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를 비난하는 남자들의 ‘꿀빠니즘’에 대해

2019.02.22 16:41 입력 2019.02.22 16:48 수정
위근우 칼럼니스트

하태경 의원의 ‘여가부 방송 가이드라인’ 흔들기

한 글자도 안 맞는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에 대해 ‘여자 전두환’ 운운한 바른미래당 하태경 최고위원 이야기다. 그는 지난 2월12일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에서 발간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 개정판에 수록된 부록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군사 독재 시절의 두발 단속 및 미니스커트 단속과 동일하다며, 진선미 여가부 장관에 대해 ‘여자 전두환’이라고 말했다. 비유로 논증을 대체하는 건 선동가들의 못된 습관 중 하나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에 실린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군사 독재 시절의 두발 단속 및 미니스커트 단속과 동일하다며 진선미 여가부 장관을 ‘여자 전두환’이라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에 실린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군사 독재 시절의 두발 단속 및 미니스커트 단속과 동일하다며 진선미 여가부 장관을 ‘여자 전두환’이라고 말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해당 안내서는 2017년 4월 나왔던 안내서의 개정판이고, 하태경이 문제 삼은 부분은 이번 개정판에 추가된 부록이다. 해당 문서가 하태경의 주장대로 독재 정부의 보도지침에 준하는 강제력이 있었다면 이미 지난 2년 동안 한국 방송 콘텐츠 안에서 성차별적 표현이나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성비 불균형은 상당 부분 사라졌을 것이다. 정말 그런가?

지난해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이영자와 박나래가 최고의 예능인 자리를 놓고 다퉜음에도 여전히 MBC에선 남성 연예인으로만 구성된 ‘호감 구혼자’(동의하긴 어렵지만)들과 일반인 여성 간 만남을 주선하는 <호구의 연애> 방영을 앞두고 있고, KBS 역시 남성 5명에 여성 1명만 구색 맞추듯 넣은 <6자회담>을 파일럿으로 내놓았다. 성적 대상화도 마찬가지다. 당장 지난 연말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MC 신현준은 함께 진행을 맡은 설현에게 초심 운운하며 과거 유명했던 등신대 포즈를 요구했다. 2년 동안 도대체 바뀐 게 없으니 다시 한번 안내서로 권고하는 상황에서 ‘여자 전두환’이라는 비유가 온당할까.

그렇다면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구시대적인 외모 단속과 비슷한 내용이긴 할까. 해당 문서는 “방송 프로그램이 다양한 외모를 보여줘야 할 필요성과 과도한 외모 지상주의의 해악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여 방송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외모를 보여주고 다른 외모 각각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도록 권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태경은 “음악방송에 마른 몸매, 하얀 피부, 예쁜 아이돌 동시 출연은 안된다고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확한 문구는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합니다”이며 바로 앞에 나온 “바람직한 외모 기준을 획일적으로 제시하지 않도록 합니다”의 맥락에서 제안된 것이다. 즉 동시 출연을 막은 것이 아니라, 방송에서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으니 그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요구한 것에 가깝다. 트와이스와 레드벨벳이 함께 출연하면 안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의 외모만이 긍정적인 기준으로 대중에게 과도하게 노출되는 것은 문제라는 이야기다. 이것은 비슷한 듯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다. 과거 군사 독재 시절의 보도지침이 다양성을 제재하는 것이었다면, 오히려 이번 가이드라인은 시장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문화적 획일성에 다양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 전두환’이란 말은 허구다.

지난 2월12일 여성가족부에서 발간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 개정판은 “방송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외모를 보여주고 다른 외모 각각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도록 권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2월12일 여성가족부에서 발간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 개정판은 “방송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외모를 보여주고 다른 외모 각각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도록 권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2017년판’ 개정판 내며 ‘부록’ 추가
성차별 표현 등 만연하자 재차 권고

군사 독재 보도지침은 다양성 통제
이번 안내서는 문화적 다양성 요구
강제력 없음에도 ‘독재’ 딱지 붙여

‘비유로 논증’ 선동가들 못된 습관
권력위협 느껴서 아닌 여론 결집용
이럴수록 성인지감수성 교육 필요

하지만 하태경이 진심으로 여가부의 권력을 과대평가하는 건 아닐 것이다. 연초부터 그와 같은 당의 이준석이 함께 ‘워마드 척결’이란 구호를 외치고, 해야 할 일을 하는 여가부를 때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반페미니즘 전선을 그었을 때 결집하는 20~40대 남성의 숫자 때문이다. “김영오 등 극소수 (세월호) 유족들이 대한민국 헌법을 짓밟고 (박근혜) 대통령까지 능욕하는데…(중략) 일베 등 20대 우파들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했던 하태경이 그 일베를 미러링해온 워마드를 악마화하기 위해선 기억력과 양심,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 그 이후 선동적인 레토릭 구성은 별로 어렵지 않다. 사실 그의 ‘여자 전두환’ 비유는 이미 수년 전 남성들 사이에서 유행한 ‘페미나치’의 또 다른 버전에 불과하다. 더 멀리는 1997년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소설 <선택>으로 물의를 빚었던 이문열이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선 운동에 대해, 또 그 이후 벌어진 신문개혁 운동에 대해 ‘홍위병’ 딱지를 붙인 바 있다. 어떤 운동 안에 과격함이나 독선적 요소가 있을 수는 있다. 다만 그들이 정말로 홍위병과 나치와 전두환이 되기 위해선 상대를 문자 그대로 침묵시킬 수 있는 권력이 필요하다.

