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피생이 “일관성 없는 부동산 정책, 선악 구도 접근이 문제”

2020.07.11 10:34

서울 강남·송파 일대 아파트 / 김기남 기자

서울 강남·송파 일대 아파트 / 김기남 기자

최근 부동산 시장이 요동치면서 부동산 전문가들의 평가에도 관심이 쏠렸다. 김민규씨는 정부의 부동한 정책에 냉정한 진단을 내린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김씨는 30대 대기업 월급쟁이면서 <돈이 없을수록 서울의 아파트를 사라>의 저자다. ‘구피생이’라는 필명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블로그에 부동산 분석 글을 올린다. 부동산 강연도 종종 나간다. 부동산 검색 사이트 ‘FindAPT’ 운영자이기도 하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 당원이었으나 최근 탈당했다. 김씨는 지난 7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런 부끄러움도, 반성도 없이 인기에만 영합한다”고 썼다. 임대사업자 등록 혜택 등 오락가락하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던진 메시지였다. 김씨는 “부동산 정책에 정답은 없다. 가장 부작용이 적은, 그러면서 일관성 있는 정책을 택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김씨와 인터뷰는 지난 7월 6일과 7일 이틀 동안 전화와 서면으로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어느 시점에서 꼬였다고 보는가.

“모든 것의 시작은 2017년 8·2 부동산 대책이었다고 본다. 서울 시내 청약은 갑자기 ‘가점제 100%’가 됐다. 사실상 ‘무주택 10년 이상을 유지하고, 부양가족이 2명 이상 있는’ 40대 초·중반 이상이어야 청약 당첨의 자격을 인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부는 임대사업자 등록을 정책적으로 장려했고, 이들에게 인센티브를 줘 오히려 집을 더 사게끔 했다. 도시 거주가 필요한 실수요자들은 청약·대출에서 제한을 받고 뒷전이 됐다. 불과 2~3년 전에는 마음만 먹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던 보통의 집들이 빠른 속도로 멀어져갔다.”

-2017년 8·2 부동산 대책에는 어떤 정책이 담겼어야 했을까.

“당시에는 부동산이 미친 듯이 급등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10억원, 15억원짜리 아파트가 별로 없던 시절이다. 당연히 빚을 6억~7억원씩 내면서 아파트를 사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이때 임대사업자 혜택을 주는 대신 무주택자에게 자기 집을 살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설계했으면 어땠을까. 정부는 지금 당시 정책 실패를 인정할 솔직함도 없다. 이제 와서 ‘임대사업자들이 나쁘다’며 정책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분노가 최근 갑자기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

“6·17 부동산 대책이 차라리 나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 본다. 그랬다면 별일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괜히 정책을 뒤집어서 불안감만 조성했다. 수도권 거의 대부분을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어버려 지역별 차별성이 없어졌다. 조정대상지역이 넓어지면서 ‘남의 일’이던 부동산 정책이 ‘내 일’처럼 된 사람들도 많다. 이제는 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제 아무 데도 못 사겠네?’ 이런 생각하게 됐다. 정책의 실익은 없고 감정 소모만 커졌다. 이런 감정 소모는 앞으로 더 심해질 거라고 본다.”

-부동산 정책이 자주 바뀐 것도 시장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보는가.

“하루하루 달라지는 규제로 인해 정책 연속성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 과거 규정을 새로운 정책이 소급하고, 지금 가능한 것이 언제 불가능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어떤 계획도 세울 수 없게 만든다.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알겠다. 내놓은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까 정책을 계속 추가해 제시하는 것이고, 끝까지 부동산 잡겠다는 의지도 알겠다. 그런데 정책이 나와도 유효기간이 1년이 안 되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신뢰를 하겠는가.”

김민규씨 제공

김민규씨 제공

-정부가 ‘인간의 욕망’을 죄악시한 채 정책을 추진했다는 비판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부가 솔직하지 않았다. 개개인의 욕망에 대해 일정한 한계를 부여한 뒤 ‘대출받아 집을 사려고 하는 30대는 좀 가만히 있으라’고 차라리 솔직하게 얘기했어야 했다. 공급도 충분하고, 투기꾼 때문에 모든 사단이 벌어졌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그런데 정부가 문제라고 하는 투기꾼에게는 임대사업자 혜택을 줬다. 공급은 빠르게 이뤄지지 않았고, 출퇴근 권역을 확대하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착공도 늦어졌다. 집 사겠다는 욕망을 가진 사람은 청약에서 가점제 때문에 못 사게 됐다. 정부가 겉으로 얘기하는 것과 실제 정책 실행은 깊숙이 들여다보면 방향이 많이 달랐다. 사람들이 더 이상 정부를 믿지 않는다.”

-30대의 주택 소유·자산 증식 열망을 어떻게 보나.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계층 상승의 욕망이 강하다. 대부분 교육으로 반영되지만 교육만으로 안 되는 측면이 있다. 부동산을 통해 일정 부분 시도하는데, 이를 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늘날 30대는 10년 뒤 한국사회의 허리가 되고, 소비의 핵심축이 될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산을 보유하지 못하게 되면 노인들이 모든 자산을 독점하게 된다. 기존의 고도성장기에 자란 사람들이 자산을 선점해 지대를 향유하면, 젊은 층은 절대로 집을 살 수 없는 상황으로 간다. 이미 근로소득만으로는 부동산값이 뛰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리지 않았나.”

-그렇다면 정부는 어떤 방향으로 부동산 정책을 추진해야 할까.

“정부의 고심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다주택자가 주택을 팔게 풀어주면, 팔아서 생긴 돈으로 다시 강남 아파트를 살까봐 정부는 우려한다. 정부의 재건축 딜레마도 이해가 간다. 재건축했을 때 일반 분양으로 나오는 물량이 너무 적다. 700호를 부수면 200~300호 정도만 일반 분양 물량으로 나온다. 그사이 기존 소유자의 재산 가치는 올라가고. 재건축 기간 동안 700세대 멸실 수요를 어떻게 감당할지 문제도 생긴다. 다만 개인의 욕망을 지나치게 제한하려는 관점이 문제다. 다주택자는 다 나쁜 사람이라는 식으로, 부동산 정책을 권선징악에 입각해 추진하는 느낌도 든다. 재건축·재개발이나 신도시 건설이 능사는 아닐지라도 일단 파이(공급)를 키워서 나눠줄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파이를 늘리면서 주거 수준의 전반적인 상향 평준화, 수도권 교통 개선만 성공해도 지금 상황보다는 나아진다고 본다.”

-정부가 현재 부동산이 급등하는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한쪽의 문제가 터지면 복합 처방을 하겠다고 정부가 나선다. 그러면 새 정책의 유탄을 맞는 사람이 너무 많아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늪의 연속이다. 묘수가 없다. 유일한 방법은 정책 실패를 인정한 뒤 임대사업자 정책 전환부터 시작해 하나둘씩 사회적으로 대타협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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