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국수·카레·빵·짜장면·햄버거까지 ‘골목상권’ 압도

2012.02.01 22:09 입력 2012.02.02 00:00 수정
홍재원 기자

중소 서민업종 침범

지난달 31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인근에 위치한 비빔밥 전문점 ‘비비고’.

CJ그룹의 자회사인 CJ푸드빌이 직영하는 업체다. 점심시간대인 오전 11시40분부터 1시간 동안 움직임을 지켜봤다. 주문대의 줄은 끊이지 않았다. 고객들은 주로 7500~8000원짜리 메뉴를 주문해 패스트푸드점 방식으로 식판에 받아갔다. 10초당 1명꼴. 얼핏 봐도 ‘30초당 매출 2만원’이었다. 식사에는 CJ제일제당에서 생산하는 햇반과 고추장, 참기름이 제공된다. 시쳇말로 그룹 계열사가 총동원된 ‘수직계열화의 완성’이었다. 반면 인근 식당들은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비비고에서 3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식당. 메뉴는 해장국과 비빔밥 등이다. 값은 6500원. 하지만 손님이 거의 없었다. 식당 주인 정종훈씨(59·가명)는 “비비고가 들어선 지 1년 정도 지났는데 그 사이 매출이 20%가량 줄었다”고 밝혔다. 정씨는 “불경기 탓도 있지만 비비고 입점이 매출 감소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며 “월세나 금융 비용이 상당해 이 부근에 식당을 내면 초기에 견디기 어려운데 대기업이라 자금력과 마케팅에서 앞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1일 낮 12시 무렵 서울 광화문 인근에 있는 비빔밥 전문점 ‘비비고’ 주문대 앞에 직장인들이 늘어서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1일 낮 12시 무렵 서울 광화문 인근에 있는 비빔밥 전문점 ‘비비고’ 주문대 앞에 직장인들이 늘어서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지난달 30일 오후 7시. 서울 강남역 지하철역에서 500m 떨어진 대로변에 위치한 차이나팩토리. 역시 CJ푸드빌이 운영하는 업체다. 이 식당은 중국음식점이라기보다 레스토랑에 가까웠다. 100평이 넘어보이는 깔끔한 매장 안에는 100석이 넘는 좌석을 손님들이 꽉 채우고 있었다. 2만4800원을 내면 30가지의 중국요리 중 3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메뉴는 ‘탕수육’ ‘유산슬’ ‘깐풍기’처럼 널리 알려진 요리는 물론 ‘몽골리안비프’나 ‘꿍파오 치킨’ ‘싱가포르식 에그누들’ 같은 독특한 음식도 포함돼 있다. 만두요리인 ‘딤섬’과 생맥주도 무료 제공된다. 삼성과 제휴한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음식값의 30%까지 할인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값은 1만7000원 정도가 된다.

식당에서 만난 류정현씨(37·회사원)는 “차이나팩토리는 깔끔하고 고급스러워 마음에 든다”면서도 “이런 식당이 확산될 경우 ‘동네 중국집’은 경쟁상대가 되지 못해 도태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 사이트에는 현재 차이나팩토리 강남점 등이 매물로 나와있다. 권리금은 2억~3억원 수준. 월수익 1200만~3500만원 보장 등의 내용도 곁들여있다. 차이나팩토리는 100% 직영점이라는 CJ 측의 설명과는 다른 내용이다.

비빔밥·국수·카레·빵·짜장면·햄버거까지 ‘골목상권’ 압도

매매 담당자는 “CJ가 사업 확대를 추진하는 만큼 원활한 가맹점 모집을 위해 초기에 ‘알짜 점포’를 가맹점으로 전환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 창업전문 컨설턴트는 “본사 직영 효율에 한계가 있는 만큼 대기업들이 사업 확대를 앞두면 일부 지점을 순차적으로 가맹점 체제로 전환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CJ푸드빌은 공격적인 경영 목표를 갖고 있다. CJ는 중식·한식뿐 아니라 양식, 간식까지 손을 대지 않은 외식업종이 없다. 국수전문점인 ‘제일제면소’, 카레전문점인 ‘로코커리’뿐 아니라 빵집 ‘뚜레쥬르’, 스테이크 등을 파는 ‘더 플레이스’, 뷔페 식당 ‘빕스’, 햄버거 가게 ‘빕스버거’, 그리고 씨푸드 오션, 피셔스마켓, 콜드스톤 등 14개 외식브랜드 1800여개 매장을 확보하고 있다. 이미 전국 구석구석에 포진해 골목상권을 압도하고 있는 이들이 추가적으로 매장 확충에 나선다면 파급력은 불 보듯 뻔하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대기업 식당 진출이 당장엔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영세업자들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기업이 사업을 시작하면 이익을 창출하려 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며 “대기업의 자본력을 동원해 기존 상권을 누르면 당할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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