정말 ‘여자 전두환’이라면 진선미 장관이 탱크를 몰고 상암동에 진입해서, “메갈은 사회악” “페미나치 패망” 따위의 가사를 썼던 산이를 섭외하고 방송 중 ‘아이 ♥(러브) 몰카’라는 문구가 나오도록 편집한 MBC <킬빌> 연출자의 조인트라도 차줘야 하지 않을까. 지난 2월14일, 진선미 장관은 30, 40대 남성 1인 가구와의 만남을 진행했는데, ‘여자 전두환’이라면 정책을 위한 간담회에서 “육체적 외로움”이나 호소하고 있는 반동분자들을 남산에 데려가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직까지 간담회 참석자 중 행방이 묘연한 남성이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태경은 상대의 권력을 실증하는 대신 비유를 통해 상대를 과도하게 악마화하고 그와 대결하는 자신을 정의로운 약자의 위치에 놓는다. 그러니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을 하던 세월호 유족에 대해 대통령을 능욕한다고 비난하던 하태경이 방송 내 성평등을 위한 온건한 권고에 대해선 “반독재 투쟁 깃발을 다시 들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결의에 차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비양심적이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지난 2월19일 포털 다음 메인에 오랜 시간 노출됐던 ‘파이낸셜 뉴스’의 ‘ “ ‘남자 집 맞아?’는 성 고정관념”…성인지 감수성에 매몰된 여가부 산하기관’이라는 기사와 포털 댓글은 하태경류의 여가부 때리기와 선동적인 레토릭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보여주는 리트머스처럼 보인다. 해당 기사는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가 논란이 되자 발 빠르게 여가부 산하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발간한 <2018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보고서(웹툰 편)>를 공격했다. 해당 보고서는 웹툰 <N번째 연애>에서 정리정돈이 잘된 집을 보며 ‘남자 집 맞아?’라고 독백한 것에 대해 “집안일을 여성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성별 고정관념이 바탕이 된 장면”이라고 지적했고, 이에 대해 파이낸셜 뉴스는 “여가부를 중심으로 정부가 성평등 표현에 지나치게 엄격하게 대처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억누를 수 있다는 반발이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해당 기사에 대한 포털 다음의 최다 추천 댓글은 “여가부 없애라”이며, 세 번째 최다 추천 댓글은 “오히려 남성 비하 아닌가? (중략) 깨어있는 이들이 이들(여가부)의 파시즘 나치즘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한다.

보고서에서 여성에 대한 구타가 나온 <복학왕>이나 맥락 없는 비키니 포즈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한 <프리드로우> 등 꽤 명백한 여성혐오 장면을 지적했음에도 <N번째 연애>의 사례만 가져와 기사화한 것도 수상하지만, 해당 사례처럼 일상적 표현 안에 스민 성별 스테레오타입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것이야말로 자칭 “깨어있는 이들”이 정말 해야 할 일이다. 거기에 필요한 게 파이낸셜 뉴스가 문제 삼은 성인지 감수성이다.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단톡방에서 다른 매체 기자들과 동료 여성들에 대해 성희롱을 했던 파이낸셜 뉴스 기자가 2개월 근신 이후 원래 자신이 있던 사회부 법조팀 출입 기자로 복귀하는 일이 벌어진다. 다시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언론계 첫 ‘미투’ 사례로 나왔던, 파이낸셜 뉴스 부장급 기자가 여성 수습기자를 성추행하는 일이 벌어진다. 성인지 감수성에 ‘매몰된’ 여가부 산하기관이 웹툰 속 성별 고정관념을 지적한 것과 성인지 감수성 없는 언론인들에 의한 여성의 피해 중 무엇이 더 구체적이고 물리적이며, 또한 권력에 기반하고 있는가.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여가부가 여전히 한국에 필요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여가부를 때리고 비난하는 목소리로부터 실증된다. 그들이 여가부를 비난하고 남성들의 반여가부 여론을 결집시키는 건 정말로 여가부의 권력에 실존적 위협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쉽고 리스크도 적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규모 사기극이 쉽게 벌어지지 않기 위해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 필요하고, 성평등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여가부를 없애라는 말은 왜 중소벤처기업부는 존재하고 대기업부는 존재하지 않느냐는 말처럼 현실에 무지한 소리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오래된 잠언은 틀렸다. 정말 무지하면 최소한의 용기도 필요하지 않다. 조금의 용기도 내지 않지만 압제자에게 저항하는 기분은 낼 수 있다.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꿀빠니즘’이란 단어만큼 여기에 어울리는 말을 찾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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