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엥겔스 전집 번역 114권 중 세 권 내고 좌초 위기

2024.06.23 16:15 입력 2024.06.23 17:47 수정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번역 114권 중 세 권 내고 좌초 위기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가 주축이 돼 진행 중인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arx Engels Gesamtausgabe·MEGA) 한국어판 번역 2차분이 도서출판 길에서 출간됐다. 100권이 넘는 독일어판 전집 중 1·2차분을 합쳐 세 권만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됐으나,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번역 작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이번에 출간된 2차분은 총 4부로 구성된 MEGA의 제1부 제10권을 번역한 것이다. 1849년 7월부터 1851년 6월 사이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 저작, 기고문, 초안, 성명문, 문서 등을 담고 있다. 이 중 마르크스가 쓴 ‘1848년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 계급투쟁’은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것으로 평가된다. 독일어판 편집자는 서문에서 마르크스가 이 글에서 처음으로 역사적 유물론을 동시대 역사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오래전에 끝난 역사적 사건을 서술하는 데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혁명은 역사의 기관차”라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표현도 이 글에 등장한다. 이외에 엥겔스가 쓴 ‘독일 제국헌법투쟁’과 ‘독일 농민전쟁’이 이번 책의 핵심에 해당한다.

MEGA 작업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남긴 모든 자필 원고들을 엄밀한 고증을 거쳐 출간하는 대형 기획이다. 특정인의 주관이나 정치 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학술 정본’을 펴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MEGA 출간 작업은 독일에서도 레닌이 살아 있던 시절에 시작됐으나 우여곡절 끝에 몇차례 중단됐다가 1990년대 국제 마르크스·엥겔스 재단이 설립되면서 재개됐다. 독일어판은 2030년까지 전체 114권으로 출간될 예정이며, 2022년 말 기준으로 70권이 나왔다.

한국에선 맑스엥겔스연구소와 도서출판 길이 2012년과 2018년 17권에 대해 한국어판 출간계약을 맺고 2015년부터 번역을 시작해 지금까지 12권 분량의 원고를 마무리했다. 이 중 세 권 분량이 2021년과 올해 각기 1차분과 2차분으로 출간된 것이다. 문제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14권의 출간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MEGA 번역 작업은 방대한 분량과 까다로운 편집 때문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1차분 두 권은 연구원 10~20명이 5년간 매달렸다. 이 때문에 국가 지원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연구소는 2018년 한국연구재단 토대사업에 선정돼 5년간 10억원을 지원받았으나 지난해에는 심사에서 탈락했다.

강신준 맑스엥겔스연구소장(동아대 명예교수)은 전화통화에서 “통상 떨어뜨릴 때는 실적을 문제 삼는데 한국연구재단은 ‘실적에는 문제가 없지만 완성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다 ”면서 “이 정부가 벌이는 이념 전쟁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장기적으로 독일어판 MEGA 114권 중 79권을 한국어판으로 내놓는다는 계획이었으나 현재로서는 작업을 재개할 방법이 요원하다. 번역은 예산 문제 등으로 인해 지난해 6월 이후 중단된 상태다. 여기에 명예교수는 학내 연구소장을 맡지 못하도록 한 동아대 규정도 연구소의 앞날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강 교수는 그동안의 공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제가 <자본론> 번역을 하면서 마르크스·엥겔스 번역에 나름 내공이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MEGA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독일어를 할 줄 안다고 해서 번역할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연구소에는 그동안 시행착오를 통해 경험을 쌓은 연구자들이 있어요. 후속 지원이 없으면 이런 노하우를 쌓은 연구자들을 잃게 됩니다.”

이번에 출간된 2차분은 본책 한 권과 별책 한 권을 두꺼운 케이스 안에 담아놨다. 별책은 각 문헌의 저술과정, 전승과정, 텍스트 교정 사항, 주석 등을 담은 ‘부속자료’다. 본책만 763쪽, 별책까지 합치면 1381쪽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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