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강변에서 만나는 미술전 ‘바깥미술’···자연과 인간 관계의 되새김질

2023.02.20 11:31 입력 2023.02.20 19:58 수정

바깥미술회 작가들, ‘2023 바깥미술 두물머리전 산·알’ 열어

남한강·북한강 만나는 양평 두물머리 일대 야외에 작품 설치

강변 걸으며 바람·햇빛 속 특별한 작품감상···자연생태 중요성 되새겨

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바깥미술’ 전이 지난 18일 오후 흐린 날씨 속에 경기 양평군 두물머리 일대에서 막을 올렸다. 바깥미술회 작가들이 조촐한 개막식을 열고 있다. 도재기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바깥미술’ 전이 지난 18일 오후 흐린 날씨 속에 경기 양평군 두물머리 일대에서 막을 올렸다. 바깥미술회 작가들이 조촐한 개막식을 열고 있다. 도재기 기자

겨울 강변을 전시장으로 삼아 열리는 미술전시회 ‘바깥미술’이 돌아왔다.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2년간 중단됐던 바깥미술전이 지난 18일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경기 양평군 두물머리(양수리) 두물경 일대에서 흐린 날씨 속에 개막했다.

4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바깥미술전은 ‘바깥미술회’ 회원·초대 작가들이 자연의 속살이 드러나는 겨울철 바깥, 그야말로 자연 속에서 마련하는 작품전이다. 1981년 1월 가평군 대성리 강변에서 연 ‘겨울-대성리 31인전’이 그 시작이다. 이후 개발로 전시를 못하게 된 자라섬(가평군)을 거쳐 최근엔 두물머리 일대에서 개최해왔다.

바깥미술전은 그 명칭에서 보듯 작품들이 남한강과 북한강 사이의 들판, 얼어붙은 강, 억새, 버드나무 등 곳곳에 설치됐다. 대부분 현장에서 구한 나뭇가지, 돌, 흙, 갖가지 풀들, 버려진 쓰레기 등이 재료다. 두물머리의 풍경과 햇빛·바람·하늘은 물론 산책하는 관람객들도 작품화된다. 전시장의 갖가지 맥락을 고려한 장소 특정적 작품전이자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체적 열린 미술, 생태환경적 미술전이다.

바깥미술 전의 작품 배치도. 왼쪽 푸른색이 북한강, 오른쪽은 남한강으로 두물머리는 두 강물이 만나는 곳이다.

바깥미술 전의 작품 배치도. 왼쪽 푸른색이 북한강, 오른쪽은 남한강으로 두물머리는 두 강물이 만나는 곳이다.

올해 주제는 ‘살아있는 알의 생태순환’이란 의미를 담은 ‘산·알’이다. ‘2023 바깥미술 두물머리전 산·알’에는 원로부터 신진까지 모두 14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정혜령·김보라·김해심·유재흥·김용민·조미영·박봉기·김창환·이호상·정하응·이자연·황지희·최운영·임충재다. 기후변화를 넘어선 기후위기, 에너지 문제 등 대전환 시대 속에 작가 저마다의 거시적·미시적 고민과 연구, 성찰과 통찰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자연과 인간은 물론 너와 나 사이의 상생과 공존, 지속 가능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낚싯줄 뜨개질로 이뤄진 정혜령 작가의 ‘어제의 오늘’. 도재기 기자

낚싯줄 뜨개질로 이뤄진 정혜령 작가의 ‘어제의 오늘’. 도재기 기자

작품들은 두물경 일대를 산책하듯 걷다가 수풀에서, 나무 아래에서, 강 위에서, 산책길 옆에서 문득 만난다. 두물머리 옛 나루터에서 두물경으로 걷다보면 수풀 속 돌무더기 옆에 갖가지 색깔의 물고기 형상들이 놓여 있다. 정혜령 작가의 작품 ‘어제의 오늘’이다. 버려진 원색의 낚싯줄을 모아 뜨개질로 작업했다. 물고기의 생명을 앗아간 낚싯줄로 죽어간 물고기, 숱한 생명들을 추모하는 듯하다.

