자의 서사를 선보여 함께 주목받은 소설가 김봉곤(오른쪽)과 소설가 박상영이 지난 19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퀴어 문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2018년 한국문학의 주요 흐름 가운데 하나는 퀴어서사의 폭발적 증가다. 단언컨대 그 선두에는 김봉곤과 박상영이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2016년에 나란히 퀴어 소설을 발표하며 함께 주목받았다.

이들은 “나의 동성애 중심적 사고”(김봉곤)에 입각해 “순도 100%의 퀴어 영화”(박상영)를 만드려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작품을 써나갔다. 두 사람이 올해 펴낸 첫 소설집<여름, 스피드>(김봉곤)와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박상영)는 모두 1만부를 돌파하며 독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둘 다 1년 동안 7편의 단편을 몰아치듯 발표했다. 생김새마저 비슷한 두 사람을 지난 19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거대한 흐름 안에서 만난 근사한 우연

- 최근 퀴어 서사가 눈에 띠게 증가하고 있다.

박상영(박)= 이전까지 퀴어 서사들이 소수자들이 얼마나 다르고 고립된 삶을 살고 있는가에 주안점을 뒀다면 우리는 일상성에 기반한 감정 자체를 이야기하는 소설로 주목받는 것 같다. 가부장적인 주류 서사에서 대안을 찾는 움직임에서 여성 서사와 함께 퀴어 서사가 주목받는 게 아닐까.

김봉곤(김)= 그동안 성소수자들이 소외되고 얼마나 처량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았다면, 지금 세대의 퀴어 소설은 비장함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웃으면서 퀴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 무게감을 덜어내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 두 사람은 ‘퀴어 소설가’로 함께 주목받고 있다.

김= 등단 전부터 친구였다. 등단도 2016년에 동시에 하면서 함께 주목받았다. 거대한 흐름 안에서 근사한 우연이 겹친 것 같다.

박= 그동안 둘이 죽도록 묶여 다니고 신나게 비교당했다. 제 시상식에서 봉곤이 형을 보고 “박상영씨 축하합니다”라고 말한 분도 있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나면서 독자들도 두 작가의 차이점을 알아보는 것 같다. ‘쟤들은 게이 이야기 쓰는 소설가’라고 생각했다면, 이제 얘는 이런 작가고 쟤는 저런 작가라는 걸 알아봐주는 것 같다.

- 김봉곤은 ‘커밍아웃한 게이 소설가 1호’다. 박상영은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지만 퀴어의 시각과 일상을 그린 소설을 쓴다. 퀴어 서사를 쓰는 데 주저함이나 부담은 없었나.

김= 대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처음 만든 단편영화 역시 퀴어영화였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커밍아웃을 하게 됐다. 또 퀴어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될 줄은 몰랐다. 부담감이 있긴 했지만 언젠가는 해야할 일로 느껴졌다.

박= 소설을 내 삶으로 읽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다만 열린 독서가 되면 좋겠다. 어떤 독자는 진짜 작가의 이야기일거라 생각하지만, 어떤 독자는 거짓말일거라 생각할 것이다. 작가와 독자의 ‘밀땅’이라고 생각한다. 퀴어 소설의 경우 당사자성을 강조하는 것을 통해 거두는 미학적 효과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가 김봉곤(오른쪽)과 소설가 박상영이 지난 1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스튜디오에서 각자 상대방의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과 <여름, 스피드>를  들고 있다. 정지윤기자color@kyunghyang.com

소설가 김봉곤(오른쪽)과 소설가 박상영이 지난 1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스튜디오에서 각자 상대방의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과 <여름, 스피드>를 들고 있다. 정지윤기자color@kyunghyang.com

■‘퀴어 소설’이란 수식 안에서 더 넓어질 것 ‘올해만 게이할 건 아니잖아요”

- 자신의 작품이 ‘퀴어 문학’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김= 그렇게 명명됨으로써 협소해지는 것보다 폭넓어지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한다. 라벨링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작가들은 쓰고 나서 또 새롭게 쓰고 싶은게 생겨나는 존재다. 나도 내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퀴어 소설가’로 불린 이후가 궁금하다. 어떻게 분류될 것인가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도 하다.

박= 지금까지의 퀴어라는 존재가 현실에 존재함으로 불구하고 일종의 장르적 수단으로, 재현물로 다룰 때가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퀴어가 등장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맥락에서 고통받는 퀴어, 일상을 살아가는 퀴어 등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하면 된다. 내 작품이 퀴어문학이라는 데 이견이 없지만 내가 퀴어소설가라고 한다면 향후 내가 뭘 쓸지도 모르는데, 협소하게 만드는 것 같아 고민되기도 했다. 하지만 겁낼 일이 아니라 가시화를 통해서 드러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 두 사람은 남성 동성애자(게이) 서사를 써서 주목받고 있다. 아직 다양한 성소수자 이야기가 나오고 있진 않다.

김= 우리가 호명되고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남성인 게이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다양한 성소수자의 이야기가 있다. 젠더퀴어(남녀의 이분법적 성별구분을 벗어난 성정체성) 등 다양한 성소수자의 정체성에 대해 촉을 세우고 공부하는 것이 우리 세대 퀴어 작가의 윤리라고 생각한다.

박= 게이는 성소수자 가운데 가시화가 제일 먼저 되는 정체성일 수도 있다. 1~2년 내에 다른 당사자성을 가진 퀴어 작가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모르는 세계와 소수자성을 가진 분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소수자성이 소설을 쓰게 해, 다양한 퀴어 서사 기대

-퀴어 문학의 미래는.

박= 한 때 유행하고 사라지는 ‘파워숄더’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거 끝난 이야기잖아, 한때 유행이었잖아’가 아닌 하나의 흐름으로 잔잔하게 자리잡으면 좋겠다.

김= 불안감이 드는 한편 든든함도 느낀다. 내 자신이 올해만 게이할 건 아니잖아. 내가 읽고 싶은 콘텐츠, 보여주고 싶은 콘텐츠는 꾸준히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내 안의 소수자성이 문학을 쓰게 하고, 문학성이 소수자성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서로의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 상영의 작품은 대중성도 있고 시의성도 있다. 보통 작가 이상의 에너지가 있다. 내가 못하는 것을 상영이 보완해주는 면이 있다. 나는 너무 내 이야기와 사랑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약간의 부채감이 있는데, 상영은 작품으로 현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필요한 발언을 한다. 그런 점에 대해서 고맙기도 하다.

박= 김봉곤의 장르는 김봉곤이다. 자기 확신과 자신만의 화법과 문장을 갖고 있다. 묶이는게 지겹다고도 했지만 고마운 것 같다. 봉곤이 형이 먼저 등단해 먼저 얻어맞고, 지금은 둘이 같이 얻어맞으니까 편안한 면이 있다.(웃음)

새해에 두 사람은 올해 몰아치듯 쓴 단편을 묶어 나란히 두 번째 소설집을 출간할 계획이다. 김봉곤은 한꺼번에 많은 작품을 쏟아내느라 건강도 언어도 고갈됐다며 호흡을 가다듬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상영은 내년에 첫 장편 연재를 시작한다. 두 사람이 ‘한 세트’인 것은 올해까지만일 것 같다. “이제 결별 수순”이라는 박상영의 농담처럼 서로 다른 개성과 목소리로 각자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갈 두 사람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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