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추적자’, 로맨틱 코미디 누른 한국형 느와르의 탄생

2012.07.01 21:55 입력 2012.07.01 21:59 수정

장르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올 해 가장 이슈가 된 것은 SBS<추적자><유령>등 사회·정치적인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스릴러 물이다. <추적자> 11.0%, <유령> 10.7%.(AGB제공,6월 28일, 전국) 둘 다 크게 이슈화 될 시청률은 아니다. 그러나 이 두 개의 드라마는 로맨틱 코미디 물이 중심이었던 한국 드라마의 판을 뒤흔들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흥행 제조기 ‘홍자매’가 쓰고 공유 이민정이 주연을 맡은 KBS2<빅>과 ‘로코퀸’ 김선아를 내세운 <아이두 아이두> 역시 이 드라마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 <유령>과 <추적자>가 대본,연기, 연출의 3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점은 확실하지만, 이슈의 중심은 따로 있다. 둘 다 거대 권력 뒤에 숨어있는 사회 부조리를 담은 범죄 스릴러물로 대한민국에서 언제나 ‘사회적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일반인들의 이야기를 서술한다는 점에서 대중들은 열광했다. 영화 <도가니><부러진 화살> 등이 크게 이슈화 되면서 숨겨져 있었지만 반드시 알아야만 했던 사회 저변들의 관심이 안방극장에 ... 대중들이 큰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두 드라마가 미드 ‘CSI’나 영드 ‘셜록’보다 더 공감을 얻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형 르와르물’ 이라는 새 장르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오랜 불황 속, 웃고 즐기는 것도 지쳐

지난해 가장 인기를 끈 드라마는 SBS<시크릿 가든>과 MBC<최고의 사랑>으로 한동안 로맨틱 코디미물이 강세였다. 상반기는 MBC<해를 품은 달><옥탑방 왕세자>등 판타지 사극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로맨틱 코미디나 판타지물, 심지어 ‘막장 드라마’로 불리는 불륜극까지, 대중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는 식상해졌다. 톱스타 송승헌을 내세운 의학 판타지 드라마 MBC<신의>가 큰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현실성 떨어지는 가볍고 트렌디한 드라마 대신에 묵직하고 ‘이야기 다운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대중들의 욕구가 꿈틀대는 가운데, KBS2에서 방송된 정통 멜로 드라마<적도의 남자>가 시동을 걸었다. <적도의 남자>는 방송내내 톱스타 이승기를 내세운 <더 킹투 하츠>와 박유천 주연의 <옥탑방 왕세자>의 시청률을 앞질렀다.

드라마 ‘추적자’ 포스터 사진 SBS

드라마 ‘추적자’ 포스터 사진 SBS

<추적자> 제작사인 김종학 프로덕션의 박선재 프로듀서는 “상품성만을 앞세운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던 상황에서 작품성만을 내세운 ‘추적자’가 더 돋보이지 않았을까” 한다며 “사는게 삭막하고 풍요롭지 않기 때문에 과장된 것은 오히려 거북하게 느껴질 것이다. 꾸며진 이야기가 아닌 가슴에 와닿는 진짜 얘기를 보고 싶어하는 시청자들의 요구와 시기가 잘 맞아 떨어진 것 같다”고 자평했다.

또한 대중문화 평론가 김선영씨는 “아무 생각없이 보는 드라마 보다 ‘사회의 일원’이 되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 수 밖에 없는 사회상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가족’에 닥친 위험, 그 공감의 파장

“당신은 왜 포기를 안합니까?” “나는 수정이 아버지니까” <추적자>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다. 주인공은 대의를 위해서 싸운다기 보다는 딸의 문제 때문에 그토록 싸운다. <추적자>가 공감을 얻는 것은 위험의 대상이 가족의 구성원이라는데 있다.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적 이야기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선영씨는 “과거에는 거대 권력이나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과 싸우는 대립구도의 주인공이 어느정도 영웅성을 갖고 있고 대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추적자의 주인공은 일반인이기 때문에 더욱 감정이입이 된다”고 말했다. 대중들에게는 ‘대의’나 ‘신념’보다 ‘우리 딸, 내 아내’의 일이 더 크게 와닿는다는 것이다. 박선재 프로듀서는 “보편적 공감대에서 시작된 이야기 이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을 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며 “가족 느와르의 탄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유령’ 포스터 이연희(왼쪽), 소지섭 사진 SBS

‘유령’ 포스터 이연희(왼쪽), 소지섭 사진 SBS

<유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연예인의 자살, 어린 학생들의 자살 등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소재로 사이버 수사대의 활약상이 펼쳐진다. 내가 남긴 댓글 때문에 누군가 자살을 하고, 컴퓨터 해킹으로 나의 메일에 바이러스가 감염되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이 현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유령을 보면 누구나 내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에 더욱 공감이 간다.

