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뱀 물리치고 얻은 신성한 칼…한반도 철기 전래의 은유일까

2018.08.09 21:15 입력 2018.09.06 17:29 수정

수수께끼 같은 신 ‘스사노오’

일본신화의 수수께끼 신인 스사노오는 일반적인 영웅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스사노오는 본향에서 추방당한 도래신(외부에서 들어온 신)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덟 개의 머리에 여덟 개의 꼬리를 가진 뱀 야마타노오로치를 퇴치하는 영웅 스사노오의 모습. 스사노오와 뱀의 대결은 스사노오를 신으로 모시던 도래계 대장장이 집단이 사철을 발굴해 도검을 제작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일본신화의 수수께끼 신인 스사노오는 일반적인 영웅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스사노오는 본향에서 추방당한 도래신(외부에서 들어온 신)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덟 개의 머리에 여덟 개의 꼬리를 가진 뱀 야마타노오로치를 퇴치하는 영웅 스사노오의 모습. 스사노오와 뱀의 대결은 스사노오를 신으로 모시던 도래계 대장장이 집단이 사철을 발굴해 도검을 제작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창세신의 눈이 아닌 ‘코’에서 나온 스사노오는 추방당한다
이즈모로 내려온 그는 여성을 잡아먹는 뱀을 물리치는데
이승서 태어나 저승 어머니를 그리워한 ‘매개성’과 연결하면
제련 기술을 갖고 이즈모로 건너간 도래인의 얼굴이 겹친다

일본신화에 스사노오라는 수수께끼 같은 신이 있다. 그는 태초의 남녀신 가운데 남신 이자나기가 저승에 다녀온 뒤 몸을 씻을 때 태어난 존재다. 오른쪽 눈에서는 월신 쯔쿠요미가, 왼쪽 눈에서는 일신 아마테라스가 생겨나는데, 그는 하필 코를 씻을 때 생성된다.(23회 참조) 왜 코였을까?

창세신의 두 눈에서 해와 달이 창조되는 신화는 적지 않다. 중국 문헌신화의 창세신 반고의 좌안은 해가 되고 우안은 달이 된다. 만주족 구전신화 ‘우처구우러번’에서는 천신 압카허허의 눈에서 빛의 신 와러두허허가 해와 달을 만들어낸다. 제주도 구전신화 ‘초감제’에서는 청의동자의 앞이마에 돋은 눈이 해가 되고 뒷이마에 돋은 눈이 달이 된다. 좌우가 불분명하거나, 좌우가 전후로 변형되어 있지만 창세신의 두 눈이 일월의 기원이라는 상상력은 동일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코가 무엇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기기신화의 스사노오는 왜 창세신의 코에서 왔을까?

<일본서기>에 인용되어 있는 어떤 책(一書)에 따르면 이자나기가 왼손으로 흰구리거울(白銅鏡)을 잡았을 때 해의 신이, 오른손으로 그것을 잡았을 때 달의 신이 생겨나는데, 스사노오는 머리를 돌려 돌아보는 순간 생성된다. 이 이자나기의 고개돌리기를, <고사기>를 번역한 노성환 교수는 ‘과거를 회고하는 순간’으로 해석했다. 일월신은 좌우가 분명한데, 스사노오는 이자나기가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린 결과인지 불분명하다. 코든 고개돌리기든 스사노오의 탄생기는 뭔가 모호하고 부자연스럽다. 그래서 다수의 일본 학자들은 스사노오 신화가 본래의 것이 아니라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창세신화에 첨가된 것으로 본다. 왜 스사노오는 코 또는 고개돌리기의 이미지로 기기신화의 세계에 끼어들었을까?

스사노오의 총칭(總稱)은 ‘다케하야스사노오미코토’(<고사기>)다. ‘다케’는 ‘용맹한’, ‘하야’는 ‘빠른’, ‘스사’는 ‘거침없는 사물의 기세’, ‘노오’는 ‘관형어’, ‘미코토’는 ‘존칭어’이므로 ‘용맹하고 빠르게 거침없이 나아가는 분’ 정도의 뜻으로 이해된다. 신화적 영웅에 걸맞은 이름이다. 그런데 그는 일반적인 영웅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기기신화에 나타난다.

