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두뇌’ 연상 큰 머리에 ‘먹물’깨나 들었다고

2017.02.15 21:01 입력 2017.02.15 21:08 수정
황선도 한국수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외계인은 왜 문어를 닮았나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기억할 것이다. 2010년 여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주요 경기 승리팀을 모조리 적중시킨 점쟁이가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파울’이란 이름의 문어였다. 파울은 결승에서 스페인의 우승은 물론, 3-4위전에서 독일의 승리를 예견하는 족집게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수족관에 들어간 파울은 스페인과 네덜란드 국기가 각각 그려진 2개의 유리상자 중에 스페인 상자 안으로 들어가 홍합을 취하는 것으로 우승을 점쳤다. 이 시점에서 과학자인 내가 어떻게 문어가 앞을 내다볼 수 있는가 분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자연계에서 문어의 행동을 보면, 생각보다 영리하다는 것에 나는 동의한다.

문어는 위협을 느끼게 되면 수관으로 물을 분사해 재빨리 도망가면서 동시에 먹물을 뿜는다. 이와 같이 문어가 먹물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글깨나 하는 물고기로 여겨져 ‘글월 문(文)’자를 붙인 ‘문어(文魚)’라고 높여 불렀다. 어느 카툰에서 민머리에 코를 길게 뽑아내고 8개의 다리를 쫙 편 문어가 항상 식자층으로 등장하였던 기억이 있다. 어릴 적 우주에 관한 공상과학영화를 보면, E.T. 중에 반드시 문어를 닮은 외계인이 출현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머리에 다리가 붙은 두족류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기괴한 모습일뿐더러 글을 깨친 문어의 우수한 두뇌를 인정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해가 간다.

문어의 진화는 슬픔과 승리의 역사이다. 고생대에 출현해 중생대에 번성했던 암모나이트는 나선형의 딱딱한 껍데기를 가진 연체동물이다. 그러나 등뼈를 가지고 빠르게 헤엄치는 척추동물이 나타나면서 유영력이 떨어지는 이들은 과감한 변신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무거운 갑옷을 벗고 수관(水管)으로 물을 내뿜어 추진할 수 있게 변하였다. 그러나 껍질이 없어짐에 따라 방어에는 몹시 취약하였고, 그 대안으로 바닷속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위장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문어의 피부는 크로마토포레스(chromatophores)라는 세포로 이뤄져 그 안에 적(赤), 흑(黑), 황(黃) 색소주머니를 가지고 있는데, 신경자극을 통해 이들 색소를 적절히 배합해 몸 표면을 자신이 원하는 색으로 순식간에 바꿀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해파리, 바다뱀, 불가사리 등 다른 해양동물 모양으로 변하기도 한다. 심지어 빈 조가비를 들고 다니면서 숨기도 한다. 이와 같은 위장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뿐 아니라 사냥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수족관안의 참문어.

수족관안의 참문어.

최근 문어목(Order Octopoda) 문어과(Family Octopodidae)의 분류학적 고찰에 변화가 생겼다. 1999년 국립수산진흥원(지금의 국립수산과학원)에서 발행한 <한국 연근해 유용연체동물 도감>과 2006년 아카데미서적 발행 <한국해양무척추동물도감>에서는 주꾸미(Octopus ocellstus), 낙지(Octopus minor), 왜문어(Octopus vulgaris), 문어(Octopus dofleini 또는 Parooctopus dofleini)가 한 속(屬·Genus)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2016년 패류학회에서 발행한 <한국의 연체동물>에는 문어과(Family Octopodidae)에 3개의 속이 나뉘어져 있다. 주꾸미속(Genus Amphioctopus)에 주꾸미(Amphioctopus aegina), 문어속(Genus Octopus)에 낙지(Octopus minor)와 참문어(Octopus vulgaris), 그리고 진문어속(Genus Enteroctopus)에 문어(Enteroctopus dofleini)로 분류하였다. 속명의 분리뿐만 아니라 ‘왜문어’를 ‘참문어’로 개명하였다.

문어를 영어권에서는 일반적으로 옥토퍼스(Octopus)라 부르는데, 옥토(Octo 혹은 Octa)는 숫자 8을 의미하고, 퍼스(Pus)는 발(足)이라는 뜻으로 옥토퍼스(Octopus)는 8개의 발을 가진 동물을 가리킨다.

