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4) 인권 개선은 어떻게 이뤄지나

2012.11.14 22:13 입력 2012.11.14 23:28 수정
특별취재팀 전병역·손제민·송윤경·심혜리 기자

진보의 ‘남북 협력 유지’ 보수의 ‘인권 의제화’… 장점 끌어안기 필요

이제 북한 인권이 열악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그러나 북한 인권 개선 방식에서는 이견이 많다. 진보·보수 사이, 또 진보 진영 안에서도 생각들이 엇갈린다. 경향신문은 합리적으로 평가받는 국내 북한 전문가 가운데 보수 성향 인사 5명, 진보 성향 인사 6명에게 선택형 및 서술형 설문조사를 실시해 북한 인권상황 인식과 개선방식, 실질적인 해법 등을 물었다. 북한 인권 개선의 실질적 대안으로 13개 예시항목을 제시하고 이 가운데 5개를 고르게 해 복수 응답이 가능하도록 했다.

▲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모두 북한 인권 개선에 기여 못해
남북 신뢰구축·평화정착은 진보와 보수, 다함께 풀어야

■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보수 성향 전문가 대다수가 정치범 수용소나 의사표현·집회결사의 자유 억압을 꼽았다. 진보 전문가는 6명 모두 식량부족 등 생존권 위협을 최우선 해결과제로 지목했다.

보수 인사 3명과 진보 인사 1명이 북한 인권이 개선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진보의 소극적 태도를 꼽았다. 국민과 정부의 소극성과 무관심 때문에 북한 인권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보수 전문가도 있었다. 진보 인사 2명은 북한 당국에 책임을 물었다. 이 밖에 개혁·개방 유도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거나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책임이 있다고 꼽은 진보 전문가도 있었다.

설문에 응한 진보 전문가는 “인권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북한 내부 근본 원인에 대한 분석 없이 비난하거나 압박했기 때문에 대화도 못하고 (인권에 대한) ‘공격과 방어’의 악순환만 되풀이했다”고 지적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가운데 어느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 인권 개선에 도움이 됐느냐는 물음에 10명이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보수 성향인 나머지 전문가 1명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라고 답했다. 또 진보 전문가 6명 가운데 4명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유화책’을 꼽았고, 나머지 1명은 “(정권별로) 장단점이 있지만 굳이 하나를 지목하라면 이명박 정부가 약간 더 기여했다”고 말했다.

북한 지원의 조건을 묻자 보수 인사 4명은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 보수 전문가는 “정규적인 대북지원 프로그램을 만들되, 감시 조건을 북한이 받아들일 땐 언제든지 지원을 하는 시스템을 운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른 보수 전문가는 정치범 수용소 폐지 등 인권 개선을 조건으로 북한 지원을 하자고 말했다.북한 지원 물자의 군대·당간부 전용 위험 때문에 지원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보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없었다.

[북한 인권, 진보와 보수를 넘어]2부 (4) 인권 개선은 어떻게 이뤄지나

■ 북 인권에 소홀한 진보, 북 인권을 정치화한 보수

진보 인사들은 모두 그동안 진보 진영이 북한의 정치적 자유권 문제제기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인정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생존권을 비롯한 사회권이 더 시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북한 정권을 자극해 악영향을 줄 수 있어서”라거나 “체제의 이질성 등으로 현실적 개입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는 답도 나왔다.

보수 전문가 5명 가운데 4명은 ‘북한 정권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이 진보 진영의 문제라고 꼽았다. 진보 인사들은 북한 인권문제 제기가 내정간섭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2명만 ‘그렇다’고 답했고 4명은 ‘아니다’라고 했다. 진보 인사 중 4명은 북한 인권에 대한 진보의 소극성이 진영 내 분파(NL·PD) 갈등 때문은 아니라고 밝혔다.

진보 전문가 6명 모두 진보 진영이 북한 인권문제 제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보수 전문가 4명은 보수 진영이 북한 인권과 관련해 가장 기여한 것으로 ‘북한 인권을 국내외에 이슈화한 것’을 꼽았다.

진보 전문가들은 보수 진영의 북한 인권 운동방식의 문제로 ‘정권 붕괴를 전제로 한 인권운동’이라거나 ‘지나친 정치 이슈화’를 들었다. 보수 측도 인도적 지원 소홀과 대북전단 뿌리기 등 북한 정권을 자극하는 방식의 보수 진영의 인권운동을 문제라고 인정했다.

보수 인사들은 모두 “북한 정권 붕괴가 인권문제를 해결할 근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다만 보수 성향 전문가는 “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체제하에서 북한 인권을 점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진정한 북한 인권운동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북한 인권, 진보와 보수를 넘어]2부 (4) 인권 개선은 어떻게 이뤄지나

■ 보수가 진보에게, 진보가 보수에게

한 보수 전문가는 “진보의 운동은 대체로 일반 국민 삶과 밀접하다. (북한 인권문제를) 인류 보편의 가치로 인식하고 북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해야 한다”고 진보 진영에 주문했다. 다른 보수 전문가도 “(진보 진영이 그동안) 민간 차원의 남북 접촉을 유지해온 점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수 전문가는 “진보 진영은 북한 인권운동과 관련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본다. 관심을 갖는 것뿐 아니라 행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북한 인권운동은 진보가 보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이므로 적극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진보 전문가는 보수에게 “북한 인권을 빌미로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정치적 자유권만을 고집하는 독단에 빠져 진보의 시각을 ‘종북’으로 매도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다른 진보 전문가는 “보수가 북한 인권 개선에 관한 국내외 여론을 환기시킨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북한 인권문제를) 정치 이슈화와 북한 정권 타도로 한번에 해결하겠다는 방법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치운동과 인권운동을 혼동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는 “중국도 경제가 좋아지면서 생존권 문제가 해결되자 1991년부터 스스로 인권백서를 낼 정도로 정치적 자유권이 신장된 사실을 보수도 알아야 한다”며 “보수의 자기만족적 방식으로는 인권 대화도, 인권 개선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진보 전문가는 “보수의 적극적인 자세는 긍정적이지만 북한에 대한 적대감으로는 실질적 인권 개선을 이루기 어렵다”며 “정부와 민간의 역할분담 등 다차원적 방안을 개발하고, 북한의 인권 역량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북한 인권 설문 응답자들

진보 진영 : 김근식 경남대 교수, 김수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문정인 연세대 교수,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 황재옥 평화협력원 인권평화센터 소장

보수 진영 :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김태진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 대표,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하태경 새누리당 국회의원

■ 특별취재팀 전병역·손제민(정치부), 송윤경(사회부), 심혜리(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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