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조영웅전’의 진융, 중원서 방황하는 보통 사람…어딘가 나와 닮은 무림고수

2018.12.01 06:00 입력 2018.12.01 06:28 수정

진융 | 1924.2.6. ~ 2018.10.30.

진융 | 1924.2.6. ~ 2018.10.30.

지질한 선인과 영악한 악인 등 다양한 인간군상 등장
동양 철학·역사·문화 녹인 비범한 성장소설 “아속공상 경지”
경험 중시 중국인 심리 표현…‘교묘한 국가주의 추구’ 지적도
‘녹정기’ 이후 절필, 1980년대 한국선 ‘해적판’으로 큰 인기

◆슈퍼히어로와 협객… 당신이 꿈꾼 영웅은

동서양 히어로물의 전설

스탠 리·진융을 추억하다


히어로물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라도 스파이더맨, 동방불패의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동서양 대중을 휘어잡은 히어로물의 전설적인 창작자들이 최근 별세했다. 스탠 리와 진융(金庸)이다.

두 사람의 삶과 창작활동엔 공통분모가 적지 않다. 각각 1922년(스탠 리), 1924년(진융) 태어나 96세, 9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들은 어린 시절 2차대전을 경험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전후의 어수선한 시기를 통과했다. 냉전으로 인한 사고와 활동의 제약도 받았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금기에 도전했고 이를 작품에 녹여냈다.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두 사람에 대해 “주류집단으로부터 억압받는 이들, 평범한 사람들을 영웅 혹은 협객으로 탄생시켰다는 점, 선악의 구도를 뛰어넘고자 노력했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꼽는다.

스탠 리는 전후 침체돼 있던 미국 만화계의 부흥을 이끌었다. 소수자와 약자, 결점이 있는 인물을 히어로로 내세웠고 악당에게도 수긍할 만한 스토리를 부여했다. 덕분에 우리는 비주류의 시선으로 주류의 세계를, 비인간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볼 수 있었다. 코믹북은 한때 하위문화(서브컬처)로 취급받았으나 그가 만들어낸 슈퍼히어로와 슈퍼빌런들은 50여년이 지난 뒤 스크린에서 대활약 중이다.

‘신필’이라 불렸던 진융은 자신을 좌절시켰던 시대의 모순을 무협소설 속에 담았다. 한때 사상개조를 강요받았던 그는 정파와 사파의 구분선을 모호하게 그렸다. 전형적인 ‘동양적 영웅’인 협객에 다양한 인간군상을 녹여냈다. 각 시대의 문화, 철학을 아로새겨 ‘아속공상의 경지’(지식인들과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탠 리와 진융 작품의 세계관과 캐릭터는 방대해 드라마·영화·게임의 콘텐츠로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영웅과 협객들을 돌아보며, 슈퍼히어로 스탠 리와 대협 진융에게 작별을 고한다. 아듀 스탠 리, 아듀 진융.


몽골 사막에서 태어난 남자아이 곽정은 아둔했다. 네 살이 돼서야 말을 했다. 어린 시절 여섯 스승들로부터 무공을 배웠지만, 타고난 재주가 심하게 부족했다. 스승들은 “자질이 형편없다” “열을 가르치면 하나를 알까 말까 하다”며 한탄한다. 진융 작품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협객으로 그려지는 <사조영웅전> 곽정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소설 초반까지 곽정의 무기는 무공이 아니라 인품이다. 강호의 고수들은 그의 착하고 우직한 성품,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신경쓰지 않는 기개 등을 높이 산다. 이후로 곽정은 우연히 천하의 고수들을 차례로 만나 무공비급들을 전수받으며 실력이 날로 ‘업그레이드’ 된다. 그는 사조 삼부작의 두번째 작품 <신조협려>에 이르러서는 ‘천하오절’(강호의 최고수 5명)에 들 정도가 된다.

