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졌던 여성 작곡가들이 되살아난다

2019.03.12 13:48
장지영 공연 칼럼니스트

20세기 후반 페미니즘 영향으로 여성 작곡가 발굴 활발…최근 BBC 라디오3의 선도적 활약 주목

영국 공영방송 BBC는 현재 11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다. 기존의 5개 라디오에 최근 디지털 전용 방송 6개가 더해진 것이다. 이 가운데 1946년 생긴 BBC 라디오 3는 클래식 음악 전문 방송으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 축제인 BBC 프롬스를 주최하는 곳도 바로 BBC 라디오 3다. 또한 클래식 음악계에서 새로운 음악과 뮤지션을 소개하는 커미셔너로서도 권위를 가지고 있다.

영국 문화·미디어·스포츠부에서 예술 담당 국장과 잉글랜드 예술위원회 최고경영자를 거쳐 2015년 1월 BBC 라디오 3의 새로운 수장이 된 앨런 데이비는 새로운 미션을 발표했다. 그동안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던 여성 작곡가들을 발굴해 그들의 작품을 자주 방송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이 포함된 3월에는 여성 작곡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방송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데이비의 발표 이후 BBC 라디오 3는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작곡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해 호평을 얻고 있다. 특히 2017년부터 3년째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는 아예 24시간 동안 여성 작곡가 및 여성 뮤지션과 관련된 작품만 방송했다.

‘세계 여성의 날’이었던 3월 8일 BBC 라디오 3 홈페이지 갈무리

‘세계 여성의 날’이었던 3월 8일 BBC 라디오 3 홈페이지 갈무리

여성 작곡가들에 주목한 BBC 라디오 3의 방향은 2011년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 이후 여성 인권과 성 평등에 대해 영국 사회의 관심이 높아진 것과 일맥 상통한다. 특히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 영국에서 격렬했던 여성 참정권 운동은 큰 주목을 받았다. 2018년 영국의 여성 참정권 쟁취 100주년을 앞두고 있는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잇따라 재조명 작업이 시작됐다. 여성 참정권을 소재로 2015년 영화 <서프러제트>와 2016년 드라마 <셜록 홈즈> 번외편 ‘유령신부’가 제작된 것은 당시 영국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준다.

BBC 라디오 3는 영국의 아카데믹한 음악 학계는 물론이고 콘서트홀, 오케스트라 등의 현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앞다퉈 여성 작곡가들에 대해 연구하고 그 작품을 연주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언론도 역사 속에서 잊혔거나 저평가 됐던 여성 작곡가들을 소개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리스 서정시인 사포와 현재까지 남아있는 사포의 시 일부|위키피디아

그리스 서정시인 사포와 현재까지 남아있는 사포의 시 일부|위키피디아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작곡가는 모두 남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여성 작곡가가 존재했다. 기원전 7세기 그리스의 서정시인 사포는 기록에 남은 최초의 여성 작곡가다. 남성에게만 공식적 교육이 허락되던 시기에 그는 레스보스 섬에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열고 시와 음악 등 예술을 가르쳤다. 당시엔 시가 노래로 불렸으며, 사포는 현악기인 리라로 곡을 작곡했다고 추정된다. 현재 사포의 음악은 남아있지 않고 시의 일부만 전해진다.

사포 이후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 작곡가는 중세 시대 비잔틴제국의 수녀였던 카시아(810~867)다. 카시아는 많은 성가 음악을 작곡 및 작사했으며, 이들 작품들 일부는 아직도 비잔틴 교회의 전례에 사용된다. 또 다른 중세 시대 여성 작곡가 힐데가르트 폰 빙엔(1098~1179)도 수녀였다. 베네딕트 수도회 소속 수녀원장이었던 그는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다방면에서 족적을 남긴 천재였다. 작곡가로서 그는 신을 찬미하는 그레고리안 찬트와 음악극을 120여 편 남겼다. 특히 음악극 <성덕의 열(Ordo Virtutum)>은 오페라의 시조로 평가받는다.

비잔틴제국의 수녀였던 카시와(왼쪽)와 중세시대 베네딕트회 수녀였던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초상화.|위키피디아

비잔틴제국의 수녀였던 카시와(왼쪽)와 중세시대 베네딕트회 수녀였던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초상화.|위키피디아

르네상스 시대에는 66곡의 마드리갈(세속 성악곡)을 남긴 막달레나 카수레나(1544~1590)의 활약이 대표적이다. 카수레나는 서양 음악사에서 자신의 작품을 출판한 최초의 여성 작곡가다. 당시 여성의 사회 활동에 제약이 많았지만 카수레나는 직업 가수 겸 작곡가로 활동했다. 다만 결혼 이후엔 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크와 고전시대에는 적지 않은 여성 작곡가들이 등장해 악보까지 많이 남기고 있다. 프란체스카 카치니(1587~1640), 바바라 스트로치(1619~1677), 엘리자베스 클로드 자케 드 라 게르 (1665~1729), 엘리자베타 드 감바리니(1731~1765), 예카테리나 시냐비냐(~1784), 율리아네 라이하르트(1752~1783), 아멜리-줄리 캉데이유(1767~1834) 등은 당대 상당한 명성을 얻었던 여성 작곡가들이다. 카치니가 1625년 폴란드 왕자의 피렌체 방문을 기념해 작곡한 <알치나 섬의 루지에로의 해방>은 여성이 작곡한 최초의 오페라로 평가받는다.