문어는 우리나라 동해와 남해 그리고 일본, 베링해, 알래스카 등의 먼바다 수중 암초나 섬 주변 암반 조하대(간조 시에도 물이 빠지지 않고 항상 물속에 잠겨 있는 부분)에 주로 산다. 문어는 크기가 3m에 달하는 대형종으로 외투막은 길이가 폭보다 약간 긴 난원형이다. 몸 표피는 부드럽고 늘어나 있어 주름이 잡히며, 작은 유두(乳頭)가 많다. 문어는 몸통(胴), 머리(頭), 다리 또는 팔(腕)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다리가 붙어 있는 가운데 부분이 눈과 입이 있는 머리이고, 대부분 사람들이 머리라고 상상하고 있는 둥근 부분이 몸통으로 내장이 들어 있다. 다리는 8개인데, 양쪽 제1다리가 가장 길고 제2, 3, 4 순으로 짧아진다. 수컷의 오른쪽 세 번째 다리 끝부분에는 흡반(또는 빨판)이 없고 도랑이 있는데, 이것이 교접완(hectocotylus)으로 성기 역할을 한다.

주렁주렁 매달린 알을 지키고 있는 문어.

주렁주렁 매달린 알을 지키고 있는 문어.

문어는 가을(11~12월)에 교미하여, 봄~여름(4~6월)에 해안가 얕은 곳 암초지대에서 산란한다. 문어가 짝짓기 할 때는 수컷이 교접완을 뻗어 정협을 암놈의 수란관에 넣는다. 교미를 한 수놈은 이내 기력이 쇠진해져 깊은 수심으로 돌아가 죽는다. 암놈은 교미 후 서너 주가 지나면 수만 개의 알을 낳아 암초나 바위굴 천장에 덩어리로 붙여서 주렁주렁 늘어뜨린다. 암놈은 알이 깰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수개월간 주위에 머물며 정성껏 알을 돌본다. 그러나 일단 알이 부화되어 새끼들이 태어나면 암놈은 힘과 아름다움을 잃고 죽는다. 1년생 문어는 체중 1㎏ 미만이고, 3년이 되면 10㎏ 이상으로 성장하며 수명은 3~4년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문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문어(章魚): 큰 놈은 길이가 8~9자, 머리는 둥글고, 머리 밑에 어깨뼈처럼 8개의 긴 다리가 나와 있다. 다리 밑 한쪽에는 국화꽃과 같은 단화(團花)가 서로 맞붙어서 줄을 이루고 있다. 이것으로써 물체에 흡착한다. 일단 물체에 붙고 나면 그 몸이 끊어져도 떨어지지 않는다. 항상 석굴(石窟)에 엎드려 있으면서, 그 국화 같은 발굽을 사용하여 전진한다. 8개의 다리 복판에는 1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것이 입이다. 입에는 이빨이 2개 있다. 이빨은 매의 부리와 같이 매우 단단하고 강하다. 물에서 나와도 죽지 않으나, 그 이빨을 빼면 곧 죽는다. 배와 장(腸)이 거꾸로 머릿속에 있고, 눈은 그 목에 있다. 빛깔은 홍백색으로서 그 껍질의 막을 벗기면 눈같이 희다. 국제(菊蹄·국화 모양의 발굽)는 붉은 빛깔이다.’ 놀랍다. 이때 이미 배-몸통-다리의 구조를 알았을 뿐 아니라, 수심 깊은 굴에 사는 문어의 습성까지 파악했다니 말이다. 실생활의 유익을 목표로 관찰하고 실증하는 학문인 ‘실학(實學)’은 곧 ‘과학(科學)’이었다.

<전어지>에는 ‘보통 문어를 잡는 데는 노끈으로 단지를 옭아매어 물속에 던지면 얼마 뒤에 문어가 스스로 단지 속에 들어가는데, 단지가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단지 1개에 한 마리가 들어간다’고 문어 잡는 법을 소개하였다. 이 방법은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문어단지’라는 어구어법으로 문어가 은신처에 들어가 상주하려는 습성을 이용하였다. 현대에는 연승, 통발 등을 사용하여 더 많이 잡는 쪽으로 발달하였다. 문어는 9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 겨울이 제철이다.

