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 재원으로 정부가 계획한 11조원 규모의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가 은행법과 한국은행법 등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의 심의를 받아 재정을 투입하는 ‘정공법’을 피하려고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려다가 위법성 시비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정부가 지난 8일 발표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은 한은이 돈을 찍어 기업은행에 대출해 주면 기업은행이 이를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 운용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목적회사(SPC)에 재대출을 해주는 구조로 돼 있다. SPC는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설립하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조건부 자본증권(코코본드·유사시 투자금이 주식으로 강제 전환되거나 상각되는 채권)을 매입한다.
그러나 이 방식은 현행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시민단체와 학계에서 나온다. 일단 한은이 대출을 해주면서 설정되는 담보가 논란이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기업은행이 캠코의 SPC로부터 받은 어음이 한은이 해준 대출의 담보가 된다. 하지만 기업은행과 캠코가 설립한 SPC는 계열회사 관계로도 볼 수 있다. 기업은행과 캠코의 최대주주는 모두 정부(각각 51.8%, 56.84% 소유)이기 때문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계열회사로부터 취득한 어음을 담보로 다른 계열회사에 대출해선 안된다는 한은의 금융기관 대출세칙 제1조의2 제1항 제1호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은으로부터 대출받은 기업은행이 캠코가 설립한 SPC에 11조원을 대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인다.
은행은 그 은행 대주주의 특수관계인에게 자기자본의 25%(기업은행의 경우 4조원대) 이상 대출해 줄 수 없도록 한 은행법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9일 논평을 내 “캠코는 물론이고 캠코가 설립하는 SPC는 기업은행의 최대주주인 정부의 특수관계인”이라면서 “기업은행은 캠코가 설립한 SPC에 정부 발표처럼 11조원을 대출해 줄 수 없고, 정부도 이를 기업은행에 요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정부가 구조조정을 엉망진창으로 지휘한 사실이 드러날까봐 국회 심의를 피하기 위해 법까지 어기고 있다”면서 “펀드를 만드는 대신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맞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대주주의 특수관계인 개념을 정부에 대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