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 1박2일 잡고 오시라

2018.08.31 16:49 입력 2018.08.31 16:52 수정

광주비엔날레 대표 김선정

미대 나온 뒤 미국에 체류하다 백남준 만나 큐레이터 길로 접어들어
기존 회화 중심 전시에 도전…해외 미술관 기획 가져오기보다 직접 기획하며 새 시도
미술은 각자가 내는 목소리가 사회적 환경과 ‘공명’하는 것일 뿐
‘상상된 경계들’ 테마 7일 개막, 북한 작품 등 163명의 작가 참여…볼거리 많아

지난 27일 광주 용봉동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서 만난 김선정 대표. 전시장은 막바지 준비 작업으로 혼잡했다.<br />전시장을 구획한 가벽들과 일찌감치 걸린 몇몇 회화들이 개막 후의 모습을 궁금하게 했다. 광주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지난 27일 광주 용봉동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서 만난 김선정 대표. 전시장은 막바지 준비 작업으로 혼잡했다.
전시장을 구획한 가벽들과 일찌감치 걸린 몇몇 회화들이 개막 후의 모습을 궁금하게 했다. 광주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지난 27일 찾은 광주 용봉동 2018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은 막바지 전시 준비가 한창이었다. 벽에 걸린 회화들에는 보호용 비닐이 덮여 있었다. 놓다만 설치 작품들은 상상력을 자극했다. 페인트 냄새와 피어오른 먼지 사이로 작가, 큐레이터, 인부들이 뒤섞여 오갔다.

사진을 찍으러 전시장으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사람들이 김선정(53)을 붙들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두 달 넘는 기간 동안 42개국 163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전시에서 김선정은 행사 운영을 책임지는 대표이사와 전시의 예술적 방향을 드러내는 총괄 큐레이터를 겸직하고 있다. 김선정은 짧은 인터뷰 이후에는 전 세계에서 온 젊은 큐레이터들과 만나는 시간이 있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는 점심식사도 걸렀다.

7일 개막을 앞두고 분주한 김선정을 광주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 7월, 3년 임기의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비엔날레에 매진하느라 오랜 시간 가꿔온 아트선재센터의 관장 자리는 내려놓았다. 김선정의 표현을 따르면 “광주비엔날레 주기 2년에 맞춰 한국 미술계가 움직인다”고 하니, 비엔날레 하나에 전력하는 건 자연스럽다.

- 전시 준비는 잘됐나요.

“영화로 치면 세트는 마련됐는데 배우만 도착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관객이 곧 배우라고 할 수 있겠네요.”

-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자신 있는 전시는 어떤 것입니까.

“저도 예전에 비엔날레 보러 오면 아침에 광주 와서 저녁에 올라갔는데, 이번에 오시는 분들은 1박2일을 잡으라고 권하고 싶네요. 올해엔 광주비엔날레 전시관뿐 아니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도 전시를 합니다. 2007년 군부대가 철수한 뒤 줄곧 폐허처럼 방치된 구 국군광주병원도 전시 장소로 활용합니다. 저희가 조금 청소만 하고 장소를 그대로 활용할 예정입니다. 시에서 이곳을 트라우마센터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하니, 지금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는 건 이번 비엔날레가 마지막이겠네요.”

- 북한 작가들이 그린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 전시에도 관심이 갑니다.

“남북관계가 해빙되기도 이전인 지난해 11월에 이미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다만 유엔 경제 제재 때문에 북한 작품을 바로 들여오는 건 어려웠고, 중국이나 미국에 이미 나온 작품들로 구성했습니다. 중국에는 북한 만수대창작사가 운영하는 스튜디오도 있고, 네덜란드에는 꽤 큰 컬렉터도 있습니다.”

- ‘상상된 경계들’이란 주제가 쉽지는 않네요.