진융(본명 차량융)의 협객들은 후기작으로 갈수록 ‘대협’의 전형적인 모습을 벗고, 방황을 거듭하는 현실 속 인간과 닮아간다. <사조영웅전>의 곽정이 유교적 협객의 전형이라면 마지막 작품 <녹정기>의 주인공 위소보는 협객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조차 애매하다.

[커버스토리]‘사조영웅전’의 진융, 중원서 방황하는 보통 사람…어딘가 나와 닮은 무림고수

■ 방황하는 협객

곽정이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유교적 협객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은 소설에 등장하는 실존인물 칭기즈칸과의 대화에서다. 어린 시절 곽정 모자를 거둬줬던 칭기즈칸은 죽기 직전 곽정에게 묻는다. “역사상 내가 세운 대국보다 더 큰 나라는 없었다. 고금을 통해 어느 영웅이 나만 하겠느냐.” 곽정은 답한다. “대칸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 많은 피를 흘리고 이 넓은 땅을 차지했지만, 이것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백성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으니 공과를 가릴 수 없겠습니다.” 사조 삼부작 중 2부 <신조협려>부터는 주인공의 욕망과 개성이 조금씩 드러난다. 당시 사제 간 연애는 근친상간 수준의 금기로 여겨졌으나 주인공 양과는 스승 소용녀와 절절한 사랑을 나누며 부부가 되려 한다. 양과는 자신을 비난하는 뭇사람들을 향해 포효한다. “내가 누구에게 해를 끼쳤습니까? 당신이 나를 토막내어 죽일지라도 나는 그녀를 내 아내로 맞이할 겁니다.”

사조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의천도룡기>의 장무기 역시 됨됨이는 평범하다. 어쩌다 고수가 되어 ‘명교’라는 무리의 교주에 오르지만 포부는 없으며 자신에게 마음을 주는 미인 넷 가운데 그 자신도 누구를 사랑하는지를 몰라 우왕좌왕한다. 진융은 장무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약한 편이며 영웅적인 기개도 제일 약한, 어쩌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과 비슷한 성격일 것이다.”

<소오강호>의 주인공 영호충 역시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성격이다. 강호의 권력다툼에 휘말려서도 연인과의 은거를 중히 여긴다. 청나라 초기를 배경으로 하는 <녹정기>의 위소보는 의로운 일을 했는지조차 모호하다. 기녀의 아들로 태어난 위소보는 거짓으로 울거나 아첨하고 사기를 치며 생존하는 인물이다. 어쩌다가 황궁에 잠입했다가 ‘소년’ 강희제와 친구가 되는데, 강희제가 부탁하는 일들을 잘 처리해준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청나라를 뒤엎고 명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천지회’ 사람들과도 친구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위기에 놓일 때마다 도와준다. 위소보는 천지회로부터는 강희제를 죽이라는 압박을 받게 되고, 강희제는 위소보에게 천지회를 소탕하라고 강요한다. 어느 쪽도 배신할 수 없는 그는 그냥 사라지기로 한다. 이렇게 파격적인 전개 때문에 <녹정기>는 출간 직후 진짜 진융 작품인지를 두고 논란까지 일었다. 진융은 <녹정기>를 마지막으로 절필한다.

무인들의 정신을 뜻하는 ‘협(俠)’의 연원은 사마천 <사기>의 ‘유협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마천은 ‘유협’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행위가 정의에 부합되지 않아도 그들의 말에는 믿음이 있고 행동이 과감하며 한번 승낙한 일은 반드시 실천하고 남에게 닥친 위급함 속으로 뛰어든다” 이러한 ‘협’의 정신은 중국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영웅적 행동’으로 정형화된다. 그러나 진융은 ‘협’을 과감하게 변주하거나 전복했다. 일부 중국 평론가들은 진융의 ‘협’ 재해석이 그를 예술가의 경지에 올려놓았다고 보기도 한다.