김선영씨는 “실제 유형의 ‘폭력’은 어찌보면 우리에게 닥칠 확률이 크지 않았다고 본다면, 사이버 세계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사이버 폭력이 더 일상적인 폭력이 되버렸기 때문에 훨씬 피부에 와닿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을 앞둔 국내 정치적 상황과 맞물린 사회적 분위기

최근 우리 사회는 지난해 서울 시장 보궐선거, 올 초 총선을 통해 수많은 정치적 이슈를 양산해냈다. 또한 대선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그 안에는 디도스 사건과 부정 경선과 같은 부정한 권력의 투입이 큰 이슈였다. 공정사회가 큰 화두였지만 정작 잘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들의 분노가 더 커졌다.

<추적자>를 기획한 박선재 프로듀서는 “기획은 1년 여 전부터 해왔고, 해야 할 이야기를 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환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추적자와 유령은 ‘우리가 아는 세상은 조작된 것이고 그 조작의 배후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강한 권력이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승한씨는 “천안함, BBK 등 진실이 가려지지 않은 미제의 거대 사건 속에서 입에 재갈이 물려있다는 느낌을 받은 대중들이 이와 유사한 사건들을 드라마 속에서 접하면서 해갈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라며 “MB정권 말 레임덕 현상과 맞물려 정치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령>에서는 주부, 산부인과 의사 등을 사찰하는 내용이 나온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선영씨는 “과거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정치권력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을 공격하는 내용이었다면, ‘유령’에서는 자기들끼리가 아닌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을 공격한다”며 “국민들 스스로 권력이 사소한 곳까지 깊숙이 미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스스로 의심하는 시각이나 감시하는 시각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력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는 중장년층에게 어필하는데 성공했다. <추적자>는 50대 남녀가 가장 많이 시청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남자 50대가 5.7%, 여자 50대가 9.3%를 차지했다. (AGB 제공, 전국)<유령>을 시청하는 연령대는 40대가 가장 많다. 40대 남자 5.0%, 40대 여자 9.5%가 시청했다.

SBS 드라마 국 김영섭 국장은 “정치적 사안들은 고려하지 않았다” 면서도 “아무래도 요즘 TV리모콘을 쥐고있는 시청자들이 중 장년임을 감안할 때 이들의 관심 분야를 짚어준 것이 어필힌 것 같다”고 분석했다.

■드라마, ‘정의’에 대해 묻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는 <추적자>의 주인공 백홍석은 대통령 후보 강동윤에 의해 딸과 아내를 잃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복수를 위해 법정에서 총을 쏘고, 강동윤의 아내 서지수(김성령)를 납치하거나, 강동윤의 반대세력 정치인들과 손을 잡고 기자회견을 열기도 한다. <유령>의 김우현도 마찬가지다.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불법해킹을 하거나, 성형 수술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되어 사건을 해결한다. 결코 탐탁치 않는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그 방법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박수를 보낸다. 이는 절대 권력이 새 시대를 여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 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문화 평론가 이승한씨는 이 현상에 대해 ‘국민들 사이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정서가 퍼져있다고 말한다. 그는 “법과 사회가 개인을 보호해 줄 수 없으니 방법이 잘못됐더라도 내 손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이 퍼진 것”이라며 “합법적이건 비합법적이건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들이 우상화 되는 것은 국민들이 신뢰할 수 없는 시대상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선영씨 역시 “공권력이 최소한의 상식에 기반해 약자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이 되어야 하는데, 최근 그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며 “공권력에 언제든 조정당할 수 있다는 불신감이 만연해진 것이 드라마가 더 큰 공감을 얻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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