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리스크’ 제동장치 고장 난 대한항공

2018.04.18 06:00

국민 공분산 ‘땅콩 회항’으로 3년 전 고개 숙인 조양호 회장

‘기업 쇄신’ 약속했지만 말뿐…총수 일가 감시 시스템 부재

“노동이사제 도입 등 독단적 지배문화 감시해야”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갑질과 말뿐인 반성이 반복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3년 전 ‘땅콩 회항’에 대해 사과했고(왼쪽 사진) 장본인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항공사고 조사위원회에 출석했다(가운데). 이번에는 ‘물벼락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고개를 숙였다.  경향신문 자료사진·MBC 화면 캡처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갑질과 말뿐인 반성이 반복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3년 전 ‘땅콩 회항’에 대해 사과했고(왼쪽 사진) 장본인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항공사고 조사위원회에 출석했다(가운데). 이번에는 ‘물벼락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고개를 숙였다. 경향신문 자료사진·MBC 화면 캡처

2014년 12월5일 당시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견과류 서비스를 문제 삼아 뉴욕 JFK공항에서 이륙하려던 비행기를 돌려 세웠다. ‘땅콩회항’ 사건이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고개를 숙였고, 기업문화를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겠는가’라는 문제 앞에 재발방지책은 흐지부지됐다. 결국 대한항공은 오너의 일탈을 막고, 총수를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없었다. 그 결과는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로 이어졌다.

대한항공 총수일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지난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대한항공 개인회사의 ‘대한’, 영문명 ‘korean air’의 명칭 사용금지 요청”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청원은 나흘 만에 참여인원 7만명을 넘어섰다. 아예 경영에서 손을 떼라는 요구다.

회사는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예측불가능한 개인의 일탈’이라는 해명 이외에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소통위원회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번 사건을 방지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임직원이 익명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내게시판 성격의 ‘소통 광장’ 역시 총수일가를 견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번 ‘물벼락 갑질’ 사건도 외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익명 게시판인 ‘블라인드’를 통해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적극적인 자정노력이나 대응책 마련 없이 또 한번 ‘총수 일탈’을 방치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문제는 대한항공이 ‘땅콩회항’ 사건으로 사회적 공분을 사고도 조직 내 총수일가의 ‘전횡’을 감시하고 견제할 시스템이 없었다는 것이다. 땅콩회항 당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2015년 신년사에서 다시 한번 임직원들에게 사과하며 ‘소통위원회’를 구성해 기업문화를 쇄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대한항공은 예견된 ‘리스크’를 방지하지 못했다”며 “문제는 총수 경영의 한계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조직 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있다 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결국 국가적 차원의 외부 감시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정부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일정하게 나눠갖는 체제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제의 당사자가 오너 일가라는 이유만으로 다시 경영에 복귀하는 일도 이 같은 시스템 부재가 낳은 참사다.

‘땅콩회항’ 사건으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은 조현아 부사장은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인 지난 3월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복귀했다. 오너의 잘못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되고 이로 인해 임직원과 주주들은 피해를 보지만 오너들에게는 사실상 ‘리스크’가 없었던 것이다. 대한항공과 진에어 주가는 조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얼굴을 향해 물을 뿌렸다는 주장이 제기된 이후 연속 하락했다.

김은정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팀장은 “재벌 3세 개인의 일탈적인 행동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힘의 불균형’에서 생겨난 문제”라고 말했다. 대한항공뿐만 아니라 총수일가들이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지 않고 적은 지분으로도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미다. 총수일가가 과도한 지배력을 기업에서 행사하는 전근대적인 문화로 인해 ‘갑질’ 및 일감 몰아주기, 비정상적 경영권 승계 등의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국민연금이 지분에 걸맞게 기업경영을 투명하게 하도록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소수 주주권을 강화해 체질개선을 압박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노동자의 이익이나 주장을 대변할 수 있는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는 것도 총수일가의 독단적인 조직 지배문화를 감시하는 시스템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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