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 중산층일수록 학벌주의 가치관… 자녀에게도 일상적으로 학벌 의식화”

2011.03.07 21:15
임영주 기자

‘왜 잘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나?’ 펴낸 신명호씨

요즘에는 잘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부모의 경제력이 높을수록 사교육 등의 지원을 더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주제를 다뤄온 국내외 선행 연구들에 따르면 부모의 경제력보다는 부모, 그중에서도 아버지의 학력과 직업지위가 자녀의 학업성취도에 가장 크고 일관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의 학업성적이 부모의 소득보다 교육수준과 더 강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명호 사회투자지원재단 부설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55)은 이런 의문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고, 그 과정과 결과를 <왜 잘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나?>(한울아카데미)로 출간했다.

그는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자녀 교육에 투자하는가가 아니라 ‘왜’ 그리고 ‘어떻게’ 그들은 돈과 시간을 투여하는가 또는 투여하지 않는가, 왜 중산층 자녀의 학습의지는 높고 저학력 노동계층 자녀의 학습의지는 상대적으로 낮은가를 설명하려 했다”고 말했다.

신명호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이 계층별 부모의 자녀 양육 방식 차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신명호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이 계층별 부모의 자녀 양육 방식 차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신 소장은 이를 위해 2009년 6월부터 8월 사이, 아버지가 대졸 이상 학력의 사무직인 고학력·중산층 부모와 자녀 13사례와 고졸 이하 학력의 하층 노동자 내지 조건부수급자인 저학력·노동계층 부모와 자녀 16사례 등 총 29명을 심층 인터뷰해 사회계층에 따른 부모의 양육 관행 차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고학력·중산층 부모들은 공부를 안하면 힘들게 살 수밖에 없다며 계층하강에 대한 위기의식을 경고하는 사례가 많았다. 반면 생계유지가 우선인 저학력·노동계층 부모들은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는 경향이 강하고, 학벌인식·위기인식·교육열망은 상대적으로 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저학력일수록 학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사회 통념과 달리 저학력일수록 학벌인식이 낮은 이런 현상을 신 소장은 ‘학력가치 체험의 역설’이라고 이름붙였다.

그는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은 사회구조 속에서 겪는 생애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학력층이 접근할 수 있는 직업시장과 공동체는 일상적으로 학력·학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것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반면, 저학력 노동자가 일하는 시장은 학력이나 학벌 차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고학력 중산층 부모들은 강한 학벌주의 가치관을 갖고, 자녀들의 학업열의를 높이기 위해 조기에 공부 습관들이기, 각종 생활 통제, 세밀한 입시 전략의 수립 등 일상적으로 학벌에 대해 의식화를 시킨다”고 설명했다.

“고학력 중산층일수록 학벌주의 가치관… 자녀에게도 일상적으로 학벌 의식화”

이와 달리 저학력 노동자층은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오는 자신감 및 확신이 없기 때문에 부모 본인들의 판단에 따라 자녀의 학업 진로를 이끌지 못하고, 또 부유한 가정에 비해 충분히 지원해주지 못했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공부 안하는 자녀를 단호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 같은 내용으로 볼 때 “학업 성적의 차이는 개인적 차원이 아닌 계급적 현상”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고학력 중산층 부모가 보이는 태도는 강력한 계급적 본능이기 때문에 몇가지 교육 정책이나 제도를 통해 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교육이 평등하다는 것은 자녀 개인의 의지와 능력에 따라 학업성취도가 다를지언정,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아이의 학업성취도가 좌우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좋은 일자리와 아닌 것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목숨걸고 좋은 학벌을 가져야 한다는 경향이 강하다”며 “사회적 지위에 따른 격차가 크지 않아야 학벌주의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먼저 완화돼야 마침내 교육도 평등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신 소장은 대학원 재학시절 인류학 논문을 쓰기 위해 빈민운동가 고(故) 제정구, 정일우 신부 등이 이끌던 빈민가에 들어갔다가 빈민운동에 투신, 빈곤문제 등에 대해 연구하고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연구소 등에서 일해왔다. 그는 “소득의 양극화, 빈곤의 세습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계층이동의 가장 유력한 통로였던 학업의 기회가 더욱 불평등해지고 있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양극화나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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