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원떡집…임금님 상에 오르던 ‘궁중떡’ 맛도 그만

2017.12.20 17:54
엄민용 기자·남소라 온라인기자

비원떡집 입구.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비원떡집 입구.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서울시는 종로·을지로에 있는 전통 점포 39곳을 ‘오래가게’로 추천하고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지도를 제작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전문가의 조언과 평가는 물론 여행전문가, 문화해설사, 외국인, 대학생 등의 현장방문 평가도 진행했다. 서울시가 ‘오래가게’를 추천한 것은 ‘도시 이면에 숨어 있는 오래된 가게의 매력과 이야기를 알려 색다른 서울관광 체험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에 경향신문은 이들 39곳의 ‘오래가게’를 찾아 가게들이 만들고 품고 키워 온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 서른일곱 번째 가게는 ‘비원떡집’이다.

비원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안상민 씨.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비원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안상민 씨.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대한민국 대표 떡집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집이 ‘비원떡집’이다. 하지만 이 집을 찾으려 했다가도, 주의 깊게 살피지 않고 안국역에서 경복궁을 향해 걷다 보면 흰 외벽에 짧은 처마가 매달린 ‘비원떡집’을 지나치기 일쑤다.

가게라면 으레 간판이 있기 마련이지만, 비원떡집은 남들 가게에는 다 있는 간판 하나 없이 손님을 기다린다. 간판 대신 외벽에 뚫린 커다란 정사각형 창문으로 비원떡집의 정성스러운 상품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유리창 너머 곱게 진열된 떡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이 가게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불친절하다는 느낌은 없다. 유리창 속 정갈한 글씨로 설명된 비원떡집의 이야기가 조금은 비밀스러운 곳으로 여행자를 끌어들인다.

비원떡집의 역사는 194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광복 이후 혼란기이자 6·25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인, ‘옛날’ 이야기다.

홍간난 할머니는 당시 조선왕조 마지막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인 한희순 상궁에게서 전통 궁중떡의 비법을 배워 비원떡집을 차렸다. 홍 할머니가 창덕궁 낙선재에서 선보인 떡을 눈여겨본 한희순 상궁이 직접 홍 할머니에게 궁중 떡 비법을 전수해 주겠다고 나선 것.

비원떡집 내부.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비원떡집 내부.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민간 음식과 달리 궁중 음식은 전문 조리사에 의해 개발되고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이어져 온 체계적인 역사를 갖고 있다. 엄격히 다뤄져 온 궁중 음식이 사대부로 전해지고, 또 서민의 밥상에 오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 비원떡집의 떡들도 그중 하나다.

임금님 상에 올라갔던 궁중떡은 만드는 방법 또한 엄격하다. 이 때문에 비원떡집은 임금님 상에 올라가는 떡을 만들 듯이 지금도 재료 손질부터 떡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100%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다 보니 모든 떡이 각기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떡이다. 게다가 인공첨가물도 전혀 들어가지 않고 천연색소만을 이용해 빛깔을 만들어 낸다. 눈이 즐겁고 입이 호강하는 떡이다.

홍 할머니가 비원떡집을 차렸을 당시에는 ‘홍 할머니네 떡집’으로도 알려졌었다. 그 무렵 할머니는 창덕궁 인근에 위치한 자신의 살림집에서 주문을 받아 떡을 만들었다. 따라서 간판을 내걸 것도 없었고, 매장이라고 할 만한 장소는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씩 퍼진 입소문 덕분에 알음알음 꾸준히 주문이 들어왔고, 홍 할머니 홀로 비원떡집을 운영하다 조카 안인철씨가 비원떡집을 이어받았다. 안인철씨는 열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떡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안인철씨의 아들 상민씨(34)가 현재의 비원떡집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안상민 씨가 떡을 진열하고 있다.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안상민 씨가 떡을 진열하고 있다.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비원떡집에서 판매하는 떡.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약식, 두텁떡, 쌍개피떡.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비원떡집에서 판매하는 떡.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약식, 두텁떡, 쌍개피떡.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안상민씨 역시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떡집을 물려받기로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장사에 뛰어들었다. 그 세월도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었다.

비원떡집의 이름 ‘비원’은 창덕궁의 비원에서 따온 이름일 것이라고 안상민씨는 말했다. 홍 할머니가 처음 비원떡집을 만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비원떡집은 간판이 없다. 아무리 입소문이 난 가게라고는 해도 간판 없이 어떻게 장사를 할 생각을 가졌느냐고 묻자 안상민씨는 빙긋 웃으며 “원래 간판이 없었는데, 굳이 달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라고 대답했다.

간판이 없어도 비원떡집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그렇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은 수십 년을 이어온 비원떡집의 역사에서 나올 듯싶다.

비원떡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시그니처 떡’은 멥쌀로 만든 ‘갖은편’과 ‘쌍개피떡’이다. 갖은편은 전통 나왕나무 시루로 쪄내 떡 표면에 페이즐리 문양 같은 화려한 무늬가 생긴다. 쌍개피떡은 멥쌀로 빚은 반죽을 절구로 치대 얇게 밀어서 마치 찹쌀로 만든 것처럼 쫄깃한 식감을 자랑한다.

비원떡집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블루리본 서베이에 수록됐다.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비원떡집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블루리본 서베이에 수록됐다.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비원떡집을 운영하는 안상민씨가 가장 좋아하는 떡은 두텁떡이다. 고운 팥고물이 묻은 떡을 한 입 베어 물면 대추의 달콤함이 입 안을 가득 메운다. 팥고물로 텁텁해진 입 안은 달콤상큼한 소를 씹으면 깔끔한 뒷맛으로 마무리된다.

과거 비원떡집에서 판매하던 떡은 10종류가 넘었지만, 안상민씨가 운영하면서 조금씩 줄여나갔다. 현재 비원떡집을 방문해 구매할 수 있는 떡은 다섯 종류다. 전화 주문으로는 더 많은 종류의 떡을 구매할 수 있지만, 안상민씨는 앞으로 떡 종류를 더 줄여 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서예요. 가게를 크게 키운다든가 종류를 더욱 다양하게 내놓을 수도 있지만, 일단은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보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큽니다.”

매장에 진열된 떡은 하나하나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떡을 고르는 즐거움을 선물한다.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매장에 진열된 떡은 하나하나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떡을 고르는 즐거움을 선물한다.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비원떡집 있는 길거리의 전경.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비원떡집 있는 길거리의 전경.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비원떡집은 그날 판매할 떡만 만들어 판다. 정식으로 공지된 폐점 시간은 ‘늦은 밤’이지만, 그날따라 떡이 날개 돋친 듯 팔리면 폐점 시간이 되지 않아도 문을 닫는다. 운이 나쁘면 비원떡집의 맛난 떡을 맛볼 수 없으므로, 만약 방문하려는 계획이 있다면 늦어도 이른 오후까지는 방문하는 편이 좋다.

한편 비원떡집은 경복궁 사거리에서 안국동 사거리로 가는 율곡로에 자리해 있다. 떡집에 들렀다가 경복궁을 둘러봐도 좋고, 인사동길을 거닐어도 좋다.

■비원떡집은?

개업연도 : 1949년 / 주소 : 종로구 율곡로 20 / 대표재화 금액 : 약식 3000원, 부꾸미 1500원, 콩찰떡 3000원 등 / 체험 요소 : 궁중 떡 구매 가능 / 영업 시간 / 매일 오전 10시~오후 6시(일요일은 예약받은 주문 떡 전달 후 영업 종료) / 주변 관광지 : 인사동 문화의 거리, 경복궁, 북촌 한옥마을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