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적 압력보다 ‘선의의 개입’으로 북한이 외부세계 시선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야

2012.11.15 22:16
특별취재팀 전병역·손제민·송윤경·심혜리 기자

폐쇄적 북한 체제로는 한계… 결국 북 당국 결심이 관건

북한 인권을 개선하는 현실적인 방편은 북한 당국이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인권 유린 당사자이면서도 결국 개선 당사자여야 하는 이중성을 가진 게 현실”(김수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기 때문이다. 인권을 개선하는 게 정치·경제적으로 더 유익하다는 것을 북한 당국에 일깨우는 방식이다. 다만 이 접근법은 폐쇄적 북한 체제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전제 아래서나 가능하다.

1990년대 후반의 ‘고난의 행군’ 뒤 북한 당국은 체제 생존을 위해 개혁·개방을 조금씩 추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9년 개정한 사회주의헌법에 처음 ‘인권’이라는 단어를 넣은 것은 상징적인 조치다. 제8조에 “국가는 착취와 압박에서 해방되어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된 노동자, 농민, 군인, 근로인테리를 비롯한 근로인민의 이익을 옹호하며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한다”고 명시했다.

앞서 북한은 1981년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가입했고, 1991년 아동권리협약, 2001년 여성차별철폐협약까지 유엔의 4대 인권규약에 가입했다. 장애자보호법(2003년)에 이어 여성권리보장법(2010년), 아동권리보장법(2010년)을 만들어 인권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또 북한은 2004년 5월 형사소송법을 전면 개정하고 이듬해 두 차례 부분 개정했다. 피심자(피의자), 피소자(피고인) 구금 기간을 줄이고, 기소 및 재판을 위한 구류기간도 명시했다. 체포영장제도를 명시하고, 강압이나 유도에 의한 진술은 증거로 쓸 수 없게 했다. 탈북자 처벌규정도 바꿔 단순생계형 불법월경자는 처벌을 가볍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실제로 어느 정도 지켜지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탈북자 문제와 유엔 인권결의안이 나오자 북한이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공개처형의 경우도 외부의 압력보다는 북한 스스로 효과가 의문스럽고 외부의 비난만 자초한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선의의 개입’이 더 먹혀들 수 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직접 요구보다는 국제사회를 우회하는 길이 효과적일 수 있다. 4년 만인 내년에 북한 차례가 되는 유엔인권이사회의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도 기회로 삼을 만하다.

북한은 2009년 12월 처음으로 보편적 정례인권검토 보고서를 제출하며 회원국들이 권고한 공개처형 금지, 강제수용소 폐지, 북한인권특별보고관 방북 허용 등 50개 항목은 거부했다. 조사단을 받아들이지 않고 내부 입장만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유엔이 정례인권검토 보고서를 점검토록 하는 것부터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 북한이 인권문제를 인도적 지원과 국제관계 개선의 카드로 활용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토록 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이 북한과 2001년 6월 처음 인권대화를 가진 뒤 유엔 총회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을 주도하자 인권대화는 끊어졌다. 그러나 이후 2007년 경제지원을 받기 위해 다시 만나 2008, 2009년 ‘정치대화’를 나눴다. 차기 정부는 남북관계 회복 시 대북 지원과 인권대화를 병행한 유럽연합식 접근법을 참고할 만하다.

체제 특성을 감안할 때 법 제도를 갖추는 것만으로 인권 개선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북한이 국제사회와 접촉을 늘리며 외부세계의 시선에 신경쓰도록 하는 관계를 정립하는 게 중요하다. 김수암 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의 전략과 정책 변화를 유도하고, 시민사회가 형성되도록 지원하는 접근방식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인권은 밖에서 강제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북한 인권이 자생적으로 개선되려면 남북한 신뢰로 좋은 관계를 맺고, 중산층이 생겨나야 하는 장기적인 과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말(북한)을 물가에 끌고 가더라도 억지로 물(인권 개선)을 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동당 간부 출신이지만 가족을 먹여살리려고 두만강을 건넌 50대 여성이 지난 8월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에 “김정은(노동당 제1비서)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라고 한 말에 ‘현실적 한계와 가능성’이 함축돼 있다.

■ 특별취재팀 전병역·손제민(정치부), 송윤경(사회부), 심혜리(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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