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고 당시 ‘내수 중심’ 전환한 일본, 거품경제 꺼지자 ‘20년 장기불황’

2013.05.13 21:55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를 계기로 수출 중심의 경제체질을 내수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에 착수했으나 정책선택의 잘못으로 거품경제가 초래됐고, 거품의 붕괴로 20년간의 장기불황에 빠져들게 됐다. 일본 전문가들은 정책전환의 타이밍은 적절했으나 ‘엔고불황’에 대한 지나친 조바심이 정책을 그르쳤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 5개 선진국 재무장관들이 모여 달러화 강세를 시정하기로 한 플라자합의(1985년 9월22일)가 채택된 뒤 얼마 후 일본의 나카소네 야쓰히로(中曾根康弘) 총리는 일본은행 총재를 지낸 마에카와 하루오(前川春雄)를 좌장으로 하는 경제전문가들에게 수출의존형 경제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한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 몇 달 뒤인 1986년 4월7일 마에카와는 ‘내수주도로의 경제구조 전환’ 방안을 집약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마에카와 리포트’로 불리는 이 보고서는 일본경제의 구조전환을 위한 ‘정책바이블’이 된다.

일본은 1970년대 발생한 두 차례 오일쇼크를 극복하면서 1980년대 전반 3~5%의 성장을 지속했다. 수출도 다시 급속히 확대돼 1985년 TV부문의 경우 세계시장 점유율이 47.3%에 이르면서 ‘일본은 자국경제만을 생각한다’는 선진국들의 비난과 압력에 직면했다. 특히 미국은 보호주의 노선을 강화하면서 일본에 다방면의 압력을 가했고, 플라자합의도 이런 배경하에서 이뤄진 것이다. 플라자합의 당시 1달러당 240엔이었던 엔화는 두 달 만에 달러당 200엔으로 약 20%나 절상됐다.

나카소네 정부는 일본의 ‘세계수출 시장 독식’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내수 중심으로 경제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다. 미국의 통상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수입개방 폭을 늘리는 한편 내수분야의 민간활력을 키우자는 명분으로 부동산 등에 대한 규제완화 방안도 마련됐다.

하지만 일본은 ‘엔고불황’에 대한 조바심이 커졌고, 이 때문에 건설국채의 증액을 허용하고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정책이 속속 입안됐다.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해 동결했던 신칸센 추가 건설도 건설업계의 요구로 1986년 말 해제됐다. 거품경제와 만성 재정적자의 씨앗이 이 당시 뿌려진 것이다. 엔고불황을 우려한 일본은행도 금리를 지속적으로 하향조정해 1985년 연 5%이던 대출금리가 1987년 2.5%로 하락했다. 부동산 규제완화와 금리인하 등이 겹치면서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주식시장 역시 전례 없이 달아오르면서 일본이 거품경제로 치닫게 된 것이다.

다케다 하루히토(武田晴人) 도쿄대 교수는 저서 <일본경제의 사건부>에서 “연료와 원자재 수입의존도가 높은 일본에 엔고는 수입가격 하락에 따른 비용절감의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음에도 당시 일본사회는 엔고불황의 도래를 과도하게 우려하는 분위기로 흘렀고, 그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될 정책들이 도입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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