“‘다크 유토피아’란 주제도 생각했는데, 이론적으로 연구가 덜 됐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상상된 경계들’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에서 아이디어를 따왔습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의 출범은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지금은 당시와는 반대로 국가주의적 움직임이 도처에 보입니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나 브렉시트가 대표적이겠지요.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나뉘었고, 재작년 11월 광화문광장에서도 일종의 ‘분단’이 있었습니다. 세대, 이념, 심리 면의 경계가 형성된 겁니다. 이번 비엔날레 주제는 이렇게 대치되고 충돌하는 경계에 대해 다루겠다는 의도였습니다.”

- 광주비엔날레가 출범한 지도 20년이 넘었는데요, 초창기의 활력을 잃어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1회 때는 다시 못 볼 행사처럼 소개됐다고 해요. 방송사들이 전시 기간 동안 생방송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사실 그때 입장 수익으로 기금을 마련해 이후 요긴하게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엔 세계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기보다는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중요한 담론들을 소개했습니다. 미술계에선 중요한 전시로 여겨졌지만, 관객은 줄어든 것도 사실입니다. 2008년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 2010년 총감독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가 이후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선정됐습니다. 그들이 광주에서 선보인 아이디어를 베니스에서 숙성시킨 셈인데요, 제가 보기엔 오히려 광주 전시가 더 나았습니다(웃음).”

‘북한미술: 사실주의의 패러독스’ 부문에 출품된 최창호의 ‘로동자’. 광주비엔날레 제공

‘북한미술: 사실주의의 패러독스’ 부문에 출품된 최창호의 ‘로동자’. 광주비엔날레 제공

- 대표이사와 총괄 큐레이터를 겸하는 데 대해 ‘권력 집중’이라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예술감독제 대신 11명의 다수 큐레이터제를 도입했습니다. 큐레이터가 여러 명이다 보니 혹시 모를 분쟁이 있을 때 조정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이사회 의견이 있었습니다. 전 큐레이터들의 아이디어가 현실화될 수 있도록 도울 뿐입니다.”

김선정은 미대 학부와 대학원을 나온 뒤 남편을 따라 미국에 체류하다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만났다. 백남준의 소개로 휘트니 미술관 인턴십을 했고, 이후 큐레이터의 길로 접어들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장녀인 그는 귀국 후에는 대우그룹이 세운 경주 선재미술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설치, 영상 작업의 흐름을 눈여겨본 김선정은 기존 한국 미술관들의 회화 중심 전시에 도전했다.

1998년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개관을 준비하면서 김선정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기획 역량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트선재센터 건물이 만들어지기 전 그 장소에 있던 일본식 한옥, 양옥이 결합된 건물의 구조를 이용한 ‘싹’(1995)전은 김선정이 처음으로 큐레이터로 기획한 전시이자, 1990년대의 주요한 미술 이벤트로 꼽힌다. 최근 미술계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장소특정적 미술’이 일찌감치 시도됐다. 해외 유명 미술관의 기획을 가져오기보다는 큐레이터와 작가가 협력해 직접 전시를 기획하고,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에 방점을 찍는 것도 아트선재가 시도해온 것들이다. 당시에는 “희한하다” “퇴행적이다”라는 비판과 비웃음이 이어졌으나, 아트선재의 기획은 결국 시대를 앞섰다고 판명났다.

- 안규철, 오형근, 이불, 최정화, 서도호 작가 등의 젊은 시절을 함께하셨습니다. 이들 모두 지금은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됐죠. 원석 같은 아티스트를 ‘발굴’하신 셈인가요.

“워낙 잘하는 분들이셨는데, 제게 그분들과 함께할 전시 기회가 생겼을 뿐이죠. 에전엔 자주 만났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한다는 점만 다르네요.”

-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서 있으려면 생각과 감각을 끊임없이 갱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따라잡기보다는 끌려간다고 할까요. 큐레이터는 젊을 때 만난 작가들하고 같이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나이 든 큐레이터가 젊은 작가하고 같이 일하면 좋겠지만, 이해 못하는 작업을 억지로 함께할 수는 없습니다. 흔히 미술은 ‘트렌드’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각자 내고 싶은 목소리를 낼 뿐인데, 사회적 환경이 맞으면 그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거죠.”

