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 동춘(박나은)에게 세상은 온통 수수께끼다. ‘영어는 왜 배워야 할까?’ ‘스피치 대회는 왜 나가야 하지?’ ‘성장 주사는 꼭 맞아야 할까?’… 하지만 왜인지 어른들은 동춘의 물음에 제대로 답을 주지 않는다. 답을 받아본 적 없는 동춘은 이제 물음표를 지운다. 인터넷도 안 되는 ‘공신폰’을 쓰라면 쓰고, 페르시아어 학원에 가라면 간다. 스마트폰에 게임을 깔아주겠다는 짝꿍의 제안에도 고개를 젓는다. “적응하면 편해.”
그러던 동춘의 일상에 변화가 찾아온다. “톡톡··톡톡톡···톡··” 우연히 주운 막걸리가 말을 걸어온 것이다. 그것도 페르시아어와 모스 부호로. 권태로웠던 동춘의 동그란 얼굴에 활기가 돈다.
28일 극장을 찾은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동춘과 막걸리의 모험담이 내내 사랑스럽게 펼쳐지는데, 그 끝엔 서늘한 한 방이 기다리고 있다.
막걸리를 만나고 ‘학원 뺑뺑이’로 가득했던 동춘의 일상은 조금씩 달라진다. 막걸리는 동춘에게 알쏭달쏭한 과제를 준다. 큰 통으로 자신을 옮기라거나 특정 시간 특정 장소로 자신을 데려가라는 식이다. 로또 4등 당첨 번호를 알려주며 미션 달성에 드는 돈까지 대준다. 딸 교육에 온 힘을 써온 엄마 혜진(박효주)은 곧 동춘의 변화를 감지한다.
동춘과 막걸리의 모험은 엄마 혜진, 삼촌 영진(김희원) 등 주변 어른들의 이야기와 엮이며 과열된 사교육이나 각종 경쟁, 여성의 경력 단절 같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끄집어낸다. 혜진은 경력 단절의 공허함을 동춘의 교육으로 메우려 한다. 오래 전 연락이 끊어진 삼촌 영진은 성공적인 커리어를 버리고 산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산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해요?” 어떤 어른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동춘의 질문에 막걸리 만이 명료한 답을 준다. 예상을 뒤엎는 결말에 이르면, 동춘의 모험을 그저 흐뭇하게 즐기던 어른의 마음은 서늘해진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이 영화는 신인 감독 김다민의 장편 데뷔작이다. 김 감독은 문화센터에서 전통주 만들기 수업을 듣다 ‘말하는 막걸리’라는 설정을 떠올렸다. 막걸리가 숙성되며 나는 소리가 마치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에 동네에 줄지어 선 학원 차들을 보며 느낀 궁금증을 더해 만든 것이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다.
김 감독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언론시사에서 “과열된 사교육을 꼬집기보다는 ‘당사자인 아이가 어떻게 생각할까’가 저에겐 먼저였다”며 “영화는 (아이가) 어떤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의 각본가이기도 하다. 연쇄 살인마가 주인공인 선혈이 낭자한 드라마와 아이와 막걸리가 등장하는 깜찍한 영화. 전혀 딴판인 두 작품이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김 감독은 “저는 호기심 많은 동춘 같은 학생이었고 그때 충족되지 못한 호기심을 어른이 되어 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며 “다양한 작품과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러닝타임 91분. 전체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