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쇄 찬 반도체 강국…핵심소재 해외 의존 ‘약점’ 드러나

2019.07.08 21:23 입력 2019.07.08 21:26 수정

완제품 제조 기술 세계 1위 불구 소재·부품 일본에 의존, 보복에 취약

일본, 실리콘 웨이퍼 등 세계시장 과반 점유…3개 품목 규제에도 타격

한국 소재산업 육성, 최대 무역흑자 냈지만 시장규모 작아 경쟁력 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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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중 일본산 단 3개 품목의 수입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반도체산업 전체가 메가톤급 충격에 빠진 것은 태동기부터 일본과 미국 기술력에 의존해왔던 한국의 반도체 산업구조 때문이다. 한국 소재·부품 산업이 양적으로 성장했고, 완제품의 기술력과 시장점유율도 세계적 수준이지만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반도체 핵심 소재·부품은 외국산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가 대외 리스크에 취약한 지점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소재·부품 분야에서 한국은 1389억8800만달러(약 164조753억원)에 달하는 흑자를 봤지만 일본을 상대로는 오히려 151억2300만달러(약 17조8527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한 소재·부품 총액은 288억3900만달러에 이른다. 같은 기간 한국의 휴대전화 수출액(145억2000만달러)의 두 배에 달한다. 일본이 대한국 수출을 제한한 3개 품목이 포함된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 무역적자는 36억8700만달러에 이른다.

지난해는 유례없는 반도체 슈퍼호황기였고 한국의 연간 수출액도 사상 최초로 6000억달러를 돌파했지만, 한국은 수출을 많이 하면 할수록 일본으로부터 중간재 수입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경제구조 때문에 수출이 늘면 대일본 소재·부품 무역적자도 따라 늘어난다. 이런 특성으로 한국 경제를 ‘가마우지 경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낚시꾼이 가마우지 목에 낚싯줄을 묶어놓고 가마우지가 잡은 물고기를 가져가듯이, 한국이 수출을 많이 하면 일본이 이득을 가져간다는 뜻이다.

특히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강국이지만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산업은 아직 성장 단계에 있다. 미국과 일본은 1960년대부터 반도체산업을 발전시키며 소재·부품·장비 분야에도 오랜 기간 투자해 다수의 원천기술을 확보했지만, 한국은 1980년대부터 반도체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연히 완제품 위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국과 일본에서 제조장비와 핵심소재를 도입해 사용하는 전략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던 처지였다.

이 때문에 일본은 완제품 시장에서는 한국과 중국에 밀리지만 소재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독보적 위치를 누리고 있다. 최근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보고서를 보면 반도체 소재시장 중 최대 규모인 실리콘 웨이퍼의 경우 2017년 기준으로 신에쓰(30%)와 섬코(27%) 등 일본 기업이 세계시장의 과반을 점유하고 있다. 대한국 수출규제 품목 중 하나인 포토리지스트(감광재)는 일본이 세계시장의 99%를 싹쓸이하고 있다. 그밖에 반도체용 봉지재(80%), 차단재(78%), CMP 슬러리(53%) 등 품목도 일본이 과점하고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소는 2013년 보고서에서 “일본산 소재·부품이 없으면 당장 전 세계 전자산업이 멈출 수도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이번 수출규제 사태가 불붙기 전에도 정치적 이슈로 인해 일본산 소재 공급이 부족해질 경우 반도체 생산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한국도 2000년대 들어 부품·소재전문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만드는 등 수십년간 소재·부품산업 육성을 시도해왔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2001년 619억달러에 불과했던 소재·부품 수출액은 지난해 3161억8000만달러로 늘어났다. 하지만 주요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에 한국 산업의 주력인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를 의존하고 있는 게 문제다. 정부는 조만간 핵심 소재·부품 육성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장기적 처방일 뿐 문제를 해결하기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일본이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한 3가지 품목의 경우 반도체 제조에는 꼭 필요하지만 시장 규모가 작아 국산화보다는 외교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게 기업 입장에서는 가장 좋을 수 있다”며 “다만 장기적으로는 차세대 반도체를 개발할 때 국산 소재와 장비를 사용하도록 기술 개발에 투자해야 근본적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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