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빈소에서 난 어떤 기억을 떠올릴까

수술과 간병

2012.11.01 23:39
유세희/인터넷 경향신문 인턴기자

“내 곁에 아주 오래오래 머물러 주었으면”

“엄마 수술하기로 했다”라고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담담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순간 마음이 철렁했지만 엄마 옆에서 간호를 하겠다고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처음 발견했을 때 수술했으면 편했을 텐데 괜히 병을 키웠다며 외려 화를 내기도 했다. 엄마 몸속에 자리 잡은 혹이 너무 커져버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고 엄마가 난생 처음 수술대 위에 오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던 것도 같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엄마가 암수술을 하신다고 펑펑 울며 내게 전화했던 친구가 떠올랐다. 그 때 나는 친구의 기분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함께 울며 위로했었다. 그때는 ‘엄마가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고 나와는 먼 이야기일 거라 생각해서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담담했던 목소리와는 달리 고향에 내려가서 오랜만에 마주한 엄마는 여린 성격 그대로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일부러 엄마에게 심각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며 엄마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애썼다. 건강해지려고 하는 수술이고, 어려운 수술이 아니니 믿고 편하게 수술을 받아야 잘된다고 계속 이야기해줬다.

수술하는 날 나는 엄마가 눈물이라도 보이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 엄마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평정심을 잃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엄마는 편안한 모습으로 수술에 들어갔고 나는 마음속으로 무사히 수술이 잘 끝나기를 기도했다. 1시간 반을 예상했던 의사의 말과 달리 엄마의 수술 시간은 길어졌다. 엄마가 수술할 때 어떤 기분이었냐고 묻는 내게 친구는 엄마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얘기했다. 나는 무슨 그런 소리를 하냐며 타박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친구와 같은 기분이었다. 위험하거나 큰 수술은 아니었지만 세 시간 내내 엄마에게 잘못했던 일들만 떠올랐다.

나는 언제나 부모님이 나에게 거는 기대가 버거웠고, 나를 위해 하는 말들을 지나친 간섭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착실히 부모님의 말을 잘 들어주던 딸이 스무살이 되어 제 뜻대로 살게 두라며 반항한 것은 부모님에게 충격이었다. 특히 나보다도 마음이 여리고 눈물도 많은 엄마는 앞에서 나에게 모진 소리를 하고 싸우면서도 뒤에서는 눈물을 보이시는 그런 분이셨다. 한 번은 엄마에게 자식이 전부인 삶을 사는 건 좋지 않다고, 그러면 엄마도 힘들고 나도 힘들다고 잘난 척을 했던 적이 있다. 그 때의 엄마의 서운한 표정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엄마는 부모에게 자식은 전부인 거라고 어떤 짓을 해도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게 부모라는 얘기를 하셨다. 그렇게 세 시간이라는 긴 수술시간 동안 엄마에게 상처를 주었던 무수한 말들이 떠올랐다.

[엄마 빈소에서 난 어떤 기억을 떠올릴까]수술과 간병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세 살 때.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어른들이 치워둔 깨진 유리병에 무심코 손을 대었고 엄마는 온통 피로 물든 수건을 손에 감싼 나를 업은 채 병원으로 달려갔다고 했다. 아프기도 하고 새빨간 피를 보고 놀라 엉엉 우는 딸을 수술실에 들여보낸 엄마는 수술 내내 울며 당신이 대신 다쳤어야 했는데 하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자식이란 부모에게 그런 존재다. 자식이 아프면 백번이고 대신 아파주고 싶고 자식이 서운하게 하고 실망시켜도 그래도 내 자식이니 이해하고 감싸는 전부인 존재.

아직 철없고 이기적인 딸은 3일 동안 엄마를 간호하며 엄마의 고통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엄마에게 적어도 위안이 되는 존재이고 싶었다. 한 시간 마다 상황을 체크하러 오는 간호사로 인해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엄마에게 물을 계속 마시게 하고 더 아픈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 비록 내가 감히 엄마에게 받는 사랑만큼 엄마를 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감사하고 있다고 그렇게 알려주고 싶었다.

[엄마 빈소에서 난 어떤 기억을 떠올릴까]수술과 간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에 아들이 늙은 어머니의 손을 만지며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녀가 내 곁에 아주 오래오래 머물러 주었으면’하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아들이지만 엄마를 생각하는 아들이 애틋한 마음이 너무 잘 드러나서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해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수술로 퉁퉁 부은 엄마의 손을 보며 그 대사와 연기를 이제야 온전히 이해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딸이 항상 걱정되고 보고 싶은 엄마에게, 먼저 전화해서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만 해주어도 좋아하는 엄마에게 내가 바랄 것이 무엇이 있을까.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봐주고 언제나 그랬듯 기쁠 때, 슬플 때 함께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내 곁에 오래오래 머물러 주었으면.

엄마가 퇴원하던 날, 엄마에게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딸, 엄마 빨리 회복하려고 공원에서 운동하고 있어. 간호하느라 수고했어, 고마워’ 자식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던 나에게 고마워하는 엄마의 마음에 나는 새삼스럽게 엄마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

유세희/인터넷 경향신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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