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어학도 뒤처지지 않는데… 지방대졸·여성이라는 이유로 고통”

2014.01.03 06:00 입력 2014.01.03 06:23 수정
김지원·윤희일·천영준 기자

차별 경험자들의 하소연

■ 지방 ㄱ대 경영학과 ㄴ씨(25·여)

다음달이면 6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다. 직장은 아직 잡지 못했다. 작년에 서울 소재 중견기업에 원서를 냈다가 높은 취업문을 실감했다. 대부분의 원서가 서류전형도 통과하지 못했다. 서류전형에서 낙방할 때 처음엔 단지 ‘운이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 학교 성적도 괜찮고 어학성적도 뒤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자 지방대 출신, 여자인 처지가 느껴졌다.

두 가지가 겹치는 내가 서울의 중견기업 이상에 취직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서류전형부터 ‘필터링’당하는 설움이 맘에 가득 차 있다. 학교 친구들도 기업 취업보다는 시험으로 직원을 뽑는 공무원이나 공기업 쪽으로 많이 눈을 돌리고 있다.

취업 준비생들이 한해가 마무리되는 12월의 밤에 서울 도심의 빌딩에서 불야성을 이룬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불 켜진 빌딩 속에서 일하고픈 맘이 크지만 직장을 잡지 못하고 한 해가 저물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취업 준비생들이 한해가 마무리되는 12월의 밤에 서울 도심의 빌딩에서 불야성을 이룬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불 켜진 빌딩 속에서 일하고픈 맘이 크지만 직장을 잡지 못하고 한 해가 저물고 있다. | 강윤중 기자

■ 경기 ㄷ대 식품가공학과 ㄹ씨(28)

작년 8월에 졸업했다. 숱한 ‘취업 낙방’ 끝에 맘을 바꿨다. 어학연수 때 아르바이트했던 호주의 한국인 식당에 요리사로 취직하기로 했다. 내 학벌과 스펙으론 한국에서 ‘괜찮은’ 일자리에 취직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년간 어학연수를 했던 호주로 되돌아가 식당일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호주에선 최저시급이 1만6000원 정도이므로 영어공부를 좀 더 해서 영주권을 획득하는 것이 새해 목표다. 내가 다닌 학과는 한 학년에 30명 정도인데 그중에 청정원·CJ·풀무원 등 대기업에 적성을 살려 가는 사람은 2~3명뿐이다. 나머지는 중소기업·하청업체에 취직하거나 학벌을 높이려 대학원에 가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직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 서울의 ㅁ대 경영학과 ㅂ씨(27)

내가 다닌 학교는 중위권이다. 스스로 ‘그리 나쁜 학벌은 아니다’라고 생각하지만 작년 8월 졸업 후 1년째 취직 준비를 하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2012년 하반기부터 원서를 넣기 시작했는데 아직까지 면접에 가본 적도 손에 꼽을 정도다. 조금 더 눈을 낮추면 하나쯤 합격할 것 같기도 하지만 아직까진 기대치를 낮추기가 쉽지 않다. 최근 삼성 등 대기업에서 ‘학벌을 보지 않는 전형’을 실시하지만 결국 학벌을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학벌을 실제로 보진 않지만 다양한 해외여행 경험이나 고급 인턴 등의 스펙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애초 그런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학벌과 경제적 배경이 되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올 상반기 채용시즌까지 토익 점수를 800점대 중반으로 올리는 것이 목표다.

■ 지방 ㅅ대 영문학과 ㅇ씨(24·여)

졸업을 앞두고 있다. 취업 과정에서 ‘지방대’와 ‘여성’이라는 이름의 차별이나 장벽이 노골적이진 않지만 엄연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겉으론 능력만 본다고 하지만 최종합격자를 보면 남성과 서울 소재 대학 출신의 비율이 훨씬 높다. 친구 중에서는 취업원서를 쓸 때 서울의 친척 주소를 현주소로 쓰는 경우까지 있다. 아니면 아예 서울에 방을 얻어놓고 ‘취업 전선’에 몸을 던진 친구도 있다. 비록 지방대학을 나왔지만 서울에 ‘속한’ 것처럼 보이고 싶은 심리 때문이다. 지금은 취업하는 것을 포기하고 학원에서 임시직 영어강사를 하며 돈을 모으고 있다. 구체적인 향후 계획은 없지만, 1년 정도 돈을 모은 뒤 성별이나 학벌에 대한 차별을 체감하지 않아도 되는 영어권 국가로 유학을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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