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기후변화 막으려면 도로도 ‘다이어트’ 해야

2019.07.13 17:20 입력 2019.07.13 18:05 수정

자가용과 노후차량 운행 제한 등 탄소 배출 줄이는 교통체계 전환을

교통부문은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해 유럽환경청(EEA)의 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교통부문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양적으로도 1990년 대비 75% 증가했다. 그 중에서도 주된 배출원은 자가용 승용차다. 승용차에서 나온 온실가스는 2016년 교통부문 배출량의 약 60%에 해당한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는 자가용 승용차 교통량의 감축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는 곧 대중교통과 자전거 등 친환경 교통수단의 확충을 의미한다.

교통량 감축을 위해 선진도시들이 선택한 주요 방법은 공해차량의 도심 진입 제한이다. 배기가스를 많이 내는 차량의 통행을 막거나 비용을 내도록 하는 제도다. 전세계 주요 도시가 공해차량의 도심 진입을 제한하는데 ‘저배출가스지역(LEZ)’에서 내연기관차의 진입을 금지하는 ‘무배출가스지역(ZEZ)’으로 강화하는 추세다.

유럽의 경우 런던과 파리 등 14개국 220여개 도시가 저배출가스지역 제도를 시행하거나 준비 중이다. 영국의 레딩과 프랑스의 낭트, 헝가리 부다페스트처럼 거주자와 대중교통, 긴급차량 외의 자동차 출입을 금지하는 지역을 설정한 곳도 여럿이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올해부터 자가용 차량의 도심 운행을 전면 금지했다. 차량 진입 금지구역 바깥에 주차시설을 마련해 불편을 최소화하고, 매년 일정 수의 주차공간을 공유차량을 위한 주차공간으로 바꾸기로 했다.

일본 도쿄도 2003년부터 LEZ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홍콩은 2015년부터 센트럴, 코즈웨이 베이, 몽콕 등 3개 지역의 전세버스 운영에 대해 LEZ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수도권 내에서 노후 경유차의 운행을 단계적으로 제한하기 시작했다. 2005년 말 이전 제작된 2.5톤 이상의 노후 경유차 중 자동차 종합검사에서 불합격하거나 저공해 조치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차량을 대상으로 하는 제한적 조치다. 여기서도 기초생활수급자 소유 차량은 제외했다. 정부는 승차공유 서비스의 경유차 사용을 금지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녹색자전거봉사단연합 회원들이 지난 7월 10일 서울 송파구청 앞에서 승용차 2부제 의무화와 차 없는 거리 확대 등을 촉구하는 ‘미세먼지 저감 나부터 시민실천활동’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녹색자전거봉사단연합 회원들이 지난 7월 10일 서울 송파구청 앞에서 승용차 2부제 의무화와 차 없는 거리 확대 등을 촉구하는 ‘미세먼지 저감 나부터 시민실천활동’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 ‘녹색교통지역’ 시행
유럽에 비해 기준이 아직 낮지만 LEZ와 유사한 제도가 서울시에도 도입됐다. 서울시는 지난 7월 1일부터 자동차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의 한양도성(16.7㎢) 내 운행 제한을 시범적으로 시작했다. 올해 12월부터는 과태료도 부과할 계획이다. 서울시 녹색교통지역은 효자동과 사직동, 삼청동 등 종로구 8개동과 소공동, 회현동, 명동 등 중구 7개동 등 한양도성 지역에 걸쳐 있다.

서울시 교통정보과 최종선 팀장은 “한양도성 경계를 지나는 도로 상의 48개 지점에 119개의 단속 카메라를 설치했다”며 “카메라가 지나가는 모든 차량의 번호판을 인식해 5등급 차량의 운전자에게 단속 대상임을 문자와 카카오톡으로 알려준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알림은 5~8초 내로, 카카오톡에 가입되지 않은 사람의 경우 통신사 문자로 약 5분 내로 알려주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이미 5등급 차량의 경우 소유자들에게 공해저감장치를 달거나 조기폐차할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개별적으로 보낸 상황이다.

녹색교통지역은 ‘지속가능교통물류발전법’에 따라 설치된 곳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교통혼잡 등을 고려해 자동차 운행 제한조치 등 교통 수요관리 조치를 시행할 수 있다. 서울시는 보조금 지원과 단속을 병행할 계획이다.