문어를 잘 먹는 사람들은 한국, 일본, 중국 등의 동양인이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전통적으로 수산물을 즐기는 서구인조차 문어를 잘 먹지 않는다. 성서의 가르침에 따른 것으로 문어를 데블피시(devil fish)라고 부르며 악마의 고기로 혐오하기까지 한다. 구약성서에 ‘비늘이나 지느러미가 없는 물고기는 먹어서는 안된다’고 기록되어 있어 식용으로 기피하는 것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로 연체동물의 성적 취향에서 연유한다고도 한다. 문어나 오징어 같은 두족류의 수컷이 미성숙 암컷과 교미를 하는 생물학적 특성을 음흉하다고 보는 것이다. 음욕이 나면 수컷은 온몸에 영롱한 오색이 돋아나 한껏 아름다움을 과시하며 성숙하지 않은 순박한 암컷을 유인하여 교미를 한다. 이런 이유로 서양인들은 문어를 먹지 않을뿐더러 영화에서는 문어가 요괴로 그려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람들은 “문어 발, 오징어 다리”라고 한다. 왜 문어는 ‘발’이고, 오징어는 ‘다리’일까? 어원적으로 발은 동사 ‘밟다’, 다리는 ‘달리다’와 연관된 듯하다. 문어는 물속에서 실제 걸음걸이를 하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일까?

대기업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사업을 건드리는 것을 문어에 빗대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문어가 폐쇄된 공간에서 자기 발을 뜯어먹고 버티는 생태 특성을 알고 나면 문어발식 사업 확장 역시 결국은 자기 살 뜯어먹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니 씁쓸해진다.

2010년 일본 고베의 어느 작은 지역에 지인을 만나러 갔을 때, 이 도시가 문어를 캐릭터로 해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일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고베는 내해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인근에서 문어를 대상으로 하는 어업이 있으리라는 추측이다. 그래서 문어 형상의 간판을 단 어시장(魚市場)이 있고, 심지어는 버스노선을 문어발로 그린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문어를 넣어 구운 요리인 다코야키(たこやき)는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시내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수산물 하나로 도시의 이미지를 만들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일본의 수산문화가 부러울 따름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관혼상제에는 문어를 올린다. 그런데, 이는 동해안과 남해 동부에서나 해당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남해 서부와 서해안에서는 잘 먹지 않고 제상에도 올리지 않는다. 사실 이 해역에서는 문어가 잘 나지 않기 때문에 먹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음식은 어머니의 맛에 대한 기억 아닌가.

문어는 회로 먹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삶아먹는다. 문어와 오징어는 근육조직이 달라서 삶는 방법도 다르다. 문어는 고온에서 가열하면 육질이 질겨지므로 약한 불로 오래 끓여 부드럽게 만든다. 반면에 오징어는 끓여서는 안되고 2~3분 살짝 데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문어 숙회.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김광복 전문위원 제공

문어 숙회.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김광복 전문위원 제공

문어숙회(熟膾)에 대한 나의 첫 경험은 부산 대연동 대남포차의 추억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부산에서 근무할 때 사회에서 만난 유일한 친구와 함께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길가에 허름한 선술집이었다. 머리를 숙여 문 열고 들어서니 작은 공간에 특유의 시끄러운 경상도 사투리가 어지러웠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니,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문어숙회와 소주 한 병을 내왔다. 처음 본 숙회란 놈을 살펴보니, 생문어를 익힌 회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나는 신기해서 연신 젓가락질을 하는데, 동석한 친구는 강소주만 마시고 있었다. 술자리를 나와서 알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문어를 먹지 못했다. 친구의 호기심을 채워주려고 말없이 함께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문어숙회에 대한 나의 추억은 고맙다.

▶필자 황선도

[전문가의 세계 - 漁! 뼈대 있는 가문, 뼈대 없는 가문] ⑤ ‘두뇌’ 연상 큰 머리에 ‘먹물’깨나 들었다고


해양학과 어류생태학을 전공했고, 수산자원생태로 이학박사가 된 토종과학자이다. 20년간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일하면서 7번이나 이사하는 등 주변인으로 살았으나, 덕분에 어느 바닷가든지 고향으로 여긴다. 지금은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으로 해양생태계 복원과 수산자원 조성을 위해 일하는 ‘물고기 박사’다. 50여편의 논문을 썼고 저서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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