이자나기의 삼귀자(三貴子) 가운데 막내 스사노오는 우나하라(海原)의 통치를 위임받는다. 우나하라는 바다의 세계지만 바다를 포함한 지상을 말한다. 두 언니들은 일월이 되어 천상을 맡았으니 막내는 지상을 맡은 셈이다. 그런데 스사노오는 수염이 가슴까지 자라도록 울기만 한다. 직무를 받은 신이 임지에 내려가지도 일하지도 않으니 지상의 산천은 타들어가고 재앙은 들끓는다. 아버지가 왜 울기만 하느냐고 묻자 스사노오는 어머니의 나라 네노카다스쿠니(根之堅州國·약칭 ‘네노쿠니’)에 가고 싶어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불의 신을 낳다가 죽은 이자나미가 거주하는 네노쿠니는 다름 아닌 저승이다. 막내의 대답에 화가 난 아버지는 ‘너는 이 나라에 살 수 없다’고 판정한다.

그러자 스사노오는 방면을 청하러 아마테라스한테 올라간다. 아마테라스는 동생이 나라를 뺏으러 오는 것으로 여겨 전투태세를 갖춘다. 스사노오는 어머니의 나라에 가려는 까닭을 설명하러 온 것이지 다른 마음은 없다고 하면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점을 쳐 아이(神) 낳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스사노오는 자신이 여자아이들을 낳았으니 내기에서 이겼다면서 승리의 기쁨을 난동으로 표현한다. 아마테라스가 경작하는 논두렁을 부수고 개천을 메워버리고 아마테라스 신전에 똥을 뿌린다. 일련의 행패는 마침내 아마테라스를 석굴 안으로 도망치게 만들고, 그 결과 천상계를 암흑세계로 만들어 버린다.

스사노오의 이런 기괴한 태도는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엄마한테 가겠다고 울며 떼를 쓰고 행패를 부린다? 아직 스사노오는 모성에 고착되어 있는 어린아이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테라스는 농사를 짓는 신, 스사노오는 칼을 들고 난폭하게 설치는 신이니 둘의 대립은 농경과 수렵이라는 생산양식의 대립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둘 다 불가능한 해석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스사노오가 직무를 거부하고 아마테라스와 맞서다가 아버지의 나라에서 추방당한 신이라는 사실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향에서 추방당하는 영웅은 적지 않다. 예컨대 제주 김녕리 괴네깃당의 당신(堂神) 괴네깃또는 아버지한테 불효하여 바다로 추방당한다. 그가 용궁을 거쳐 강남천자국까지 갔다가 귀환할 때, 마치 아마테라스가 스사노오를 두려워했듯이, 부모는 아들이 무서워 도망친다. 세화리 본향당의 당신 금상님은 한양 남산에서 솟아났다가 역적 누명을 쓰고 스스로 유배 길에 올라 군사를 거느리고 제주로 입도한다. 바다를 건너온 신, 외부에서 들어온 신을 도래신(渡來神)이라고 한다면 추방은 도래신의 유력한 징표 가운데 하나다. 다카마노하라에서 추방당한 스사노오 역시 도래신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어디서 어디로 도래했다는 말인가?

형식적으로는 추방당하기 전에 거주했던 ‘다카마노하라’가 스사노오의 본향이다. 그곳은 천상의 세계, 아버지 이자나기와 누이 아마테라스가 지배하는 나라다. 그곳은 지상 왕권의 신성성을 보증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그런데 스사노오는 그곳에 있으려고도, 위임받은 땅 우나하라에 가려고도 하지 않는다. 대신 어머니의 나라에 가고 싶다며 운다. 마침내 추방당한 스사노오는 앙망하던 네노쿠니로 가지 못하고 오늘날 시마네현(島根縣) 동쪽에 있었던 이즈모쿠니(出雲國)로 내려온다. 다카마노하라에서 이즈모쿠니로 도래한 스사노오, 이 코스는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을까?

