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됐던 목소리가 돌아왔다 “우리가 지금 여기 있지라”

2019.06.15 06:00 입력 2019.06.15 06:01 수정
위근우 칼럼니스트

미디어 속 전라도 사투리의 재발견

(위쪽부터)네이버 웹툰 ‘정년이’의 윤정년,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씨, SBS 드라마 <녹두꽃>의 송자인(한예리)의 공통점은 그동안 미디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한다는 점이다. 사회의 무관심이나 반강제적 배제 속에서 익명화되었던 이들이 다시 구체적인 형태와 목소리를 얻고, 그것을 전라도라는 지역의 언어로 발화한다는 점은 여러 지점에서 상징적이다.  강윤중 기자·네이버 웹툰 ‘정년이’ 캡처·SBS 제공

(위쪽부터)네이버 웹툰 ‘정년이’의 윤정년,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씨, SBS 드라마 <녹두꽃>의 송자인(한예리)의 공통점은 그동안 미디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한다는 점이다. 사회의 무관심이나 반강제적 배제 속에서 익명화되었던 이들이 다시 구체적인 형태와 목소리를 얻고, 그것을 전라도라는 지역의 언어로 발화한다는 점은 여러 지점에서 상징적이다. 강윤중 기자·네이버 웹툰 ‘정년이’ 캡처·SBS 제공

영광 출신 70대 여성인 ‘박막례’
고부에서 일어난 ‘동학농민군’
국극 도전 위해 상경한 ‘윤정년’

전라도 사투리의 재발견이라고 해도 될까. 지상파 드라마와 유튜브, 웹툰이라는 각기 다른 미디어에서 최근 가장 돋보이는 콘텐츠인 SBS <녹두꽃>, 유튜브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 채널, 네이버 웹툰 <정년이>의 공통점은 그동안 미디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전라도 사투리를 작품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전라도 고부를 기점으로 시작된 동학농민운동을 그린 <녹두꽃>에서 주인공 백이강(조정석)과 송자인(한예리)을 비롯해 전라도 출신 동학군은 모두 사투리를 사용하며, 1950년대 여성국극 이야기를 그린 <정년이>의 주인공 윤정년은 목포 출신으로 “아따 국극단은 돈을 가마니로 번다지라?”고 외치며 무작정 상경한다. 전라도 영광 출신인 박막례씨의 유튜브 영상에선 그의 사투리와 억양 그대로를 음역한 자막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상황은 우연적이다. 이들 콘텐츠에 전라도 사투리가 사용되는 이유나 맥락은 각각 다르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건, 이들 콘텐츠의 골자를 이루는 것이 배제되어오던 것들의 귀환,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던 이들의 목소리라는 것이다.