자동차 배출가스등급제 산정 기준에서 5등급에 속하는 차량은 올해 6월 말 기준 247만대이다. 이 중 서울시에 등록된 수는 24만8000대 정도다. 시행 첫날 한양도성 내 단속구역을 출입한 5등급 차량은 7389대였다. 전국 비율로 볼 때 0.3% 정도지만 실제 단속이 이뤄질 경우 과태료는 상당한 액수가 될 수 있다. 과태료는 현행법 시행령상 50만원인데, 이를 시장 권한으로 절반 감액할 수 있어 25만원으로 책정한 상태다. 서울시 관계자는 “과태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속가능교통물류발전법 시행령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통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차량이 다니는 도로를 줄일 필요도 있다. 차도를 줄여 생긴 공간은 버스중앙차로 등 대중교통이나 보행로, 자전거 도로로 활용할 수 있다. 교통혼잡을 줄이기 위해 차도를 넓혀도 교통혼잡 해소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런던 등의 사례에서 관찰됐기 때문에 차라리 차로를 줄여 대중교통과 보행자 친화공간으로 만드는 게 낫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황보연 서울시 도시교통실장은 “녹색교통구역에서는 자동차 통행속도 등 차량 이용자의 편의성보다 보행자 편의를 강조한다”며 “을지로와 퇴계로 등 도로를 다이어트해 자전거 길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차도를 줄이면 승용차 수요관리가 가능하고 공간을 보행자와 자전거, 전동 퀵보드와 같은 퍼스널 모빌리티에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황보연 실장은 도심 교통이 혼잡한 지역을 녹색교통지역으로 추가 지정하고 단계적으로 차량 출입을 제한하는 배출가스 등급도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녹색교통지역의 배출가스 5등급 차량제한 단속에 걸린 차주에게 보내는 카카오톡 고지화면 예시. 서울시

서울시 녹색교통지역의 배출가스 5등급 차량제한 단속에 걸린 차주에게 보내는 카카오톡 고지화면 예시. 서울시

자전거 전용도로 확충해야
황보연 실장은 “경전철 10개 노선을 추진하는 등 대중교통을 편리하고 안전하고 신속하게 하면서 동시에 자동차의 도심 진입에 사회적 비용을 물게 해 자동차 위주에서 사람을 우선하는 정책으로 바꾸고 있다”며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도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보행과 자전거 이용이 편한 구조로 도시공간도 재편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녹색교통지역의 목표는 2030년까지 승용차 교통량을 30%,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퇴계로 전체에 대해 차로를 축소하는 등 녹색교통지역을 중심으로 차로를 줄이고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를 넓히는 도로공간 재편을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출·퇴근시간대 대중교통 수송을 늘리기 위해 2017년 이후 광흥창~국회의사당을 오가는 8761버스 등 7개 노선에 대해 맞춤형 버스도 도입했다.

대중교통의 전기차 전환도 계획하고 있다. 2025년까지 서울시 전체 시내버스 7405대 중 100대를 전기버스로, 7대를 수소버스로 바꾼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버스 증차 계획은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의 적정 버스량은 6000대 중반 정도라는 연구 결과가 있어서 증차를 고려하지는 않고 있다”며 “증차보다는 출퇴근 맞춤버스 등 시민 수요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의 경우 2차선을 새로 만들 때 한 개 차로는 자전거 도로로 만들도록 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신규 도로 설치 시 자전거 도로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방안도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서병철 서울시 자전거정책과장은 “앞으로는 차도를 줄여서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게 원칙”이라며 “단독으로 할 수 없고 서울경찰청의 관련 부서와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의 경우 차량 속도에 중점을 두고 있어 협의가 쉽지는 않다고 전했다.

현재 서울시의 전용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 전용도로와 자전거 전용차로, 분리형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를 합해 총연장 604㎞에 달한다. 비분리형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와 자전거 우선도로를 합한 비전용 자전거 도로는 312㎞다. 서울시는 보도를 줄여서 분리도로를 만들거나 자전거와 보행자 겸용으로 하는 분리형 도로를 설치해 전용도로를 만드는 방식으로 자전거 도로를 늘릴 계획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도시재생·교통혁신 교류 목적으로 중남미를 순방 중인 박원순 시장이 귀국하는 7월 중순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가 선진도시와 보조를 맞추려는 잰걸음에 나섰지만 여전히 전국 대부분의 지역이 자가용 위주의 교통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경우 수송부담률 중 대중교통이 65% 이상을 차지하고, 수도권은 절반을 차지한다. 부산도 승용차보다 대중교통 분담률이 높다. 그러나 이들 지역을 제외하곤 대중교통 분담률이 채 30%도 안 되는 곳이 많다.

송상석 녹색교통 사무처장은 “미세먼지 때문에 비상저감조치로 차량 운행을 제한한다지만 정작 지자체에서 망설이는 이유는 대중교통이 ‘꽝’이기 때문”이라며 “대중교통이 편리하려면 차량 이용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데 표를 의식해 정책 시행을 꺼린다”고 말했다. 그는 교통량을 줄이지 않으면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정체를 줄인다는 소위 ‘스마트 도로’도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시 한양도성 내로 진입하기까지 1㎞가 남아있다고 알리는 ‘녹색교통지역’ 표지판이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도로 상에 설치되어 있다. 서울시

서울시 한양도성 내로 진입하기까지 1㎞가 남아있다고 알리는 ‘녹색교통지역’ 표지판이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도로 상에 설치되어 있다. 서울시

불편함을 감내하는 인식 전환도 필요
시민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자동차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중대형차의 비율이 80%를 넘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송 사무처장은 “배출가스와 연비에서 유리하다고 ‘클린디젤’이 늘었지만 그것조차 대형 스포츠유틸리비 차량 위주로 늘면서 평균 배출량은 오히려 더 늘었다”고 말했다.