이 시기의 여성 작곡가들은 감바리니처럼 교양으로 음악을 배운 귀족 출신도 일부 있지만 대체로 음악가 집안의 딸이었다. 이들은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하프시코드, 쳄발로 등의 건반악기를 배웠다. 그리고 성장한 이후 가수나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작곡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이들 가운데 극소수만 오페라, 협주곡, 오라토리오 등 대규모 작품을 썼고 대부분은 성악곡이나 건반악기용 작품을 많이 남기고 있다. 당시 여성 작곡가들의 활동이 워낙 예외적이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탓에 대규모 작품을 위촉받지 못했던 탓이다.

당시 여성 작곡가들은 주로 사적인 모임을 위해 소규모 실내음악을 작곡했으며, 그나마 결혼 이후엔 가정과 육아와 병행하기 어려워 음악 활동을 접는 경우가 많았다. 작곡을 지속하려다 이혼당한 사례도 있었다는 점에서 당시 여성 작곡가들의 선택의 폭이 얼마나 적었는지 알 수 있다. 음악사에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여성 작곡가가 등장하지 못했던 이유다.

바로크와 고전시대 여성 작곡가들은 20세기 후반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발굴되기 시작해 21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녹음과 연주가 이뤄지고 있다. 1971년 여성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이 발표한 논문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었는가’를 계기로 미술 분야에서 여성 화가들의 발굴이 이어졌는데,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는 1981년 음악학자 아론 코헨이 만든 『국제여성작곡가백과사전』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백과사전에는 전 세계 자료를 토대로 고대부터 당시까지의 여성 작곡가 5000명의 이름이 실렸다. 예상을 뛰어넘는 수의 여성 작곡가들이 활동했던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들의 삶과 음악에 대한 관심도 증폭됐다. 코헨은 1987년 개정판을 내면서 자료를 수집해 6000명의 이름을 실었다.

바로크와 고전시대 여성 작곡가들에 대해 오스트리아 출신 유명 음악학자 아르놀트 베르너-옌젠은 『음악의 역사』 등 저서에서 그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 작곡가들의 음악이 무시돼 왔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베르너-예전 이외에도 많은 음악학자들은 당시 여성 작곡가들이 남긴 성악곡과 건반 음악은 물론이고 오페라, 소나타 등이 동시대 남성 작곡가들과 비교해도 기교나 작품성 면에서 손색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나넬 모차르트(왼쪽)와 모차르트 남매의 모습.|위키피디아

나넬 모차르트(왼쪽)와 모차르트 남매의 모습.|위키피디아

그래도 작곡가로 이름을 남긴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다. 천재 작곡가로 유명한 모차르트의 누나인 나넬 모차르트는 재능 있는 하프시코드, 피아노,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성악가, 작곡가였다. 모차르트가 누나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편지들도 다수 남아있다. 하지만 당시 여자가 직업을 택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보수적 사회에서 아버지가 동생만 뒷바지하는데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집안 살림을 떠맡은 나넬 모차르트는 음악을 포기해야 했다.

19세기 낭만시대로 넘어가면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들이 나온다.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나인 파니 멘델스존(1805~1847), 로버트 슈만의 아내로 유명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1819~1896)을 비롯해 19세기 프랑스 음악원 교수를 지낸 유일한 여성인 루이즈 파랑(1804~1875), 독일 예술가곡의 역사에서 잊혔다가 최근 주목받고 있는 요제핀 랑(1815~1880) 등이 대표적이다.

파니 멘델스존(왼쪽)과 클라라 슈만.|위키피디아

파니 멘델스존(왼쪽)과 클라라 슈만.|위키피디아

여성 인권과 평등 의식이 싹튼 시기였던 19세기의 여성 작곡가들은 이전 시대에 비하면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제약이 만만치 않았다. 예를 들어 파니 멘델스존은 어린 시절부터 동생 못지않게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보수적인 아버지는 음악가의 길을 선택한 아들은 아낌없이 지원하면서도 딸에겐 취미로만 음악을 하라고 강요했다. 아버지는 생전에 딸의 작품 출판을 금지시켰다. 그래서 파니 멘델스존의 가곡집 6개는 동생의 이름으로 출판됐다. 동생은 훗날 “내 누나가 나보다 뛰어난 작곡가였다”고 말했지만 누나가 공식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반대했다. 결혼 이후에도 가곡 등을 꾸준히 작곡한 파니 멘델스존은 아버지의 타계 이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데뷔하려 했으나 리허설 도중 심장마비로 요절하고 말았다.

