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는 후세인 제거됐어도 인권 되레 악화

2012.11.14 22:10
특별취재팀 전병역·손제민·송윤경·심혜리 기자

버마, 국제적 압력·민주화 세력 호응 속 변화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에 의해 각각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목된 이라크와 버마의 사례는 인권 개선과 관련해 여러모로 대비된다.

이라크는 2003년 3월 미국의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이 제거되는 ‘급변사태’가 일어났다. 부시 행정부가 지목한 인권 유린의 원흉이 제거됐으니 이라크의 인권 상황이 개선됐을까.

현실은 정반대다. 2007년 9월 발간된 ‘이라크 보안군에 대한 독립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침공 이전인 2003년에 19%였던 어린이 영양실조는 2007년 28%로 증가했다. 1980년대까지 중동에서 가장 선진적이었던 의료체계는 전쟁 중 병원 설비가 대부분 파괴돼 의료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2003년 이라크인의 50%가 상하수도 시설을 이용했지만, 2007년에는 30%로 떨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치안이다. 사제폭발물 수는 더 증가했고 지난해 12월 미군의 완전 철수 뒤에도 폭탄테러는 계속되고 있다. 이라크는 2003년 5월 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한국 등 거의 모든 나라에서 여행금지국으로 지정된 상태다. 독재자는 사라졌지만 이라크는 더 사람답게 살 수 없는 환경이 됐다.

반면 버마는 군부독재가 오래 이어진 끝에 최근 들어 점진적으로 인권이 개선된 경우다.

버마는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동남아 국가들 중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았지만 지난 50여년간 군부독재가 이어지며 동남아 최빈국, 인권 유린국으로 전락했다. 야당과 민주화 인사에 대한 탄압이 자행돼 올 초까지도 2000명에 가까운 양심수가 투옥돼 있었다. 1991년 이후 유엔은 해마다 규탄결의안을 채택했고, 유럽연합, 미국이 경제제재를 실시했다.

버마 군부는 아웅산 수치라는 상징적 야당 지도자의 활동과 국제사회의 압력 아래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군부는 2003년 민주화 로드맵을 내놨다. 군부가 기득권을 내려놓는 과정은 더뎠다. 버마는 2006년 아세안 의장국 순번이 왔을 때 서방의 압력 때문에 의장국을 포기해야 했다. 서방은 버마가 의장국을 맡을 경우 아세안과의 교류를 거부하겠다고 공언해 아세안도 압박에 동참했다.

서방의 압박과 내부 민주화 세력의 호응 끝에 버마는 결국 2010년 11월 총선을 치렀고, 아웅산 수치는 가택연금에서 풀려났다. 지난 4월 보궐선거도 대체로 민주적으로 치러졌다. 이어 힐러리 클린턴이 미 국무장관으로서 57년 만에 버마를 방문하면서 국제사회에 복귀하고 있다. 버마는 내년에 아세안 의장국을 맡게 된다.

이재현 외교안보연구원 객원교수는 버마의 변화 원인으로 약 50년간 독재를 이어온 군부의 피로감, 테인 세인 대통령과 군부를 책임진 50대 장교들의 온건한 성향, 민주화 세력의 노력 등을 꼽았다. 버마 군부는 경제제재 상황에서 과도하게 커진 대중국 의존도를 벗어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정치적 자유화를 통해 서방국가를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라크나 버마와 정치·사회체제나 역사적 경험은 다르지만 북한의 인권문제 해결이 어떤 경로를 밟아야 할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특별취재팀 전병역·손제민(정치부), 송윤경(사회부), 심혜리(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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