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신의 한수’는 없다

2016.06.09 11:29 입력 2016.06.09 11:32 수정

정부가 국민들이 떠안아야할 12조원의 거금을 쏟아부어 막대한 부실의 늪에 빠져 있는 조선·해운업을 살리는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면서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새삼 다시 거론된다. 본디 대마불사는 위태위태해 보여도 덩치가 큰 돌뭉치(대마)는 쉽게 죽지 않는다는 뜻의 바둑 격언이다. 하지만 격언은 격언일 뿐. 실제 바둑에서 수십집짜리 대마가 결국 잡히면서 승부가 나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세돌 9단(오른쪽)이 지난 3월10일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두번째 승부를 겨루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이세돌 9단(오른쪽)이 지난 3월10일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두번째 승부를 겨루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정부 조치로 벼랑 끝에 서 있는 대형 조선사 3곳과 대형 해운사 2곳은 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됐지만 정상화까지는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바둑으로 치면 잡히기 직전의 대마를 각종 ‘꼼수’를 동원해 간신히 ‘패(패·한 집을 놓고 서로 한수씩 걸러 가며 잡으면서 사활이 결정되지 않는 상태)’를 만든 것과 같다. 정부 발표에서 이세돌 9단이 지난 3월13일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대국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과 같은 ‘신의 한수’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업이나 해운업 모두 산업경쟁력의 한계로 인해 밑빠진 독에 물붓기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근본적인 산업구조 개편 보다는 그냥 대마를 살리는 쪽을 선택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합병이나 법정관리 등의 ‘승부수’는 없었다. 아무리 큰 회사라도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과감하게 버리고(‘사석 작전’) 국민 경제 전체를 살리는 ‘대형 바꿔치기’에 승부를 걸기엔 현 정부 경제팀의 ‘수읽기’는 부족했고 ‘간’도 작았던 것 같다.

패를 이겨 대마가 간신히 산다 해도 상대방에게 바둑판의 딴 곳에 연속해 두점을 둘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는 바둑 전체의 승부와도 직결될 수 있다. 정부가 부실한 조선·해운사를 살리는 ‘패’에 집착하다 국민경제라는 승부를 놓칠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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