김보라 작가의 ‘얼었다 녹았다 말없이’. 도재기 기자

김보라 작가의 ‘얼었다 녹았다 말없이’. 도재기 기자

강변 버드나무 아래 얼음 위와 땅에는 새하얀 나뭇가지, 깃털을 닮은 조형물들이 꽂혀 눈길을 끈다. 김보라 작가의 ‘얼었다 녹았다 말없이’다. 작가는 “얼어붙은 강에, 땅에 작품을 설치하면서 그 속에 존재하는 생명들을 느꼈다”며 “모두들 강과 땅이 품고 있는 생명의 기운을 감지하면 좋겠다”고 한다. 땅과 물, 자연은 이 겨울에도 봄을 잉태하고 있다.

김해심 작가가 작품 ‘물의 몸’(왼쪽)을 이야기하며 돌이 놓인 강처럼 머리 위에 돌을 얹고 있다. 도재기 기자

김해심 작가가 작품 ‘물의 몸’(왼쪽)을 이야기하며 돌이 놓인 강처럼 머리 위에 돌을 얹고 있다. 도재기 기자

강변을 조금 더 걸어가면 김해심 작가의 ‘물의 몸’을 만난다. 언 강 위에 크고 작은 돌들이, 그 돌들 위에는 갖가지 모양의 나뭇가지들이 얹혀 있다. 때가 와서 얼음이 녹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작품이다. 살아가는 만큼 또한 죽어가는 인간의 실존적 물음을 떠올린다. 큼지막한 돌을 강처럼 자신의 머리 위에 얹은 작가는 “얼음이 물의 몸이라면 돌은 무엇으로 몸이 되었을까”라는 화두를 관람객들에게 던진다.

유재흥 작가의 ‘공간의 관계성 만들기’. 도재기 기자

유재흥 작가의 ‘공간의 관계성 만들기’. 도재기 기자

김용민 작가의 ‘버드나무 정원 아래서’. 도재기 기자

김용민 작가의 ‘버드나무 정원 아래서’. 도재기 기자

바깥미술회 작가들에게 강변의 크고 작은 나무들은 작품의 좋은 동반자다. 자연의 작품에 작가적 손길을 더해 익숙한 공간을 환기시킨다. 유재흥 작가는 나무들을 색실로 연결시켜(작품 ‘공간의 관계성 만들기’) 나무와 나무, 자연과 인간 등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김용민 작가는 나뭇가지들을 꿈틀거리듯 역동적 형태로 엮어(‘버드나무 정원 아래서’) 자연의 몸부림이나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했다.

박봉기 작가의 ‘호흡’(왼쪽)과 한 어린이가 작품 안팎을 오가며 놀고 있는 모습. 도재기 기자

박봉기 작가의 ‘호흡’(왼쪽)과 한 어린이가 작품 안팎을 오가며 놀고 있는 모습. 도재기 기자

박봉기 작가의 ‘호흡’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물방울 형상이다. 강변의 큰 버드나무에서 떨어진 물방울인 듯 나무와 하나로 어우러졌다. 관람객이 드나들며 잠시 쉴 수도 있어 한 아이가 흥미로운 듯 안팎을 오가며 즐기고 있다. 사람과 나무가 그렇게 호흡을 나누는 셈이다.

김창환 작가의 ‘가끔 하늘을 본다’. 도재기 기자

김창환 작가의 ‘가끔 하늘을 본다’. 도재기 기자

남한강·북한강이 합쳐져 만든 팔당호를 배경으로 나뭇가지로 엮은 거대한 인물상이 하늘을 향해 서 있다. 보는 이들도 저절로 인물상의 손짓을 따라 하늘을 한번쯤 쳐다보게 된다. 김창환 작가의 ‘가끔 하늘을 본다’다.