스사노오를 주신으로 모시고 있는 교토의 야사카신사.

스사노오를 주신으로 모시고 있는 교토의 야사카신사.

<일본서기>가 인용하고 있는 몇몇 전승들에 따르면 스사노오는 성질이 잔해(殘害)하고, 울고 화를 내어 산천을 메마르게 만들었으므로 네노쿠니를 다스리게 했다고 한다. 기실 <고사기>가 전하고 있는 스사노오의 최종 좌정처도 네노쿠니다. 이즈모에 내려와 소임(구시나다히메와 결혼하여 낳은 후손 가운데 아마테라스의 후손이 강림할 국토를 이양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오호쿠니누시를 낳는 일)을 다한 뒤 스사노오는 마침내 네노쿠니로 가 어머니의 뒤를 계승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스사노오의 실질적 본향은 네노쿠니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스사노오는 천황가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의 계보에 부정적인 이미지로 끼어들기는 했지만 본래 네노쿠니의 신이었다가 잠시 이즈모에 도래하여 할 일을 한 뒤 네노쿠니로 귀환한 셈이다.

네노쿠니는 신화적으로는 저승을 뜻하지만 섬의 세계관에서 저승은 바다와 동일시된다. 그래서 일찍이 민속학자 야나기다 구니오(柳田國男)는 네노쿠니를 바다 저편, 곧 타계(他界)라고 보았다. 스사노오는 바다 저편에서 이즈모로 온 도래신이다. <일본서기>의 어떤 전승은 다카마노하라에서 추방당한 스사노오가 아들 이타케루를 데리고 신라국 소시모리(曾尸茂梨)에 내려갔다가 “이 땅은 내가 있고 싶지 않다”며 흙배를 만들어 타고 이즈모의 히강 상류 도리카미봉(鳥上峰)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또 다른 기록은 구마나리봉(熊成峯)에 있다가 네노쿠니로 들어갔다고도 한다. 이런 자료들이 이야기하는 바는 스사노오가 한반도에서 도래한 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화학자 마쓰마에 다케시는 스사노오를 ‘한반도계 도래인들이 모시던 번신(蕃神)’이라고 했다. 번신은 골맥이로 불리는 마을신의 일본식 표현이다.

그렇다면 스사노오를 모시고 이즈모로 도래한 집단은 뭘 하던 이들이었을까? 실마리는 역시 스사노오의 신화 안에 있다. 이즈모로 내려온 스사노오는 딸을 사이에 두고 울고 있는 노부부를 만난다. 까닭을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딸 여덟이 있었지요. 한데 여덟 개의 머리에 여덟 개의 꼬리를 가진 야마타노오로치라는 뱀이 해마다 하나씩 잡아먹어 이제 하나 남았는데, 또 뱀이 올 때가 되었답니다.”

“딸을 나에게 주겠느냐?”

“고맙습니다만 저는 아직 당신의 이름도 모릅니다.”

“나는 아마테라스의 동생 스사노오다. 지금 막 하늘에서 내려오는 길이다.”

노인이 딸을 주겠다고 약조하자 스사노오는 독한 술을 여덟 통 만들어 놓고 기다리라고 당부한다. 마침내 나타난 뱀이 술에 취해 잠이 들었을 때 스사노오는 칼로 토막 내어 죽인다.