시내 주차요금이 싼 것도 차량 이용을 부추긴다. 런던과 도쿄의 경우 주차요금이 시간당 1만5000~1만8000원 수준이다. 서울에 비해 대체로 2~3배 높다.

전기차 전환과 내연차의 단계적 퇴출, 대중교통 확대와 차량 통행 제한도 모두 시민들의 협조로 가능한 일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경우 새로 선출된 시장이 지난 7월 2일 LEZ를 폐지하자 오히려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약 6만명의 시민들이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마드리드 센트럴’에서 시위를 벌였다. LEZ 폐지에 따른 환경오염도 즉각 확인됐다. 도심의 교통체증은 5% 증가했고, 대기오염도는 유럽의 법적 기준을 넘어섰다.

이인성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대중교통 활성화가 교통 수요관리의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대중교통의 전기화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시리즈 끝>

디젤차 퇴출운동 벌이는 의사 아라쉬 살레
“질병 예방과 생명 구하기 위해 디젤 폐기해야”


영국의 의료단체 ‘메드액트’(Medact)는 경유차의 배기가스가 석면과 같은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이를 퇴출해야 한다는 운동을 3년 전부터 벌이고 있다. 이 단체의 활동가인 아라쉬 살레(사진)는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의 호흡기 전문의이자 임페리얼 킹스칼리지 런던의 연구원이다. 그는 지난해 8월 영국 폭스바겐 사옥 앞에서 디젤차 퇴출을 촉구하는 평화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와 e메일 인터뷰를 했다.

아라쉬 살레

아라쉬 살레

-디젤차 퇴출운동에 나선 때는 언제부터이며 계기는?

“디젤에 반대하는 의사 모임은 수백 명의 보건 종사자가 흰 가운을 입고 얼굴에 마스크를 착용하며 시위를 벌인 2016년 시작됐다. 디젤이 건강문제이며, 질병을 예방하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폐기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다. 화석연료에서 유래한 작은 대기오염 입자와 가스가 건강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행동을 뒷받침했다.”

-디젤차는 환경과 건강에 어떤 위험을 주는가? 의학분야에서 최근 새롭게 밝혀진 디젤차의 위험성은?

“고온에서 디젤을 태우면 높은 수준의 오염물질, 특히 이산화질소와 같은 가스와 작은 오염입자가 나온다. 이런 오염물질은 어린이의 폐 발달을 방해해 어린이와 성인의 천식과 심장병 및 조기 사망을 유발한다. 이미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고 이러한 가스에 노출된 사람들은 병원 치료가 필요할 만큼 심각한 경우에 이르기도 한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디젤 유발 오염물질은 주요 도로 인근에 살고 있는 어린이의 인지능력 저하를 비롯해 저체중, 폐암, 당뇨병, 뇌졸중, 치매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에서 벌인 디젤차 퇴출운동의 현황과 성과를 알고 싶다.

“지난해 영국 정부는 ‘로드 투 제로’(Road to Zero) 전략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신형 자동차의 절반 이상을 초저공해차로 바꾸고, 2040년까지 실질적으로 배출가스를 제로로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국 정부가 유독성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여러 건의 재판에서 진 후 정부는 6개 도시에 런던의 모범을 따라 청정대기 지역을 설치할 것을 요청했다. 이는 지역 내에서 주행할 수 있는 차량의 종류를 제한한다. 하지만 변화가 너무 느리게 일어나고 있고, 오염 수준이 40개 이상의 도시에서 법적 기준을 초과하고 있어 충분히 야심적이지 않다. 우리는 이런 조치가 공중보건 위기를 다루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더 강력하고 구속력 있는 입법안을 제정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기획]기후변화 막으려면 도로도 ‘다이어트’ 해야


-유럽에서 디젤차의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지난해에만도 여전히 500만대에 가까운 디젤차가 신규로 팔렸다. 여전히 많은 소비자가 디젤차를 선택하는 이유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시민들이 오염도가 높은 디젤차를 계속 구매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수백만 파운드를 썼다. 폭스바겐과 크라이슬러, 닛산을 비롯한 많은 제조사들이 실험실에서는 배출수준을 허용치에 맞출 수 있었지만 현실세계에서는 배출량을 몇 배 더 늘렸다. 자동차회사가 배출가스를 깨끗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디젤차로 인한 오염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법안을 훨씬 더 엄격하게 해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한 영국의 멸종 저항운동과도 관련이 있나?

“두 조직에 속한 회원이 있고 공통의 목표를 공유하지만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독성 대기오염을 피하기 위해 취할 조치가 기후 붕괴를 피할 수있는 유일한 방법과 같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최근 환경위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급증하고 있다. 이는 학생단체 ‘학생 파업자(Student Strikers)’와 그 이전에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이들과 같은 많은 새로운 운동단체들의 활동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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