진융이 탄생시킨 협객들은 중국에서 다양한 영화·드라마로 재탄생했다. 위쪽부터 중국 안후이TV 드라마 <녹정기>의 위소보, 중국 드래곤TV 드라마 <사조영웅전 2017>의 곽정, 영화 <동사서독>의 서독(장궈룽), 영화 <동방불패>의 동방불패(린칭샤), 중국 후난위성TV 드라마 <소오강호>의 영호충.

진융이 탄생시킨 협객들은 중국에서 다양한 영화·드라마로 재탄생했다. 위쪽부터 중국 안후이TV 드라마 <녹정기>의 위소보, 중국 드래곤TV 드라마 <사조영웅전 2017>의 곽정, 영화 <동사서독>의 서독(장궈룽), 영화 <동방불패>의 동방불패(린칭샤), 중국 후난위성TV 드라마 <소오강호>의 영호충.

■ 지질한 선인과 영악한 악인

진융은 자신의 작품을 현실정치에 빗대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대신 “어느 시대에나 있는 보편적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고 했다. 진융을 연구해 온 임춘성 목포대 교수는 ‘위군자’와 ‘진소인’이라는 개념을 활용해 진융 작품 속 협객들을 분류했다. 위군자는 ‘군자연’하는 위선자, 진소인은 스스로 소인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덕목을 갖춘 현실적 인간이다. 임 교수는 진소인의 전형으로 <녹정기>의 위소보를 꼽는다. 기방과 도박장에서 ‘생존’해야 했던 그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친다. ‘협’과는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적어도 친구에 대한 의리만큼은 지킨다.

위군자는 <소오강호> 주인공의 스승 악불군이 그 전형이다. 그는 강호에 ‘군자협’이라 불릴 정도로 의와 예를 중시하는 인물이라 알려졌지만, 중반 이후 실체가 드러난다. 악불군은 무공비급 <규화보전>을 노리는 악당을 저지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교묘한 전략으로 <규화보전>을 차지했다.

임춘성 교수는 “위군자와 진소인 분석에서 핵심은 ‘실용이성’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실용이성이란 중국 학자 리쩌허우의 개념으로 사변이나 논리보다는 역사와 경험에 근거한 합리성을 뜻한다. 그는 ‘실용이성’이 중국인의 심리, 기질, 지혜, 장단점에 녹아들어가 있다고 보았다. 진융은 실제로 위소보에 대해 “관찰하고 체험했던 수많은 성격을 위소보에 융합시켰다”고 설명했다.

■ 문학의 경지에 오른 무협

진융 작품을 두고 중국에서는 “아속공상의 경지에 이르렀다”(베이징대 천핑위안 교수)고 평가한다. ‘아속공상’은 고급문화와 통속문화가 섞여 식자층과 서민이 함께 즐길 수 있음을 뜻한다. 무협소설은 대중소설이지만 진융은 자신의 소설에 철학과 역사, 당대의 문화를 담았다.

이를테면 진융 작품 속 절세의 무공은 동양철학에 바탕을 둔다. <사조영웅전>에 등장하는 무공비급 <구음진경> 첫 장엔 이렇게 쓰여 있다.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 부족한 것을 보충한다, 이 때문에 허가 실을 이기고 부족한 것이 남은 것을 이긴다.” 곽정이 전수받는 공명권의 이치는 ‘그릇은 속이 비어야 쓰임이 있다’는 것이다. 부드럽게 힘을 뺄 때 공명권은 더 큰 위력을 발한다. <소오강호>의 잊혀진 고수 풍청양은 “검술이란 궁극적으로 흐르는 물이나 구름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도가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설명이다. 진융 작품이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한 성장소설’이란 평을 받는 이유다.

진융 작품의 저변에는 중국의 역사·문화도 흐른다. 사조 삼부작은 송나라 말기부터 명나라 건국 시기, <녹정기>는 청나라 초기가 배경이다. 소설엔 당대의 실존인물과 문학과 서화, 음악, 술, 음식문화가 쉴 새 없이 등장한다. 중국은 ‘인민의 문학’ ‘평민문학’ ‘사실문학’을 중시하는 5·4 문학혁명을 거치면서 무협과 같은 통속소설을 경시해 왔다. 그러나 진융의 작품은 역사와 철학, 문학이 담겨 있어 품격을 점차 인정을 받았다. 진융 소설은 1990년대 들어 중국에서 정식출간됐고 베이징대는 1994년 그에게 명예교수직을 부여했다. 이후로는 그의 글을 연구하는 ‘김학’이라는 학문이 등장했을 정도다.

