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보기 힘들어진 ‘중랑천·안양천 철새보호구역’서 서울시가 벌인 일은…

2023.02.20 19:09 입력 2023.02.20 19:27 수정

서울 중랑천·안양천서 시민들 조류 조사해보니

철새보호구역에서조차 철새들 매년 급감

서울시·자치구가 불필요한 공사 벌인 탓이지만

서울시는 하천 난개발 30곳 하천에 확대 예정

서울 철새 보호구역 시민조사단 소속 환경단체 ‘중랑천사람들’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말까지 조사 과정에서 관찰한 참매. 북부환경정의 중랑천사람들 제공

서울 철새 보호구역 시민조사단 소속 환경단체 ‘중랑천사람들’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말까지 조사 과정에서 관찰한 참매. 북부환경정의 중랑천사람들 제공

“원앙이 안 보여요.”

“강 건너편 기슭에 붙어있네요. 갈대를 다 베어버리니까 숨을 곳이 없어서인 것 같아요.”

지난해 12월부터 이달 초까지 서울 중랑천 일대에서 환경단체, 시민들이 벌인 조류 조사에서 참가자 다수가 공통적으로 입에 담았던 말이 있다. 지난해 12월 10일과 19일 경향신문이 조사에 동행했을 때도 여러 차례 참가자들로부터 들었던 이 말은 “새들이 정말 많이 줄었어요. 천변을 다 파헤치고, 공사를 벌인 탓인 것 같아요”라는 얘기였다.

서울 철새보호구역 시민조사단에 참여한 시민들이 두 달여 동안 서울 중랑천, 안양천 일대의 철새보호구역을 조사한 결과 관측된 새의 개체 수가 전년보다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와 자치구들이 하천환경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앞다퉈 벌이고 있는 개발사업이 철새보호구역에서 철새를 쫓아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환경연합은 20일 오후 온라인으로 ‘서울철새보호구역 시민조사단 결과 공유회’를 열고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중랑천, 안양천에서는 지난해 12월 초부터 올해 2월 초까지 약 2개월간 각각 8회, 9회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에는 총 61명이 참여했다. 서울환경연합은 시민과학 형태의 조류 조사를 해마다 겨울철에 진행하고 있다. 시민과학은 시민들이 전문가와 협업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과학적인 성과를 만들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서울 중랑천에서 관찰된 조류는 총 58종, 2311개체였다. 지난해에는 같은 구간에서 53종, 4644개체가 관찰된 것에 비해 종수는 소폭 늘었지만, 개체 수가 절반 미만으로 줄었다. 특히, 천연기념물 원앙은 1061개체에서 270개체로, 민물가마우지는 223개체에서 75개체로 급감했다. 환경단체 북부환경정의 중랑천사람들 이정숙 대표는 이날 보고회에서 “원앙이 지난해보다 4분의 1로 줄어든 것은 중랑천 인근 풀을 다 깎으며 숨을 곳이 없었던 것 때문으로 보인다”며 “철새보호구역 근처에 그네 등 시설물이 추가로 설치되는 등 인위적인 교란이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중랑천에서 원앙이 많이 머물던 곳에 풀을 깎으며 숨을 곳이 사라졌다. 북부환경정의 중랑천사람들 제공

중랑천에서 원앙이 많이 머물던 곳에 풀을 깎으며 숨을 곳이 사라졌다. 북부환경정의 중랑천사람들 제공

중랑천에서 가장 많이 관찰된 새는 물닭이었다. 그 밖에 원앙, 청둥오리, 참새 등이 뒤를 이었다. 법정 보호종으로는 천연기념물 원앙, 황조롱이, 참매, 새매와 멸종위기 야생생물 흰꼬리수리가 조사단의 눈에 띄었다. 이정숙 대표는 “뒷부리장다리물떼새도 관찰됐는데, 서울에서 처음 관찰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서울 철새 보호구역 시민조사단 소속 환경단체 ‘중랑천사람들’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말까지 조사 과정에서 관찰한 오색딱따구리. 북부환경정의 중랑천사람들 제공

서울 철새 보호구역 시민조사단 소속 환경단체 ‘중랑천사람들’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말까지 조사 과정에서 관찰한 오색딱따구리. 북부환경정의 중랑천사람들 제공

서울 철새 보호구역 시민조사단 소속 환경단체 ‘중랑천사람들’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말까지 조사 과정에서 관찰한 뒷부리장다리물떼새. 서울에서 처음 관찰된 기록으로 추정된다. 북부환경정의 중랑천사람들 제공

서울 철새 보호구역 시민조사단 소속 환경단체 ‘중랑천사람들’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말까지 조사 과정에서 관찰한 뒷부리장다리물떼새. 서울에서 처음 관찰된 기록으로 추정된다. 북부환경정의 중랑천사람들 제공

서울 안양천에서는 총 38종 965개체가 관찰됐다. 지난해 40종 1593개체가 관찰된 것에 비해 종 수, 개체 수 모두 줄어들었다. 이 중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물닭 등 수면성 오리류가 우점종을 차지했고, 흰죽지 등 잠수성 오리류도 많이 늘어났다. 조사를 진행한 서울대 야생조류연구회 소속 박정우씨는 “흰죽지는 수심이 깊은 곳에서 주로 나타나는 종인 만큼, 안양천의 수중 환경이 변화한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고 말했다.

안양천에서는 ‘홍머리오리’가 한 무리의 개체 수, 총 개체 수 모두 크게 줄었다. 2020년 조사에서 21마리가 가장 큰 무리로 관찰됐던 홍머리오리는 이번 조사에서는 가장 큰 무리가 3마리 밖에 되지 않았다. 개체 수를 중복으로 셌을 때도 2020년에는 69마리였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8마리에 불과했다. 박정우씨는 “이번 조사에서는 물새가 소폭 줄어들었다”며 “2019년 이전에 새가 많이 모여 있었던 오목교 부근의 도래 개체 수는 양천구가 안양천의 호안 블록을 정비한 이후에도 회복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곳곳에서 ‘새가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더 많은 지역에서 조사가 이뤄져, 전체적인 개체군 분포 맥락도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랑천과 안양천은 일부가 철새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는 하천으로 서울 도심을 찾는 겨울 철새들의 서식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서울시와 자치구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불필요한 공사를 진행하는 탓에 이들 하천을 찾는 철새들의 수는 최근 수년 사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처럼 철새보호구역에서조차 철새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서울시는 서울 내 하천 난개발을 더 심화시킬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20일 중랑천과 안양천을 포함한 하천 30곳에 노천카페, 수변테라스, 야경용 조명 등 필요성이 높지 않은데 하천 환경을 악화시킬 우려가 높은 시설들을 대거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서울시가 하천의 생태적 가치는 도외시한 채 수십년 전 개발만능주의 시대와 같은 행정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철새 보호구역 시민조사단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 초까지 조사 과정에서 관찰한 홍머리오리. 서울철새보호구역 시민조사단 오윤애씨 제공.

서울 철새 보호구역 시민조사단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 초까지 조사 과정에서 관찰한 홍머리오리. 서울철새보호구역 시민조사단 오윤애씨 제공.

박정우씨는 “안양천의 철새보호구역에서는 호안블록 공사 이후 물새가 돌아오고 있지 않고, 변화된 패턴이 유지되고 있다”며 “1.1㎞에 불과한 철새보호구역을 변화한 물새 도래 현황을 반영해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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