무관심에 익명화됐던 인물들은
구체적인 인격으로 재현되고
모두 전라도 사투리로 발화한다

크리에이터 박막례씨의 대체 불가능한 개인 서사는 최근에 낸 에세이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에 대한 소개 영상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여자라고 나 글도 안 가르쳐주고 이름도 막내딸이라고 대충 지어놓고 (중략) 내가 이대로 죽을 수 없거든? 너무 억울하거든? 그래서 내가 진짜 버텼더니 이런 날이 다 오는구나.” 여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한 시절에 태어나 온갖 궂은일을 견디며 살아온 70대 여성이 버티고 버텨 이제야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버티지 못하고 스러진 뒤 누군가 다시 호명해주기 전까지 역사 속에 잊힌 존재들도 있다. 기존 사극이 왕궁을 배경으로 하거나 위인을 주인공으로 한 다분히 엘리트 중심적인 서사거나, 그 반대의 경우에도 SBS <임꺽정> <장길산>처럼 영웅 서사에 가까웠다면, <녹두꽃>은 동학농민운동을 다루되 영웅 전봉준의 이야기가 아닌 수많은 주체화된 민중의 모습을 그려낸다. 최근 웹툰의 주요 화두인 여성 서사의 맥락 위에 있는 <정년이> 역시 그동안 미디어 안에서 잘 재현되지 않았던 여성국극과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여성들의 모습을 생기 있게 묘사한다. 이처럼 사회의 무관심이나 반강제적 배제 속에서 익명화되었던 이들이 다시 구체적인 형태와 목소리를 얻고, 그것을 전라도라는 지역의 언어로 발화한다는 건 상징적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전라도라는 공간이 경험한 역사적 상처와 정치적 배제의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모든 게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는 미디어 안에서도 전라도 사투리가 유독 지역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재생산하는 스테레오타입 형태로 활용된 건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1980년 광주를 그리겠다던 SBS <모래시계>에서조차 같은 조직폭력배 중에서도 비열한 역할인 이종도(정성모) 등만 전라도 사투리를 써, 평생을 지역 차별과 싸워온 고(故) 김대중은 “<모래시계>를 만든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까지 했었다. 이후 꾸준히 전라도 사투리는 비열한 건달의 언어로 사용되다가, 정작 영화 <친구>의 성공 이후 의리 있고 멋지게 그려지는 조폭 캐릭터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tvN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에서 볼 수 있듯, 터프하면서도 의리와 섬세함을 겸비한 ‘경상도 싸나이’ 캐릭터는 한국 사회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남성성을 대표하는 모델이 되었다. 그에 반해 최근작인 SBS <열혈사제>의 황철범(고준)의 경우 약간의 코믹함과 배우의 매력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여전히 악랄하고 비열한 전라도 출신 조폭 캐릭터의 변주에 가까웠다. 그걸 보며 전라도 사람은 뒤통수를 친다, 건달이 많다는 오래된 편견을 재확인하는 시청자가 없다 해도, 미디어 안에서 특정 지역 사투리가 다양하고 구체적인 인격의 형태로 재현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큰 문제다. 이것은 일종의 무시다. 그리고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가 정확히 지적했듯, “무시당한다는 것은 단순히 나쁘게 생각된다거나 업신여김을 당한다거나 타인의 의식적 태도나 심리적 신념 속에서 평가절하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온전한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거부당하는 것이고, 사회생활에 동료로 참여하는 것에서 배제당하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됐던 가수 홍자의 행사 발언은 이러한 누적된 부정의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온 것처럼 보인다. 경상도 출신인 그가 “전라도 사람들은 실제로 뵈면 뿔도 나 있고 이빨도 있고 손톱 대신에 발톱이 있고 그럴 줄 알았는데 여러분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주셔서 너무 힘이 나고 감사하다”고 말했던 건, 아마도 전라도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는 나름 좋은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과 지역민에 대한 그런 오해와 무지 자체가 사회 전체적인 배제의 메커니즘을 통해 지금까지도 가능했던 것이며, 그 안에서 쉽게 차별과 혐오가 용인됐던 것이기에 그의 발언은 경솔하고 부적절했다.

2019년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한국에서, 앞서 언급한 흥미로운 텍스트들이 전라도 사투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그래서 반갑고 또한 조금은 필연적으로 느껴진다. 빤하지 않은, 그러면서도 정치적으로도 불편하지 않은 콘텐츠를 고민한다면 당연히 배제되어온 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교집합으로서의 전라도 사투리가 함께할 수 있다. <정년이>의 스토리를 담당하는 서이레 작가는 “여성국극의 영원한 왕자로 불리는 임춘앵 역시 전라도 출신이다. 여성국극에 도전하려는 주인공이라면 소리에 어느 정도 재능과 자신감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럼 당연히 전라도 출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힌다. 전라도 토박이 집안 출신에 20년 동안 전라도에서 자란 이에게 2년째 검수를 받아가면서까지 사투리 고증에 힘쓰는 그는 “첫 화가 올라오고 나서 전라도 사투리의 등장에 놀라고 감격하는 독자들을 여럿 보고 씁쓸하면서도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도 말한다.

기득권 남성의 언어에 묻혀있던
경상도 여성 노인의 목소리 또한
최근 예능 ‘가시나들’서 다뤄졌다

<녹두꽃>과 <정년이>, 그리고 박막례씨의 동영상 속에서 등장하는 전라도 사투리가 왜 지금 이곳에서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최근 가장 인상적인 텍스트에서의 반례로 이 문제를 조금만 더 확장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최근 파일럿 방영이 끝난 MBC 예능 <가시나들>은 경상남도 함양군의 비문해 여성 노인들이 한글을 배우는 과정을 따뜻하고도 유머러스하게 담아내며 호평을 받았다. 그들 역시 기존의 미디어 안에서 제대로 다뤄진 적 없던 이들이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기존 미디어에서 가려졌던 이들이
지금 다뤄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 현상은 어떤 효과를 가져올까

[위근우의 리플레이]배제됐던 목소리가 돌아왔다 “우리가 지금 여기 있지라”

경상도 사투리가 터프한 기득권 남성의 언어로 공고화되는 동안, 정작 이들 경상도 여성 노인의 목소리는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다. 언어의 활용이든 배제든 그것이 프로파간다의 일부로 활용될 때, 이들 언어는 결과적으로 이 세상의 풍부한 풍경과 목소리들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것은 다른 말로 언어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왜곡된 언어는 세상에 대한 인식 역시 왜곡한다. 이 왜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도 미디어 속 지역 방언의 재현은 훨씬 더 풍부하고 부지런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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