진융의 팬 중엔 ‘유명인’이 많다. 알리바바의 마윈은 자신의 별칭을 ‘풍청양’으로 지었다. 덩샤오핑은 진융의 작품이 중국대륙에 정식출간되기 전인 1980년대 초에 비밀요원을 보내 홍콩에서 그의 소설을 구해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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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이자 언론인 진융

진융은 1924년 중국 절강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 낸 귀족집안 출신이었다. 무협소설을 처음 접한 건 8세 무렵이었고 <수호전> <삼국연의>와 알렉산드르 뒤마의 <삼총사>를 즐겨 읽었다. 1945년 항일전쟁 승리 후 그는 국제신문 번역 기자가 되고 법대에 진학해 국제법을 전공한다. 그는 외교관이 되고자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주계급 출신이라는 점, 국민당 소속의 중앙정치학교를 다녔다는 사실 때문에 사상개조를 받고 당에 입당해야 한다는 강요를 받는다. “결국 자유가 없는 공산당의 엄격한 규율을 싫어한”(‘김용 무협소설의 반무협적 특징 연구’, 김현우) 그는 잠시 자신이 신문기자로서 파견됐던 홍콩으로 떠난다. 35세 때 홍콩에서 ‘밍바오’라는 신문을 창간한 그는 평생 1만여 편의 사설을 썼다고 한다.

진융의 소설은 1980~1990년대 해적판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특히 고려원 출판사의 <영웅문>으로 사조 삼부작을 접한 독자들이 많다. 진융 작품의 정식출간을 중개하기 위해 김영수 사마천학회 이사장이 그를 찾았을 때 진융은 한국에 나돌고 있는 해적판 30여종을 내놨다고 한다.

진융 작품은 중국대륙의 역사를 바탕으로 중국인들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권 독자들까지 사로잡았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무협을 ‘동양의 판타지’로 받아들이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점, 삼국지 등을 통해 중국의 역사적 배경을 한국인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 점, 무엇보다 기존의 무협지가 전통적 영웅상을 그렸다면 진융은 다양한 종류의 인간적 성격과 고뇌를 가진 영웅을 등장시켜 드라마틱하고 재미가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진융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초기작 <사조영웅전>에는 남송 백성들의 시각이 많이 투영돼 있지만, 후기작에는 타 민족의 관점에서도 중국역사를 바라본다. 이를테면 <천룡팔부>의 소봉은 한족으로 알고 자란 거란인이다. 위소보는 어느 민족인지조차 불확실하다. 위소보의 어머니인 기녀 위춘방은 “당시 나를 찾은 손님이 많아서 누가 생부인지 모른다”고 답한다.

하지만 진융 소설이 교묘한 국가주의를 추구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용 무협소설의 중국상상 연구’(유경철, 2004년 서울대 박사학위논문)는 “진융 소설이 중국인들이 상상하는 중국의 모습을 가장 핵심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면서 “진융의 무협소설은 양강중국(강한 중국), 문화중국, ‘중국의 협’을 상상해냄으로써, 중국인들에게 근대 이후 좌절의 역사를 대체할 자기 모습을 제공했다”고 지적한다.

정치적 텍스트로서는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진융은 강호의 유랑하는 협객들을 통해 다양한 ‘보편적 인간상’을 보여주었다. 선악구도를 넘어선 데다 무협에 역사, 문화의 무게와 깊이를 더했다. 진융이 그려낸 수많은 협객 가운데 자신이 어느 인물에 가장 가까운지를 성찰해보는 것이, 어쩌면 소설가로서의 진융이 가장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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