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식량위기 오나

카길 등 초대형 상사, 저장·운송시설도 장악

2012.08.26 21:39

곡물메이저 ‘독과점 횡포’

1980년 이상 저온으로 벼농사가 타격을 입었다. 쌀 생산량이 355만t으로 전년도의 70% 수준으로 급감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쌀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정권의 정통성도 없는 상태에서 식량난까지 발생하면 정권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은 즉시 ‘곡물 메이저(Grain Major)’와 접촉했지만 협상은 애초부터 불평등할 수밖에 없었다. 한쪽은 팔아도 그만 안 팔아도 그만이지만 다른 한쪽은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결국 한국은 국제 시세의 2배가 넘는 t당 500달러에 쌀을 구입해야 했다.

국내 한 대기업은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3만여t의 옥수수를 생산했다. 그러나 이를 국내에 들여오지 못하고 헐값에 현지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장·운송 시설을 독점하고 있는 곡물 메이저의 횡포 때문이었다.

세계 곡물 가격은 초대형 곡물 상사인 곡물 메이저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카길(Cagill), ADM, 벙기(Bunge), 루이드레퓌스(LDC) 등 상위 4개 회사가 전 세계 곡물 교역량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곡물 저장시설과 곡물 운송을 위한 항만시설 등도 각각 75%와 50%를 점유하고 있다.

한국도 이들 곡물 메이저들로부터 전체 수입 물량의 60%가량을 들여오고 있다. 2008년 기준으로 콩 65.8%, 옥수수 62.4%, 밀 58.4%에 이른다. 한국은 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이지만 이들 회사에 철처히 예속돼 있다.

곡물 메이저의 영향력은 흉년에 더욱 막강하다. 곡식 한 톨이 아쉬운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거래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작황이 좋지 않아 옥수수 가격이 급등했던 2006~2008년 4대 곡물 메이저의 판매 가격은 t당 평균 274달러로 다른 곡물회사보다 20달러가량 비쌌다. 밀은 연중 내내 다른 곳보다 t당 50달러 정도 높다.

곡물 메이저들은 농산물 교역과 관련한 국제협상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국계 자본인 카길은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이다. 미국 정부는 ‘카길의 세일즈맨’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1990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미국을 대표해 협상을 주도한 인물이 당시 카길의 부회장이었다. 2003년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도 카길이 제안한 내용이 미국의 협상안에 그대로 반영됐다.

2011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급격한 식량 가격 폭등을 규제하자’는 프랑스의 의견을 미국이 반대했다. 배후에 카킬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곡물 메이저의 힘은 정보력에서 나온다. 각국 정부보다도 더 신속하게 농업 작황을 파악한다. 일례로 카길은 자체 인공위성을 통해 미국은 물론 러시아 등 전세계 주요 곡창지대를 매일 수차례씩 점검한다. 흉작이 들 것이라고 판단되면 전 세계의 곡물을 매점 매석하는 것이다. 세계 곡물 작황을 놓고 ‘머니게임’을 벌이는 시카고 선물시장에도 개입한다.

카길은 1865년 스코틀랜드 출신 사업가인 윌리엄 카길이 미국 오하이오주의 곡물 저장고를 사들이면서 출범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사세가 크게 성장했고, 1998년에는 라이벌인 콘티넨털 그레인(Continental Grain)을 인수·합병했다. 2003년에는 100억달러 규모의 헤지펀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카길의 지배구조는 봉건적이다. 창립자인 카길 가문과 맥밀런 가문이 회사 지분의 85%를 보유해 미국에서 개인소유 비중이 가장 높다. 증권시장에 상장되지 않아 회사의 재무제표도 공개되지 않는다. 워낙 독점적인 이윤이 크기 때문에 기업공개보다는 세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50여개국에 5만5000명을 고용하고 있고 2008년에는 40억달러의 순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ADM은 미국 일리노이주를 기반으로 브라질 등 남미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벙기는 1818년 네덜란드에서 출발해 남미의 아르헨티나를 기반으로 성정했다. 프랑스계인 루이드레퓌스는 곡물 유통 외에도 닭고기 등 가금류 가공 및 유통사업에 강점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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