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소고기로 감염된 ‘무구조충’과 달리 돼지가 옮기는 ‘유구조충’은 위험

2021.08.13 21:36 입력 2021.08.13 21:38 수정
채종일 한국건강관리협회장,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국내에서 발견된 무구조충 성충의 모습(한국건강관리협회 기생충박물관 소장). 무구조충은 길이 18m에 달하는, 태국 남성에서 수집된 충체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 발견된 무구조충 성충의 모습(한국건강관리협회 기생충박물관 소장). 무구조충은 길이 18m에 달하는, 태국 남성에서 수집된 충체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최근 한 태국 남성의 배 속에서 18m짜리 기생충이 나왔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일이 있었다. 환자는 태국 북동부 지역의 농카이주에 사는 67세 남성으로 복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의료진이 환자에게 구충제를 주었고, 그 후 대변과 함께 배출된 충체의 길이는 무려 18m나 됐다. 무구조충이란 진단이 나왔고 덜 익힌 쇠고기를 섭취해 감염된 것으로 파악됐다. 무구조충 성충의 길이는 3~8m 정도가 보통인데, 길이가 18m에 달한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이다(가장 긴 것으로 판단된다).

무구조충은 쇠고기 육회나 생고기를 자주 먹어서 걸리는 장내 조충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1만7000년 전 신석기시대에 농경사회가 형성되면서 농사일에 소를 활용하는 한편 소의 고기를 식용으로 섭취하며 유행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일한 종숙주인 사람의 배 속에서 자란 성충이 충란(알)을 낳게 되면 충란이 대변을 통해 외계로 나가고 소가 풀을 뜯어 먹을 때 풀과 함께 들어가 소에 감염된다. 중간숙주인 소에 섭취된 충란은 근육이나 조직에서 낭미충(囊尾蟲·작은 주머니처럼 생긴 유충 단계)으로 자라게 되고, 낭미충이 들어 있는 쇠고기를 날로 먹을 때 다시 사람에 감염된다. 소를 키우는 농경사회가 진행되면서 ‘사람-소-사람’의 무구조충 감염 고리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무구조충은 우리나라 여러 의서(醫書)에도 기록되어 있다. <동의보감>에는 촌백충(寸白蟲)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짧고 하얀 색깔의 기생충’이란 뜻이다. 성충으로 자란 후에는 긴 충체의 마지막 꼬리 부분에서 편절 일부가 조금씩 끊어져 대변으로 나오게 된다. 끊어져 나온 편절은 칼국수 조각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꿈틀거리며 움직이기도 한다. 흰 색깔의 편절이 완전한 1마리의 성충인 것으로 잘못 생각하여 촌백충 또는 촌충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촌백충 또는 촌충은 긴 충체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 후부터는 무구조충이라 부르게 되었다.

무구조충은 머리에 갈고리가 달려 있지 않은(사촌 격인 유구조충은 머리에 갈고리가 달려 있다) 허리띠처럼 긴 충체라는 뜻이다. 편절 토막이 긴 몸체로부터 조금씩 떨어져 나오는 이유는 종족 보존을 위한 자연적인 현상이다. 편절 하나하나마다 자궁이 있고 자궁 안에 충란이 가득한데 몸체에서 떨어져 나올 때 편절이 찢어지게 되며, 이때 자궁벽이 함께 찢어져 그 틈으로 충란이 바깥으로 배출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충란들은 대변에 섞여 외계로 나와 주변에 있는 소를 감염시킴으로써 종족 보존의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무구조충 감염자가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이다. 무구조충은 길이도 길고 부피도 매우 큰 기생충이지만 아랫배가 좀 아프거나 거북한 정도 이외에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 점이 특이하다. 그러나 돼지가 옮기는 유구조충의 경우에는 전혀 다르다. 사람을 돼지로 착각(?)한 결과인지 사람 조직이나 근육에도 낭미충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 몸, 특히 뇌에 낭미충이 형성되면 임상적으로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쇠고기는 육회나 생고기로도 먹지만 돼지고기만은 반드시 잘 익혀 먹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최근 20~30년 동안 국내에서 유구조충 환자가 발견된 일이 없는 점은 극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채종일의 기생충 X파일]⑤소고기로 감염된 ‘무구조충’과 달리 돼지가 옮기는 ‘유구조충’은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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