‘상상된 국가들: 모던 유토피아’ 부문에 출품된 알라 유니스의 ‘더 위대한 페미니스트 바그다드를 위한 계획’. 광주비엔날레 제공

‘상상된 국가들: 모던 유토피아’ 부문에 출품된 알라 유니스의 ‘더 위대한 페미니스트 바그다드를 위한 계획’. 광주비엔날레 제공

- ‘좋은 작가’를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작품에는 시대상이 반영되고, 시대의 요구는 작품이 됩니다. 미술은 미술 안의 이야기뿐 아니라, 사회적인 발언까지도 하게 됩니다. 작품에 반영된 사회를 보면서 좋은 작가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큐레이터는 끝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이번 비엔날레도 준비 과정에서 학술 프로그램을 많이 마련했습니다(광주비엔날레가 내는 미술지 ‘눈’ 최신호에는 슬라보예 지젝, 자크 랑시에르, 아즈마 히로키 등의 글이 실렸다).”

- 그래도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인식이 여전합니다.

“안 어려워요. 영화 한 편을 보기 전에 관련 기사나 예고편, 리뷰를 찾아보죠. 드라마만 해도 포털에 검색하면 스토리가 다 나오잖아요. 미술도 마찬가지예요. 조금만 알고 오면 어렵지 않아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할 수밖에요.”

- 국제적 네트워크가 강한 큐레이터로 손꼽힙니다. 비결이 있습니까.

“젊었을 때부터 해외에서 전시를 기획할 일이 많아서 그런 듯합니다. 한국에서 활동하면서도 제가 기획한 전시를 보면서 관심 가져준 해외 큐레이터, 아티스트가 많았어요. ‘함께할 작가 추천해달라’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 네트워크가 조금씩 넓어졌습니다.”

- 재벌기업이 운영하는 국내 미술관이 많습니다. 자금력과 인맥으로 국내에서 보기 힘든 좋은 전시를 기획하는가 하면, 소유자의 방침에 따라 하루아침에 운영 방식이 바뀌는 역효과가 나기도 합니다. 2017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이후, 삼성 리움 미술관이 한창 준비 중이던 기획전을 취소해버린 것도 한 사례입니다. 이후 리움은 상설전시만 남겨두었습니다.

“국공립미술관이 더 잘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사립미술관의 비중이 줄어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은 사립미술관, 유럽은 국공립미술관 위주인데, 최근엔 유럽의 국공립미술관도 자금 측면에서 압박이 있다고 해요. 개인적으로는 우리 국공립미술관 수장의 임기가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어요. 미술관은 2~3년 전부터 기획을 시작하는데, 대부분 국공립미술관장 임기가 그 정도죠. 결국 전임자가 기획한 전시 하다 보면 나갈 때가 돼요. 미술관은 단기에 성과를 내기 힘든 곳입니다.”

- 회화를 전공하셨는데 화가의 꿈은 없으셨나요.

“노력해서도 극복할 수 없는 일이 있어요. 전 대학 1학년 들어가자마자 제게 작가로서의 재주는 없다는 걸 알았어요. 전 줄곧 예술학교를 나와서 작품을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어렵진 않았는데, 집안 반대 무릅쓰고 미대 들어온 친구들에 비하면 절실함은 없더라고요. 어쩌면 제게 할 이야기가 별로 없었을지도 몰라요.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되는 것 같아요.”

- 언제 행복하십니까.

“좋은 작가들 만나서 작업하고 전시 오픈할 때요.”

- 전시 개막하기 전에 불안하고 초조하지는 않으신가요.

“아니요.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를 했는데, 그때 제일 걱정했어요. 보통 2~3명의 작가들 전시로 꾸미는데, 그때 10여명의 젊은 작가들을 한꺼번에 소개했거든요. 주변에서 더 염려할 지경이었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았습니다. 이후엔 별로 걱정이 없어요. 열심히 하면 결과가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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