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양다솔 “이 정도의 적당한 실례는 늘 하면서 살고 싶어요”

2024.03.25 12:55 입력 2024.03.25 22:09 수정

산문집 <적당한 실례>의 양다솔 작가

“선 넘어 ‘다정한 타박’ 듣고 살고 싶어”

<적당한 실례>의 양다솔 작가가 2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 시작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적당한 실례>의 양다솔 작가가 2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 시작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요즘 젊은 세대들은 ‘무해한 관계’를 추구하잖아요. 저는 그게 추상적일뿐만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한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산문집 <적당한 실례>(은행나무)를 발간한 양다솔 작가는 제목의 의미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서로 선을 넘지 않고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생각을 강박적으로 갖고 있는 시대다. 그러다보니 서로에게 질문을 하거나 호의를 갖고 소통을 시도하는 것조차 검열을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늘 먼저 선을 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선을 슬쩍 넘어간 자신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이도 있었지만 불쾌하게 여기는 이도 있었다. 그럴 때는 사과를 했다. 그를 아끼는 누군가로부터 ‘왜 자꾸 선을 넘어 사과를 하고 다니냐’며 “다정한 타박”을 듣기도 했다. 그는 “이 정도의 ‘적당한 실례’는 늘 하면서 살고 싶다”고 답했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얼마 간의 유해함은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민폐’와 ‘무례’에 대한 경계로 불편하게 경직된 상황에서 저는 늘 이를 깨고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사람이었어요. 그게 잘 안 되더라도 사과하는 방식으로 소통을 계속 했었고요.” 책은 ‘적당한 실례’를 꾸준히 연습하고 실험했던 그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농담’과 ‘실례’가 한끗 차이로 갈리는 ‘스탠드업 코미디’에 도전한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한때 ‘동북아국제구술문화연구회’라는 직장인 스탠드업 코미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다. “예술단체나 코미디 같은 이름을 붙이기에는 저희가 너무 터무니없는 존재들이었기에 이름이라도 거창하게 짓자고 지은 이름이었어요(웃음).” 책에 수록된 ‘이 세상의 웃긴 비건’ ‘살려고 한 농담’ 등은 그때 스탠드업 코미디를 연구하고 무대에 섰던 경험을 토대로 쓴 에세이다. 각각 ‘비건’과 ‘노상방뇨 남성’을 주제로 농담을 만들려고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처절하면서도 재미있게 그려냈다. ‘비건’을 유난스럽다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여전히 노상방뇨에 관대한 남성중심 문화에 대한 풍자가 담겼다.

“그럼에도 나는 비건으로 농담을 만들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언젠가 동료 코미디언들을 앉혀놓고 비건을 주제로 농담에 도전했다. 나는 점점 뜨거워지는데 애들은 점점 차가워져서 그 방에 기후위기가 오는 줄 알았다. 무대가 끝나자 다들 ‘미안하다’ ‘반성하겠다’하고 줄줄이 고해성사를 했다. 웃음 타율이 0에 수렴했다. 연민과 반성은 코미디언으로 받을 수 있는 최악의 성적이다.”(‘이 세상의 웃긴 비건’ 에서)

“연민이 아닌 냉정한 웃음 몇 번이 나에게 돌아왔다. 여전히 그렇게 웃긴 얘기는 아니었다. 그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길에서 고추를 너무 많이 봐서 상처받은 여자애가 어떻게든 이 사건을 이겨보려는 애처로운 시도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이라는 힘이 있었다. 누구도 하지 않는 이야기였고, 웃기려고 들지 않는 이야기였다.(‘살려고 한 농담’에서)

그는 “너무 진지해서 사람들이 별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거나 터부시하는 것들을 농담의 주제로 삼곤 했다”고 말했다. “소위 웃기는 소재로 분류되지 않은 것들인데, 이걸 어떻게 바꾸고 다시 쓰면 좋을지 고민해요. 노상방뇨하는 아저씨들 이야기는 이제는 말하기도 지쳐서 화내는 것 말고는 이에 대해 이야기할 다른 통로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인데, 이런 걸 갖고 진짜 웃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적당한 실례>의 양다솔 작가가 2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적당한 실례>의 양다솔 작가가 2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적당한 실례’와 ‘농담’이라는 명랑함의 이면에는 그가 오랜 시간 치열하게 쌓아온 단단한 ‘자기 이해’가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어디서나 눈에 나는 행동을 해서 가는 곳마다 ‘왜 그러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무리에서 배척 당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런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계속해서 답을 해 보려고 애썼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더 잘 알 수 있게 됐다.

“공격과 같은 수많은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들에게 경도되기보단 더욱 구체적으로 내가 되었다.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과 충돌하는 일이 나를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적립해 주었다. 내가 나를 정확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과 ‘다른’ 나도 존재해도 된다는 권능감을 주었다.”(‘반알고리즘적 인간’ 에서)

그의 ‘자기 이해’는 자신만의 정서를 따라가는 일이기도 하다. 에세이 ‘생활다도인’에서 그는 ‘정서’를 “가장 자연스럽게 마음이 동하는 일, 왜 계속 하는지 이유를 물을 필요 없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10대 시절 절에서 2년 동안 행자 생활을 했던 그는 15년차 다도인이다. 하루에 한 번은 꼭 다구를 앞에 두고 차 마시는 시간을 갖는다. 5년차 비건이기도 해서 하루 세 끼도 채식으로 정성스레 잘 차려 먹는다.

“저는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먹을 것에 진심인 사람이 비건을 한다는 것은 정성스럽게 살겠다는 뜻이에요.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한국사회에서 비건을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거든요. 하루 세 끼를 비건으로 먹는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아주 급진적인 운동을 하는 것과 다름없지만, 그게 저한테는 5년째 너무 즐거운 피곤함이에요.”

무엇보다 중요한 ‘정서’ 중 하나는 글쓰기다.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내가 풍선처럼 터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몇몇 사람들과의 수다로 휘발시켜서는 안 되는 이야기가 있어요. 내가 잘 전달만 하면 아주 먼 곳에 있는 전혀 모르는 낯선 누군가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이야기요. 우리의 삶은 각각 다르지만 또 닮았기 때문에 그냥 흘러보낼 수 없는 이야기들을 쓰려고 계속 시도할 거에요. 그게 저의 정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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