이호상 작가의 ‘서 있다’. 도재기 기자

이호상 작가의 ‘서 있다’. 도재기 기자

이호상 작가의 ‘서 있다’는 강변 억새밭에 그야말로 서 있다. 온몸이 포박돼 팔도 다리도 보이지 않아 미라 같은 등신상들이다. 감은 눈, 굳게 닫은 입, 뭉뚝한 코에서 어떤 결기가 느껴진다. 작가는 작품명 아래에 ‘암담하고 암혹한 세월 다시 서고자’란 글을 적어놓았다.

조미영 작가의 ‘은밀’(왼쪽)과 작품 앞에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작가. 도재기 기자

조미영 작가의 ‘은밀’(왼쪽)과 작품 앞에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작가. 도재기 기자

조미영 작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들마다에 긴 테이프들을 매달았다(‘은밀(隱密)’). 공사장 등에서 출입금지용으로 사용되는 테이프들이다. 아름다운 억새 한 무더기가 알게 모르게 금기, 불통의 공간이 된다. 개발지상주의는 그렇게 자연의 생명력, 아름다움을 은밀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꼬집는 듯하다.

정하응 작가의 ‘산, 산이 부서지다’. 도재기 기자

정하응 작가의 ‘산, 산이 부서지다’. 도재기 기자

정하응 작가는 전시공간 답사 과정에서 팔당호 건너편의 겹친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흙으로 만들려고 땅을 파니 “쓰레기들이 기어나왔고” 강과 산들이 “부서지고 있다”고 느꼈단다. 그 흙으로 작은 산을 만든 작가는 ‘산, 산이 부서지다’라는 작품명을 달았다.

이자연 작가의 ‘땅의 얼굴’을 관람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도재기 기자

이자연 작가의 ‘땅의 얼굴’을 관람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도재기 기자

황지희 작가의 ‘곤란한 공기’. 도재기 기자

황지희 작가의 ‘곤란한 공기’. 도재기 기자

이자연 작가는 풀 등 땅 위의 것들을 한데 모아 둥지 같은 둥근 모양을 만들었다(‘땅의 얼굴’). 땅의 얼굴을 통해 고라니, 두더지, 새싹들의 존재를 알아주고 지켜주고 싶어서다. 황지희 작가는 확 트인 벌판 한가운데에 나뭇가지들로 작은 공간, 1평의 집을 세웠다. 작지만 바람도 잘 통하고 햇빛도 환한 ‘뷰 맛집’이다. 도시가 아닌 자연의 집은 그렇다.

최운영 작가의 ‘일어서, 나아가다’. 도재기 기자

최운영 작가의 ‘일어서, 나아가다’. 도재기 기자

자동차들이 쉴 새 없이 달리는 북한강 위의 신양수대교, 운길산을 배경으로 한 북한강변에는 억새 등으로 굵고 둥글게 엮은 두 형상이 우뚝 서 있다. 최운영 작가의 ‘일어서, 나아가다’다. 그렇게 서로 어깨동무하고 기대고 연대하면 일어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임충재 작가의 ‘끔찍한 상상 2(비닐 버섯)’. 도재기 기자

임충재 작가의 ‘끔찍한 상상 2(비닐 버섯)’. 도재기 기자

강변의 버드나무 가지들에는 보일 듯 말 듯 버섯들이 달려 있다. 임충재 작가가 쓰레기로 버려진 접착 테이프들을 모아 만든 ‘끔찍한 상상 2(비닐 버섯)’다. 숱한 생명들과 어울려 살지도, 자라지도, 먹지도 못하는 비닐 버섯은 건너편 가지의 진짜 버섯들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과연 ‘끔찍한 상상’에 불과한 것일까라고 묻는 듯하다.

바깥미술전 관람객은 강과 산과 바람과 햇빛 속에 땅을 밟으며 작품들을 감상한다. 분주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무뎌진 오감을 일깨울 수 있다. 수도권의 쉼터 명소인 두물머리의 특별한 풍경도 즐길 수 있다. 바깥미술전은 27일까지지만 여느 때처럼 일부 작품은 그대로 남아 관람객을 맞다가 자연스레 자연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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