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

부실 더 키운 ‘관치’ 그들의 ‘습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2016.06.09 22:54 입력 2016.06.10 10:07 수정

[기자메모]부실 더 키운 ‘관치’ 그들의 ‘습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동안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는 곳이라던 청와대 서별관회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결정한 밀실 회의였다. 산업은행이 관리하는 부실기업과 자회사에 청와대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이 사이좋게 낙하산 자리를 나눠 가졌다. 청산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되는 기업에 국책은행이 무조건 돈을 대라는 압력을 가했다. 정부는 부행장급 인사 등 시시콜콜한 사안까지 관여하면서도 증거가 남지 않는 구두지시를 남발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위협이 횡행했다. 관료와 금융기관 간에는 ‘까라면 까는’ 군대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이 지난 8일 보도한 홍기택 전 KDB금융그룹 회장 겸 산업은행장의 발언들을 통해 밝혀진 일면들이다.

홍 전 회장의 ‘의도하지 않은 발언들’의 불똥은 청와대와 금융당국을 넘어 여의도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해 서별관회의의 주인공이었던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며 청문회까지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보도 이후 당사자들은 “개인적 의견에 불과하다”(책임 떠넘기기),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변명과 부인), “언급할 가치가 없다”(‘모르쇠’ 전략)로 일관하고 있다. 이 또한 전형적인 관치의 모습들이다. 서별관회의를 통해 3조원 가까운 혈세가 들어간 상황에서도 정부는 또다시 한국은행에 손을 벌리는 편법으로 ‘국민 돈’ 12조원을 마련했다. 치킨집 주인, 비정규직 노동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등 대한민국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조성한 천문학적 규모의 돈은 부실 대기업을 살리는 데 들어간다.

그렇지만 ‘혈세가 혈세를 부르는’ 현 구조조정 국면의 원인은 무엇이고,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시원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는 “구조조정에 정치 논리가 들어간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구조조정 과정에 정치는 무관하며 앞으로도 그렇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관치는 없었다는 주장과 다름없다.

임종룡 위원장은 “대우조선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은행과 협의했고 충분히 의견을 존중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관료에 비하면 절대적 을(乙)에 불과한 산은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는지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저간의 사정으로 보면 “정책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홍 전 회장의 말에 무게중심이 쏠린다. 정부 지분이 없는 시중은행과 제2금융회사까지 무소불위의 인사권을 행사하는 당국에 산업은행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됐는지도 알 수 없다.

최경환 전 부총리의 한 측근은 “산은이 들고온 ‘대우조선 자구안’이 강도가 약해 반려시킨 게 당시 최 부총리”라고 전했다. 그러나 ‘진박 감별사’로 지난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 지원유세 당시 최 전 부총리가 “경제부총리는 그만두었지만 제가 친한 공무원이 수두룩하다. 제가 전관예우를 발휘해서 확실한 예산을 보내주겠다”고 말한 것을 감안하면 그리 신뢰가 가지 않는다.

지금까지 정부는 부실기업 문제가 불거지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이를 은폐하기에 급급했고, 그 결과 부실은 더 커지고 구조조정을 지연시켜왔다. 이 같은 적폐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대우조선 관치의 실상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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