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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우파’ 효과? 백댄서의 ‘백’을 지우니, ‘스트릿 댄스’의 빛나는 세계가 보인다

2021.10.07 17:06 입력 2021.10.07 19:49 수정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통해 무대를 만들고 이끄는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 스트릿 댄서들. 엠넷 제공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통해 무대를 만들고 이끄는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 스트릿 댄서들. 엠넷 제공

“백업 활동을 하면 아티스트분을 빛내주러 가는 거잖아요. 어쨌든 그 무대는 제 것이 아니잖아요. 저는 제 걸 너무 하고 싶었어요.”

지난 5일 방송된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 두 번째 탈락 크루가 된 ‘원트’의 엠마가 울먹이며 말했다. 가수 아닌 댄서가 주인공인 무대를 원하는 것은 이제 그뿐이 아니다. 날로 치솟는 <스우파>의 인기 속에서, 대중은 이제 K팝 퍼포먼스의 ‘보조’가 아닌 무대를 만들고 이끄는 ‘주체’로서의 스트릿 댄서를 본다. K팝 안무의 창작자이자 실연자로서 댄서들의 역할이 재평가되는 것은 물론이고, 댄서들이 주체가 되는 스트릿 댄스 문화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지난달 게시된 이하이 ‘빨간 립스틱’ 무대 위 모니카의 직캠은 7일 현재 194만회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유튜브 계정  M2 캡처

지난달 게시된 이하이 ‘빨간 립스틱’ 무대 위 모니카의 직캠은 7일 현재 194만회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유튜브 계정 M2 캡처

무대를 채우는 역동의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댄서들의 존재감은 강렬하다. 대중의 반응은 유튜브 조회수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엠넷 공식 유튜브 계정을 통해 게시된 <스우파> 관련 영상 누적 조회수는 지난 6일 기준 약 2억4770만회에 달한다. 음악 방송에서 모니카, 립제이, 노제, 엠마 등 <스우파> 출연 댄서들의 모습만 따로 촬영한 ‘직캠’(보통 관객이 직접 촬영해 올린 영상을 의미하지만, 이 경우 방송사 측이 방송 화면과 별도로 댄서를 촬영해 사후에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은 가수가 중심이 되는 본 무대 영상의 조회수를 훌쩍 상회한다. 지난달 게시된 이하이 ‘빨간 립스틱’ 무대 위 모니카의 직캠은 7일 현재 194만회, 현아&던 ‘핑퐁’ 무대에 오른 엠마 직캠은 약 406만회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가수 중심’에서 ‘댄서 중심’으로 시각을 바꾸면 익숙하던 K팝 퍼포먼스가 낯설게, 낯설던 스트릿 댄스 배틀이 친숙하게 보인다. 스트릿 댄스와 방송 댄스의 경계, 가수와 댄서 사이의 위계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현실의 변화에 발맞춘 반가운 변화다. 방송을 보는 스트릿 댄서들은 “백업 댄서든, 안무가든, 배틀러든 스트릿 댄서들의 다양한 선택이 모두 존중받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방송과 함께 화제가 된 왁킹 댄서 립제이의 퍼포먼스 영상. 유튜브 계정 Bitgoeul Dancers 캡처

<스트릿 우먼 파이터> 방송과 함께 화제가 된 왁킹 댄서 립제이의 퍼포먼스 영상. 유튜브 계정 Bitgoeul Dancers 캡처

15년 경력의 락킹 댄서 이유민씨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불과 10년 전만 해도 방송 댄스와 스트릿 댄스의 활동 범위가 명확하게 구분돼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 경계가 허물어졌다”며 “왁킹, 락킹, 비보잉, 힙합, 팝핀 등 스트릿 댄스의 세분화된 장르들이 발전과 확장을 거듭하면서 방송 안무 창작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스트릿 댄서가 방송 안무를 만들고, 방송 안무에 다양한 장르의 스트릿 댄스 동작이 쓰이는 것은 이미 일상이 됐다. 스트릿 댄서들은 이미 배틀과 퍼포먼스를 통해 스스로 무대의 중심이 되는 ‘댄서의 무대’와, 안무가 혹은 백업 댄서로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가수의 무대’ 양편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활약해온 것이다.

그간 ‘가수의 무대’에서 주로 댄서들을 봐왔던 시청자의 시선은 자연히 ‘댄서의 무대’로 향한다. 스트릿 댄스의 다양한 하위 장르의 특징을 익혀가고, 실제 스트릿 댄스의 배틀과 <스우파>에서 구현된 배틀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비교한다. 갬블러 크루 소속의 28년 경력 브레이크 댄서이자 세종대 미래교육원 실용무용 교수인 정형식씨(활동명 SICK)는 “스트릿 댄스 배틀의 기원은 과거 미국 흑인·히스패닉 문화에서 갱들의 전쟁을 춤으로 평화롭게 풀어보자는 것”이라며 “배틀의 기본적인 포맷은 방송에 잘 녹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실제 배틀 심사에서 춤 동작의 정확성과 완성도가 더 중시되고, 배틀의 목적이 승패를 결정하는 것 외에 기량 향상이나 친목 도모인 경우도 많다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방송과 함께 화제가 된 걸스 힙합 댄서 허니제이의 퍼포먼스 영상. 유튜브 계정 lEtudel 캡처

<스트릿 우먼 파이터> 방송과 함께 화제가 된 걸스 힙합 댄서 허니제이의 퍼포먼스 영상. 유튜브 계정 lEtudel 캡처

“트렌드에 맞춰 ‘스트릿 댄스’에 집중했다”지만 <스우파>는 종종 의도보다 퇴행한다. 자극적인 재미와 대중성을 앞세우기 위해 스트릿 댄서들의 매력을 온전히 조명하지 못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댄스’보다 ‘파이트’에 더 초점을 맞춘 연출이 자극적이고 인위적으로 느껴진다거나, 특정 가수의 안무 시안을 완성하는 미션이 다양한 장르와 개성을 내세운 크루들의 매력을 반감시킨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이유다. 시청자들은 이 같은 퇴행을 누구보다 경계한다. 춤을 보는 시선의 확장을 경험한 이들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유민씨는 “댄서를 그저 가수 뒤에 서는 존재로만 보던 시선이 변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이미 업계에서도 가수가 먼저 댄서에게 연락해 협업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등 변화가 선행됐다”며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스트릿 댄서가 주인공이 되는 퍼포먼스와 배틀 등 다양한 행사로 관심이 모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형식씨 역시 “<스우파>가 춤을 즐겁게 추는 사람들, 나아가 직업으로 삼는 이들의 삶을 많은 대중에게 보여준 것 같아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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