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선박기술 알려 한국 조선 키운 던컨 ‘보은의 금탑훈장’

2011.12.09 21:22 입력 2011.12.12 11:17 수정

‘무역 1조달러’ 31명 상 받아

1975년 늦봄. 부산공항에 도착한 도쿄발 비행기에서 한 영국인이 내렸다. 대충 손질한 머리에 낡은 양복을 입은 그는 UASC(United Arab Shipping Company)사의 기술수석책임자인 윌리엄 잭 던컨(William Jack Duncan)이었다. 그는 당시 조선·해운업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가운데 한명이다. 던컨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울산 현대조선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대중공업은 1974년 11월 중동의 UASC사에서 2만3000t급 다목적 화물선 24척을 수주했다. 던컨은 이 배를 잘 만드는지 감독하러온 기술책임자였다.

당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 한장과 모래사장을 찍은 조선소 부지 사진만 갖고 세계 각국을 돌며 배를 수주하던 시기였다.

막상 배를 수주하긴 했지만 조선소는커녕 선박 건조 경험도 전무했던 시기다. 배 만드는 걸 감독하러온 던컨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감독관 대신 기술 전수자를 자처했다. 한국 조선산업의 기초를 다지고 기술 노하우를 전수했다. 당시 던컨과 함께 일한 황성혁 전 현대중공업 전무는 회고록에서 던컨을 “고집불통 욕쟁이”라고 표현했다. 철저한 일처리 탓에 건조 과정에 무리한 요구사항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지시한 내용은 대부분 선박 건조의 교본이 됐다.

1976년 가을 현대중공업 임직원과 스코틀랜드인 윌리엄 잭 던컨이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선박 아사키르호 명명식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위 사진). 1977년 알 압바르호 명명식에 참석한 김영주 전 현대중공업 사장과 던컨(오른쪽)이 악수하고 있다. | 현대중공업 제공

1976년 가을 현대중공업 임직원과 스코틀랜드인 윌리엄 잭 던컨이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선박 아사키르호 명명식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위 사진). 1977년 알 압바르호 명명식에 참석한 김영주 전 현대중공업 사장과 던컨(오른쪽)이 악수하고 있다. | 현대중공업 제공

던컨이 ‘한국을 사랑했던 스코틀랜드인’으로 남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던컨은 이후 한국에 빠져들면서 “영국이 백년 걸린 일을 한국 현대조선은 3~4년 만에 해치운다. 조선은 이제 한국인들에게 물어보라”며 한국을 예찬했다고 한다.

그의 한국 사랑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화물선 건조가 끝나가던 1978년 1월 현대중공업은 또다른 초대형 선박 수주경쟁을 벌였다. 쿠웨이트 해운(KSC)이 발주하는 11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짜리 컨테이너선 4척을 수주하기 위해 일본의 이시카와지마중공업과 맞붙었다. 중동 선주는 최종 후보를 복수로 남겨둔 채 상대방의 ‘패’를 서로에게 보여준 뒤 가격을 흥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최대한 가격을 깎기 위한 방법이다.

황 전 전무는 “쿠웨이트해운 영국인 사장은 이시카와지마중공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다”며 “마지막 흥정을 앞둔 날 던컨의 훈수를 받으려고 직원들이 쿠웨이트 시내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지친 일행이 다시 호텔로 돌아왔을 때 던컨은 이번 흥정을 맡은 중개인과 한가롭게 점심을 먹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 도움을 주기 위해 중개인을 한국 측 호텔로 일부러 불렀던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이 중개인을 통해 수주 정보를 모두 얻은 덕에 일본을 제치고 컨테이너선을 수주했다.

그는 런던으로 돌아간 후에도 황 전 전무와 거의 매일 전화로 친분을 나누며 한국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황 전 전무는 “던컨이 ‘나는 너희들의 무엇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며 “당시 나는 한국 조선공업의 역사에 가장 큰 발자국을 남긴 사람의 하나로 기록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후 현대중공업은 1983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제치고 수주량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조선소를 준공한 지 10년째 되는 해였다. 올해 우리나라 조선 수주규모는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며 세계 1위다.

현대중공업은 한국 조선산업의 산파 역을 한 던컨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러나 던컨은 1981년 53세 나이로 사망한 뒤였다. 현대중공업은 런던 지사를 통해 수소문한 끝에 어렵사리 그의 아들 앤드루 던컨을 찾는 데 성공했다.

정부는 9일 국내 조선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해 던컨에게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주기로 했다. 상은 아들이 대신 받는다. 아들 던컨은 상을 받기 위해 오는 10일 한국에 들어온다.

12일 무역의 날을 맞아 열리는 시상식 행사에서는 한국의 무역 1조달러 돌파에 기여한 31명이 상을 받는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