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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회수 쉽게 계약서 고쳐라” 중기에 ‘탈법’ 강요한 우리은행

2015.04.01 06:00 입력 2015.04.01 17:40 수정

항공컨테이너 개발·수출사 정책자금 대출 약속해놓고

“담보권 실행 때 제약 많다” 자금지원 중단 ‘폐업 위기’

정부의 창업자금지원대상으로 선정된 수도권 산업단지 입주기업에 정책자금을 대출해주기로 한 우리은행이 대출금 회수를 쉽게 하기 위해 해당 기업에 위법적인 계약서 작성을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소기업은 은행 측의 갑작스러운 대출 중단으로 자금난에 휩싸이며 폐업 위기에 몰렸다.

경기 평택의 외국인투자기업 전용임대단지에 입주한 항공 컨테이너(ULD) 제조업체인 ‘카이트’는 2013년 미국 기업의 투자유치를 받아 평택의 외국인투자기업 임대단지에 입주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창업기업 지원자금을 지원키로 하고 우리은행이 8년 만기 연 4.13%의 금리로 23억원을 대출해주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카이트 공장 일부 시설을 담보로 4억1000만원을 우선 지원했다. 나머지 18억9000만원은 공장이 완공되면 공장건물을 담보로 지난 2월 지원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장이 완공된 2월 우리은행은 “공장이 외국인투자기업 전용임대단지에 있어 담보권 실행 시 담보 취득에 제한이 있다”며 추가 대출을 중단했다. 카이트가 부도가 날 경우 은행이 공장건물을 경매로 매각해야 하는데 외국인투자기업 단지는 법령상 입찰자가 외국인투자기업 등으로 제한돼 있다는 점을 문제삼은 것이다. 외국인투자촉진법 등은 해당 사업단지 입주조건을 ‘외국인 최소 100만달러 투자·회사 지분 30% 이상 투자’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업체에 “대출금 회수를 쉽게 하도록 경기도와 산업단지 입주 계약서를 새로 작성해오라”며 카이트를 압박했다. 경매입찰에 참가하는 기업에 자격제한을 두지 않도록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라는 것이다. 은행 측은 지난 27일 경기도시공사에도 “카이트와의 임대차계약서 내용을 변경해야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우리은행이 경기도시공사에 카이트와의 임대차계약 내용을 변경할 것을 요청한 공문. 경향신문이 입수한 이 공문에는 “채권자의 담보권 실행 또는 강제집행에 기인한 소유권 변동이 이뤄지는 경우 (중략) 법률 및 시행령 등에도 불구하고 신소유자에 대한 자격요건에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기로 한다”는 내용을 계약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우리은행이 경기도시공사에 카이트와의 임대차계약 내용을 변경할 것을 요청한 공문. 경향신문이 입수한 이 공문에는 “채권자의 담보권 실행 또는 강제집행에 기인한 소유권 변동이 이뤄지는 경우 (중략) 법률 및 시행령 등에도 불구하고 신소유자에 대한 자격요건에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기로 한다”는 내용을 계약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은행 측의 요구에 대해 해당 기업은 물론 중진공과 경기도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중진공 관계자는 “우리은행은 카이트가 외국인투자기업으로 해당 산단에 입주해 있음을 알면서 1차로 4억1000만원을 대출해줬다”며 “담보조건이 갑자기 바뀐 것도 아닌데 회수가 어렵다는 이유로 약속한 추가 대출을 중단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도 관계자도 “관계법령상 산업단지 입주자격은 ‘강행규정’으로 변경이 불가능한데도 은행이 투자금 회수를 위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은행이 이런 식으로 위법사항을 요구하는 경우는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카이트가 제조해온 항공 컨테이너는 그간 미국과 유럽이 독점해온 품목이었으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국내 업체가 참가할 수 있게 된 사업분야다. 당시 물류업체를 운영하던 이한경 대표(53)와 ㄱ항공사 조종사 출신인 이규항 이사(43)가 2년간 시장성 조사를 한 뒤 사업에 뛰어들었고 말레이시아항공과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 등에서 29만9000달러어치를 주문하는 등 지난 2월까지만 해도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참이었다.

하지만 은행의 자금지원이 끊기면서 공장 건설에 참여한 시공사와 자재업체, 장비업체도 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잔금이 들어오지 않자 시공사는 공장 앞 도로 포장공사를 중단했다. 카이트가 7월까지 납품하기로 한 시제품도 생산 중단 위기에 처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카이트의 사업이 사업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신생 사업인데다 기보와 신보 등 전문평가기관에서도 기술평가를 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은행 입장에서 담보가 필요한 상황인데 담보에도 제한사항이 많아서 경기도 측과 해당 사항의 해결을 위해 검토하는 상황이었다”며 “민원 해결을 위해 관련 기관과 협의를 심도있게 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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