스사노오와 야마타노오로치의 대결은 유라시아 대륙에 널리 퍼져 있는 ‘괴물퇴치담’의 일종이다. 영웅은 괴물을 퇴치하는 과정에서 공주나 보물을 얻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면 스사노오는 무엇을 얻었는가? 스사노오는 자신의 칼로 뱀의 꼬리 중간 부분을 자를 때 칼날이 상하는 경험을 한다. 이상하게 여겨 뱀을 갈라 보니 아주 예리한 대도(大刀)가 나왔다. 이 칼이 바로 스사노오가 아마테라스한테 바쳤다는 구사나기(草那藝)라는 칼이다. 천황가의 신성성을 상징하는 소위 삼종신기(三種神器) 가운데 하나다.

신화적으로 해독하면 뱀은 산이 많은 이즈모 지역의 산신으로 읽힌다. 산신의 몸속에서 칼을 꺼냈다는 것은 산속에서 칼을 추출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즈모는 양질의 사철(砂鐵)이 생산되는 지역이고, 고대의 제련 및 단야(鍛冶) 유적들이 다수 발굴된 바 있다. 스사노오와 뱀의 대결은 스사노오를 신으로 모시던 도래계 대장장이 집단이 사철을 발굴하여 도검을 제작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마유미 쓰네타다(眞弓常忠)는 신라계 대장장이 집단이 이 지역에 진출하여 선주민들과 섞였다가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사철을 독점하여 철기문화를 이룩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토착세력을 몰아내기에 이르렀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런데 이 괴물퇴치담에 담긴 스사노오의 모습이 도래계 대장장이 집단의 위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겉으로는 스사노오가 야마타노오로치를 죽이지만 실제로는 스사노오의 칼 도츠카츠루기(十握劒)가 뱀의 몸속에서 나온 칼 구사나기노츠루기(草劒)와 부딪쳐 이빨이 빠졌다는 사실이다. 도래신 스사노오의 칼보다 이즈모 산신의 몸에서 뽑아낸 칼이 더 강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더 우수한 제련·단야 기술을 지닌 도래인의 이즈모 지배라는 역사학의 해석과 충돌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스사노오가 구사나기를 아마테라스에게 바쳤다는 뒷이야기와 연결하면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스사노오가 바다 건너에서 가져온 칼보다 이즈모의 사철로 정련해낸 칼이 더 강하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는 아마테라스와 무관한 스사노오, 심지어는 적대적인 스사노오를 남매관계로 편집한 기기신화의 의도와 같은 맥락이다.

스사노오는 창세신 이자나기의 코에서 태어난다. 사체화생신화의 사례로 보면 아주 드문 경우인데, 왜 코였을까? 해부학적으로 보면 코는 이중적이다. 이목구비 가운데 나머지와 달리 코는 좌우 분간 없이 하나다. 아니 좌우의 콧구멍을 하나의 코 안에 담고 있다. 음양의 두 기운을 담고 있는 태극과 같다. 스사노오를 도래인으로 해석한다면 그는 한반도와 열도 이즈모에 양다리를 걸친 존재다. 기기신화로 보면 그는 천상 또는 이승의 아버지 이자나기로부터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버리고 지상 또는 저승의 어머니 이자나미한테 돌아간 신이다. 아마테라스와는 남매관계이면서 동시에 적대적이다. 이런 이중적 혹은 매개적 존재성이 스사노오를 창세신의 코에서 태어나게 했던 것은 아닐까? 이자나기의 고개돌리기 역시 이와 무관치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코에 꽂혀 스사노오라는 수수께끼와 맞섰지만 다 풀린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스사노오가 외부자·도래자의 표상이고, 기착한 지역에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채 본향을 그리워하는 신이었다는 사실! 한데 이런 스사노오의 얼굴 위로 느닷없이 재일조선인들이, 제주의 예멘 난민들이 오버랩되다니, 어찌 된 일인가?

▶필자 조현설

한국 고전문학·구비문학을 전공했다. 서울대 교수(국문학)로 한국 신화를 포함한 동아시아 신화와 서사문학을 탐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2004),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2006), <마고할미신화 연구>(2013) 등이 있다. 논문으로 ‘해골, 삶과 죽음의 매개자’(2013), ‘천재지변, 그 정치적 욕망과 노모스’(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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