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악무, 중국이 먼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

2009.11.09 17:37 입력 2009.11.10 00:00 수정
이고은기자

‘자성’ 목소리 속 ‘문화 배타주의’ 경계도

‘한국의 농악무(農樂舞)가 중국의 문화유산?’ 우리 농악무가 중국에 의해 먼저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됨에 따라, 한국 전통문화를 세계문화유산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자성의 소리가 일고 있다. 또한 유사 문화권에서 형성되는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지난 3~4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태무형문화유산센터(박성용 소장) 주최 국제회의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정보 및 네트워킹 어떻게 할 것인가’는 농악무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국가간 분쟁을 낳을 수 있는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공동 등재 문제 등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농악(農樂)은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됐다. 농부들이 두레를 짜서 일할 때 연주하는 우리 농악은 아직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지 못했다. |문화재청 제공

농악(農樂)은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됐다. 농부들이 두레를 짜서 일할 때 연주하는 우리 농악은 아직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지 못했다. |문화재청 제공

지난 9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위원회가 발표한 ‘2009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중국이 신청한 ‘중국 조선족 농악무(Farmer’s dance of China’s Korean ethnic group)’가 목록에 오르는 등 ‘문화 전쟁’ 양상이 감지됨에 따른 움직임이다.

조선족 농악무는 중국 정부가 2008년 ‘국가급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선정했고 올해 유네스코 대표목록에 선정됐다. 대표목록에는 조선족의 농악무 외에 몽골의 가창 예술인 호맥(쿠메이), 티베트 오페라 등 모국이 존재하는 소수민족의 전통문화가 올랐다.

중국은 2005년 한국의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의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된 데 대해 “한국이 중국의 전통유산을 강탈해 갔다”는 여론으로 들끓은 바 있다. 이후 전통문화를 보호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5종류의 농악을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한국보다 앞장 서 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측은 “지난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이 바뀌어 대표목록 체계로 바뀌면서 1개국이 다수 항목을 신청할 수 있고 숫자 제한도 없다”며 “중국이 농악무를 등재시켰다 해서 한국이 등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언젠가는 우리도 농악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중국에 우선 순위를 빼앗겼음에도 농악을 대표목록에 신청할 구체적 계획이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정부가 자국의 무형문화유산 보호에 소극적이고 세계적 전승 의지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민속학자인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풍물이야말로 한국이 낳은 가장 뛰어난 민속예술인데, 농악을 아직 유네스코에 등재시키지 못한 것은 정부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너무 보편적이고 평범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치 있는 전통문화가 뒷전으로 밀려나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도 지난달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중국이 문화재 분야에서도 동북공정을 벌이고 있으나, 문화재청은 대책수립은 고사하고 ‘구례 잔수농악’처럼 전승가치가 높은 전통문화를 무형문화재 지정에서 탈락시켰다”며 잔수농악의 무형문화재 지정 및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주장했다.

대표목록 등재가 ‘문화전쟁’ 양상으로 비화하는 데 대한 비판도 있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각 나라의 문화정책 방향이 이상한 민족주의 형태로 변질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문화권별로 유사한 문화가 있다면 연합 등재를 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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