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음악사…음반과 영화DVD에 소복이 쌓인 추억들

2017.12.13 21:22
엄민용 기자·남소라 온라인기자

서울음악사 외부 전경.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서울음악사 외부 전경.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서울시는 종로·을지로에 있는 전통 점포 39곳을 ‘오래가게’로 추천하고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지도를 제작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전문가의 조언과 평가는 물론 여행전문가, 문화해설사, 외국인, 대학생 등의 현장방문 평가도 진행했다. 서울시가 ‘오래가게’를 추천한 것은 ‘도시 이면에 숨어 있는 오래된 가게의 매력과 이야기를 알려 색다른 서울관광 체험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에 경향신문은 이들 39곳의 ‘오래가게’를 찾아 가게들이 만들고 품고 키워 온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 서른 한번째 가게는 ‘서울음악사’이다.

이제는 생산되지 않는 테이프도 빼곡하게 진열돼 있는 서울음악사.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이제는 생산되지 않는 테이프도 빼곡하게 진열돼 있는 서울음악사.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탁 트인 시청광장 아래 숨겨진 깔끔한 지하상가를 거닐다 보면 이제는 길거리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음반점을 발견할 수 있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 빛바랜 음악CD와 테이프가 자그마한 매장을 빼곡하게 메우고 손님을 끌어들인다.

딱히 필요한 게 없으면서도 왠지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 보게 되는 ‘서울음악사’는 1971년 지하상가가 생길 무렵부터 자리를 지킨 ‘지하상가 토박이’다. 이곳의 주인장 송인호 사장이다. 올해로 46년째 서울음악사를 운영해 오고 있다.

베트남 참전군인인 송 사장은 당시 귀국하면서 일제 녹음기와 카세트테이프 등을 구입해 들어와 레코드 가게를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는 친구들 때문이다. 친구들이 모두 음악산업에 종사했던 것.

“레코드 가게는 친구들 덕분에 하게 됐지. 친구들이 죄다 이쪽 장사를 했거든. 그러다 보니까 나도 하게 됐어.”

우리나라 음반시장의 개막부터 현재까지 함께해 온 유일무이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송 사장은 오래전 음반소매상연합회를 조직해 유통구조의 불합리함을 지적하며 소매상인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회상에 잠겼다.

“그때는 도매상이 횡포를 부리면 우리 같은 소매상인들은 꼼짝을 할 수가 없었어. 힘이 있어 뭐가 있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지. 그래서 내가 우리끼리 뭉치자 해서 연합회를 조직해 싸웠던 거야.”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서울레코드 주인장 송인호 씨.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서울레코드 주인장 송인호 씨.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사실 송 사장은 친구들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로 대형 레코드숍을 차리려던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계획이 무산됐고, 이후 국내로 진출한 해외 기업들이 대형 레코드숍을 시작했다.

송 사장은 아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그때 그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중 귀를 솔깃하게 하는 부분은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는 ‘단골’에 대한 이야기다. 한자리에서 50년 가까이 장사를 해 오면 단골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 듯싶다. 하지만 송 사장은 “그동안 장사를 하면서 단골손님이라고 꼽을 만한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 음악적 특성 때문이다.

“음악이라는 것이 다 좋아하는 때가 있잖아. 그래서 손님들이 나이가 들면 음반을 사러 오질 않아. 그러다 보니 계속 젊은 사람들로 손님이 바뀌고 그러지. 오래된 단골은 없어.”

서울음악사 매장 전경.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서울음악사 매장 전경.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매장에 진열된 DVD.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매장에 진열된 DVD.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서울음악사를 찾는 손님들은 시간의 흐름뿐 아니라 서울의 번화가가 변화하는 것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았다. 1970년대에는 ‘서울의 중심’ 하면 시청 인근을 제일로 꼽았다. 대형 회사도 시청과 종로 인근에 많이 있었고, 그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이 오며 가며 서울음악사를 찾았다.

그러다 강남이 점점 발전하면서 여러 회사가 사옥을 그곳으로 이전을 했고, 새로 시작하는 회사들도 강남에 사무실을 얻는 것이 당연시 여겨졌다. 시청 인근의 직장인들이 대거 강남으로 이동한 것.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서울음악사를 찾는 손님들이 변하게 됐다.

송 사장은 시대가 바뀌면서 세대별로 음악을 듣는 차이가 점점 커진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어른들이 ‘신라의 달밤’을 들으면 애들도 그것을 들었어. 근데 요즘은 아냐. 어른들이 듣는 음악이랑 젊은 애들이 듣는 음악이랑 전혀 달라.”

환하게 웃는 송인호 씨.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환하게 웃는 송인호 씨.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오랜 시간 음반 소매상을 하며 직접 손님들을 만났던 송 사장이었기에 음반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를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울음악사에서는 음반뿐 아니라 영화 DVD도 함께 구비하고 있다. DVD를 ‘음악과 영화의 중간점’이라고 생각한다는 송 사장은 영화관람이 취미라면서도 이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섞여 영화를 보는 것이 영 머쓱하다고 말했다.

“괜히 눈치가 보여서…. 예전에는 같이 일하던 친구가 있어서 가게 맡겨 놓고 ‘한 판’ 때리고 왔는데 요즘은 잘 안 가.”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지낸 지 4년. 송 사장은 자신의 뒤를 이어 서울음악사를 운영할 사람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좁지만 아늑한 분위기가 있는 서울음악사 내부.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좁지만 아늑한 분위기가 있는 서울음악사 내부.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아이들은 다들 싫어해. 며느리라도 했으면 좋은데, 아이가 셋이나 있으니 힘들지. 게다가 이 일은 애정이 없으면 하기 힘들어. 이쪽 지식이 있어도 힘든데 전혀 모르던 사람이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는다고 장사가 저절로 되나?”

송 사장은 요즘 기억력이 감퇴되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송 사장은 이제는 육체적으로 점점 힘들어진다고 말하면서도 서울음악사에 대한 애정만은 변하지 않은 듯 환한 미소를 짓는다.

“아직은 여력이 있으니 가게 문은 열어야지. 그래도 아직 여기를 찾는 사람이 적지 않거든. 자네도 오가면서 자주 들러 줘.”

옛 서울시청 사옥에 마련된 서울도서관.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옛 서울시청 사옥에 마련된 서울도서관.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한편 서울음악사가 자리잡은 지하상가 바로 위에는 옛 서울시청 청사에 마련된 서울도서관이 있다. 흐른 시간만큼의 손때가 묻은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면 거대한 서가가 방문객을 맞는다. 계단 아무 곳에나 앉아 책을 집어들고 읽을 수 있는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서울도서관은 복잡한 도시에서 한숨 돌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힐링 플레이스로 안성맞춤이다.

■서울음악사는?

개업연도 : 1971년 / 주소 : 중구 을지로1가 56 / 대표재화 금액 : 음반, DVD, 카세트 테이프 1만3000원부터 / 체험 요소 : 다양한 장르 및 국적의 음반과 DVD 구매 가능 / 영업 시간 : 매일 오전 9시~오후 10시(일요일 휴무) / 주변 관광지 : 시청·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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