클라라 슈만은 당대에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떨쳤지만 젊은 시절엔 작곡에도 관심을 보였다. 재기 발랄한 소품들을 작곡했던 클라라 슈만은 “작곡은 내게 큰 기쁨을 준다. 창작의 즐거움을 억누를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의 반대로 본격적으로 작곡에 나서지 못했다. 게다가 30대 중반 이후엔 아픈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면서 생계를 위한 연주에 바쁘다 보니 작곡에서 더욱 멀어지게 됐다.

하지만 여성인권에 대한 의식이 커지고 여성 참정권 운동이 본격화되는 19세기 말부터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도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영국 출신으로 서프러제트(여성 참정권 운동가)로도 유명한 여성 작곡가 에델 스미스(1858~1944)는 그런 균열을 일으킨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연주자를 병행한 선배들과 달리 처음부터 전업 작곡가를 지향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평가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그는 클래식계의 유리천정을 계속 두드려댔다. 1903년 여성 작곡가로는 처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그의 작품 <숲>이 공연되기도 했다. 그는 말년에 작위를 서훈 받는 등 뒤늦은 영예를 누렸다.

20세기 들어 여성 참정권이 각국에서 인정된데 이어 1·2차 세계대전에 따른 노동력 부족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하면서 여성 작곡가들의 위상도 달라졌다. 나디아 불랑제(1887~1979)와 릴리 불랑제(1893~1918) 자매는 현대의 문을 본격적으로 연 여성 작곡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동생인 릴리 불랑제는 19살의 나이에 ‘작곡가의 등용문’인 로마 대상을 여성 최초로 수상하는 등 비범한 재능을 보였다. 아쉽게도 몸이 약해 25살의 나이에 요절하는 바람에 작품을 많이 남기지 못했지만 아직도 언니 나디아 불랑제의 작품과 함께 연주된다. 동생을 높이 평가했던 나디아 불랑제는 동생이 세상을 떠나자 “동생의 작품에 비하면 내가 쓴 것은 하찮다”며 작곡을 그만뒀다. 대신 그는 파리 음악원에서 작곡과 교수로 활동하면서 클리퍼드 커즌, 존 엘리엇 가디너, 이고르 마르케비치, 필립 글래스, 아스토르 피아졸라, 조지 거슈윈, 애런 코플랜드 등 수많은 거장 작곡가들을 키워냈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 교수였던 그는 1937년 런던 로열필하모닉오케스트라, 1938년 보스턴과 뉴욕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최초의 여성 지휘자로도 이름을 남기고 있다.

나디아 불랑제(왼쪽)와 릴리 불랑제 자매.|위키피디아

나디아 불랑제(왼쪽)와 릴리 불랑제 자매.|위키피디아

블랑제 자매 이후 클래식계에서 여성 작곡가들의 활약은 눈에 띄게 확장됐다. 숫자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나마 여성이 남성과 거의 동등한 환경에서 작곡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음악 분야에서는 여성 작곡가들이 남성 작곡가 못지않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 출신의 세계적 작곡가 진은숙.|서울시향

한국 출신의 세계적 작곡가 진은숙.|서울시향

지난해 미국의 여성 클래식 평론가 앤 미젯가는 워싱턴 포스트에 20세기 이후 뛰어난 여성 작곡가 35명의 리스트를 게재했다. 메레디스 몽크, 캐롤린 쇼, 조안 타워, 카이야 사리아호, 폴린 올리베로스, 줄리아 울프,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미시 마졸리, 제니퍼 히그던, 릴리 불랑제, 어거스타 리드 토마스, 저메인 타유페르, 루스 크로포드 시거, 두 윤, 안나 클라인, 안나 소발스도티르, 레라 아우어바흐, 파올라 프레스티니, 진은숙, 이브 베글라리안, 사라 커크랜드 스나이더, 라우라 카민스키, 가브리엘라 레나 프랭크, 리자 비엘라와, 멜린다 와그너, 갈리나 우스트볼스카야, 슐라밋 란, 첸 이, 에이미 비치, 발레리 콜먼, 리비 라슨, 플로렌스 프라이스, 글로리아 코테스, 주디스 와이어, 세실 샤미나드의 이름이 올라있다. 최근 ‘바흐 음악상’을 수상한 한국 작곡가 진은숙은 영국의 권위 있는 음악잡지 <그라마폰>이 뽑은 ‘당대 최고의 여성 작곡가 10명’에도 포함됐다.

공연 칼럼니스트 장지영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성균관대 공연예술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한국기자협회 지원으로 일본 도쿄대학대학원 문화자원학과에서 연수했다. 1997년 국민일보에 입사해 문화부 스포츠부 사회부 국제부 등 여러 부서를 거쳤다. 2003년 문화부에서 처음 공연을 담당하면서 공연계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기자로서만이 아니라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다양한 매체에 공연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재밌게, 재밌는 것을 진지하게, 진지한 것을 유쾌하게, 그리고 유쾌한 것을 어디까지나 유쾌하게”라는 일본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의 격언을 따르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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