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 일기를 읽는다]16. 인사와 짝 맞추기

2006.12.11 17:53

진충귀 도평의사사겸 의주목사 왕지(보물1161호)

진충귀 도평의사사겸 의주목사 왕지(보물1161호)

자료적 가치로서 ‘승정원일기’를 말한다면, 백관 이하 모든 인사임용과 관련한 정사 기사가 빠짐없이 실려있다는 것을 우선 들 수 있다. 이는 ‘실록’이나 ‘일성록’ 등이 중요 인물만 기재한 것과는 현격한 차이다. 예컨대 정조 13년(1789) 12월20일자 ‘실록’에는 도목정사(都目政事)를 행하여 홍억을 대사헌으로, 이정운을 대사간으로 삼았다고만 간략히 보인다. 이에 반해 당일의 ‘승정원일기’는 인사를 논하는 왕과 신하의 대화뿐 아니라 참봉이나 찰방 등 말단 관직에 이르기까지 당일 이조(吏曹)에서 인사처리한 것만도 140인이나 된다. 따라서 인사 현황과 이를 둘러싼 여러 정황을 자세히 살피고자 한다면 ‘승정원일기’부터 검토해 봐야 한다.

조선은 왕이 중심이 되는 전제국가이지만 또한 ‘경국대전’을 위시한 제 법전에 의거해 다스려진 법치국가이기도 하다. 인사에 있어서도 결코 왕의 독단이 허용되지 않고 반드시 법전에 근거하여 거행하였다. 영의정 등 정승의 자리에 궐원이 생기면 전·현직 대신에게 추천을 받게 되며 각 군문의 대장, 육조의 판서, 유수나 감사는 의정부가 추천한다. 그리고 이하 일반 관원은 이조와 병조 즉 전조(銓曹)가 인사를 담당하며, 이들에 대해서는 사헌부와 사간원 즉 양사(兩司)의 서경(署經)을 통하여 최종적 인사검증을 받게 되는데 여기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제수가 취소된다.

일반 관원에 대한 인사 행정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임기가 차서 빈 자리가 생기면 왕이 전조에 정사를 열어 후임을 차출하도록 명을 한다. 그러면 전조에서는 3명의 후보자로 단자(單子)를 작성해 왕에게 내고, 왕은 그 중에 낙점을 하게 된다. 즉 제수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전조에서는 제수된 관원에 대해 관원의 이력 등을 적은 단자를 올려 재가를 받는 절차 즉 하비(下批)를 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이 끝난 뒤에 정식으로 교지(敎旨)가 작성된다. 또 임기가 만료되기 전에 갈리어 자리가 빌 경우에는 왕이 승지로 하여금 이전에 올렸던 단자를 들이게 하여 재가하여 내리는데, 이 경우에도 하비는 전조에서 거행한다.

그런데 전조가 정사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 관계로 전조의 관원은 여타 관원과 반목이 생기기 십상이었다. 또 전조 내에서도 동료 관원 사이에 당파나 의견 대립이 있어 많은 갈등이 빚어졌다. 특히 영조 이후 관리 임용은 당파를 분배하여 쌍방을 짝맞추는 호대(互對) 방식이 관례화되면서 이러한 문제는 더욱 첨예화되었다. 정조 8년 윤3월 10일 조정에서 나눈 대화를 살펴보자.

정조가 이르기를, “근래 전조는 호대 2자로 하나의 규모를 삼고 있다.”

좌의정 이복원이 아뢰기를, “근래 전조의 신하들은 눈앞의 비방을 피하고자 인재의 우열을 가리지 않고 한명은 저쪽, 한명은 이쪽으로 하여 오직 짝만 맞추려고 합니다.”

정조가 이르기를, “벼슬길이 막힌 탄식이 근래와 같은 적이 없다. 벼슬길을 터주는 정사는 국가의 기강과 관계되어 반드시 막아야 되는 자가 아니면 반드시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여 세상에 버려진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조판서 이재간이 아뢰기를, “신이 감히 성상의 뜻을 받들지 않겠습니까만은 벼슬길을 터주다 국가의 기강이 상할까 두려워 여러 차례 현직을 맡았음에도 한번도 제대로 거행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전조를 맡은 관원은 혐의쩍은 것만 있으면 사직 상소를 올리거나 연이어 정사를 열라는 왕명을 어김으로써 기필코 자리에서 갈리고야 만다. 표면상으로는 혐의를 내세운 것이지만 왕명대로 거행하였다간 필경 동료 관원에 의한 곤욕을 면치 못하므로 몸조심한 것이다.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이 있다. 인사를 잘하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린다는 것이다. 폐단을 지적하여 임금에게 간언한 말 중에 “적합한 인재를 얻어 적소에 배치한다(得其人)”는 말이 특히 많이 보인다. 인조부터 고종까지 ‘승정원일기’와 ‘일성록’을 검색해 보면 도합 1,300여 차례나 보인다. 잘못된 인사에 대한 탄식이요, 인사의 어려움을 반증한 예라고 하겠다.

〈공정권/ 민족문화추진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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