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식량위기 오나

엘니뇨·가뭄·추위… 2010년 이후 국제곡물가 2배 수준

2012.08.26 21:27 입력 2012.08.26 23:55 수정

기후변화의 역습

2010년 9월 이후 국제 곡물가격은 2002~2004년 평균 곡물가격의 2배 이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가격이 급등할 수 있는 취약한 정치경제 구조를 가진 국제 곡물시장에 이상기후라는 외부충격이 2010년 이후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2010년 7월 러시아 가뭄으로 밀가격이 폭등하더니 8월에는 파키스탄의 대홍수로 쌀가격이 급등했다. 그해 11월에는 라니냐의 영향으로 가뭄과 고온이 지속돼 아르헨티나의 옥수수와 대두 작황이 좋지 않았다. 미국은 건조한 기후의 영향으로 붉은 밀의 생산이 감소했다. 그 즈음 시작된 중국 밀 생산지의 가뭄은 다음해까지 지속됐다. 2011년 봄, 멕시코의 이상추위로 옥수수 생산 감소가 예상되면서 옥수수 가격도 급등했다.

올해 초에는 남미 가뭄으로 대두 생산량이 감소해 콩 가격이 상승했다. 중국에서는 여름 가뭄의 영향으로 옥수수 작황이 부진했다. 지난 6월부터는 미국 중서부에 최악의 가뭄이 닥쳐 옥수수·대두 수확량이 감소할 것이라는 소식과 함께 곡물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헝가리, 루마니아, 이탈리아 등에서도 폭염과 가뭄이 발생해 밀 수확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최근 엘니뇨가 시작되면서 호주와 인도에도 가뭄 징후를 보이고 있다. 엘니뇨는 중남미에는 폭우와 홍수를, 호주와 인도에는 가뭄을 일으킨다. 전문가들은 곡물가격 강세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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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과점 구조 심화
주요 수출국, 공급 줄이면 식량파동 불 보듯

2000년 이후 세계 곡물시장에서는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공급이 따라오지 못하면서 수급불균형 문제가 발생했다. 곡물 소비량은 1980년 이후 연간 14억t 수준에서 현재 22억8700만t으로 급증했다. 신흥국에서의 소비가 급증하고, 미국 등 선진국의 바이오연료 의무사용 증대 등으로 곡물 수요가 지속적으로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협정(FTA) 등 농산물 시장 개방압력이 거세지면서 곡물 수출국에 대한 수입국의 의존성이 심화됐다. 옥수수는 미국·브라질·우크라이나·아르헨티나 4개국이, 대두는 브라질과 미국 2개국이 전 세계 무역량의 80%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주요 수출국이 곡물 공급을 급격히 줄이면 세계적인 식량 파동으로 직결됐다. 최근 국제 곡물가격 급등현상의 주 원인은 옥수수 주요 수출국인 미국의 가뭄이다. 밀 수출 3위 국가인 러시아도 기상악화 영향을 받고 있어 세계 밀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미 농무부(USDA)는 2012~2013 곡물연도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을 전년 대비 2.7% 감소한 22억4700만t으로 전망했다. 곡물 소비량 전망치는 이보다 4000만t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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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량보호무역주의
자국 경제 보호 이유 마음먹으면 ‘수출 제한’

사료업계는 최근 사료용 밀(소맥) 가격이 올라가자 밀 수출국인 러시아를 주시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는 밀 작황이 좋지 않다. 2007~2008년 곡물파동 때 러시아는 밀에 40%, 보리에 30%의 수출세를 부과해 규제한 전력이 있다. 2010년 러시아의 밀 생산지에 심각한 가뭄이 들자 밀, 보리, 호밀, 옥수수 등 곡물 수출을 중단하기도 했다.

곡물 수출국이 수출을 규제하자 국제 곡물가격은 또다시 급등했다. 아르헨티나(2008년), 우크라이나(2008, 2010년), 중국(2008년), 인도(2008년) 등 다수의 곡물 수출국도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마다 자국 곡물 수출을 제한했다.

미국은 국내 곡물 공급 부족 시 자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수출제한을 할 수 있는 수출관리법을 우루과이라운드 이전에 이미 마련해 놓았다. 호세 그라시아노 다 실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사무총장은 지난 13일 “곡물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각국이 이기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평소 농산물 무역 자유화를 주창했던 곡물 수출국들이 식량위기 상황이 오자 수출을 제한하는 모순이 연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에너지원으로 사용
옥수수, 식량보다 바이오연료로 3배 더 소비

미국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의 40%인 1억2000만t가량이 바이오연료로 사용된다. 미국 내에서 식량으로 소비되는 옥수수는 11%, 가축용 사료는 36%다. 나머지 13%는 수출된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는 미국이 현재의 2배로 바이오연료 시설을 확대하면 2020년에 옥수수 가격은 72% 상승하고, 현재 시설을 유지하더라도 26%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이 옥수수를 이용한 바이오연료에 눈을 돌린 것은 2005년 부시 행정부 때였다. 고유가 상황에서 이라크 공격을 통해 석유를 확보하려는 계획이 어긋나자 바이오연료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농업계의 표를 얻기 위한 속셈도 있었다. 거대 농식품 복합기업인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DM)는 미국 바이오 에탄올의 28%를 생산한다. 엑손모빌, 셰브론, BP 등도 바이오연료 산업에 뛰어들었다.

최근 밀가격이 폭등하자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미국에 바이오연료 정책을 일시 중단하라고 요청했다. 국내 사료업계의 한 임원은 “미국 입장에서는 옥수수를 타국에 비싸게 팔려고 할 텐데 바이오 에탄올로 가는 옥수수의 비중을 크게 낮추겠냐”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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