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가로지르는 태백산맥의 동쪽. 높은 산에서 바다로 흘러내리는 지형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구름도 지쳐 쉬어 가는 산. 그 너머 동쪽에는 즐거운 여름이 있다.
백두산에서 동쪽 해안을 따라 태백산을 거치고 남쪽의 지리산까지 이르는 백두대간.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명산을 품고 있다. 명산의 갈래마다 이름난 관광지가 늘어서 있다. 그 중 강릉은 사계절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강릉은 서울의 1.72배에 이르는 면적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이 산이다. 바다와 산 사이에 마을이 있고 굽이굽이 골짜기는 여름 휴양지로 인기다.
시원한 산바람, 즐거운 바다바람
더위를 피해 떠나는 시원한 곳 피서지. 대한민국에서 피서지 찾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피서지로 첫 번째 꼽는 지역은 역시 강원도다. 평균고도가 높아 기온이 낮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차를 타고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면 시원함이 느껴진다. 문막을 지나 평창에 이르니 30도를 넘던 기온이 23도로 뚝 떨어졌다. 터널 두세 개를 더 지나니 강원도 산 속으로 들어선다. 산 능선으로는 구름이 걸려있다. 푸른 나무 사이사이에서는 안개가 피어올라 구름과 만난다.
아직은 길목이다. 잠시 시원한 산 공기를 맛보고 오늘의 목적지 강릉으로 향했다. 대관령 터널에 이어지는 내리막을 달리니 바다 내음과 함께 활기찬 여름동네가 펼쳐진다. 백두대간 대관령에서 강릉시내까지는 불과 차로 15분. 짧은 구간에 이름난 명산들이 즐비해 풍경이 그만이다. 그만큼 여름휴가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풀냄새 가득한 산을 걸어도 좋고, 산 따라 흐르는 냇물에 발을 담가도 좋다. 온 몸을 풍덩 던져야 할 때는 백사장이 펼쳐진 바닷가로 가면 된다.
강릉의 산 속 마을 '산계리'
백두대간 따라 피서를 즐겨보기엔 '산계리'가 딱 이다.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는 정동진에서 차로 20분 거리다. 휴가철이라고 북적이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름 한철을 노린 상술도 이곳에선 찾아볼 수 없다. 마을 입구 냇가에 들어서니 한 무리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첨벙첨벙 냇가를 휘젓는다. '물고기 잡기 체험'이다. 지금이야 '체험'이라고 불려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시절에는 일상생활이었다. 어린 시절 경험을 떠올리며 어른들은 물고기를 몰아간다. 바위 위에서 뛰기도 하고 작은 돌들을 들었다 놨다 흔들어준다. 돌 틈에 숨어있던 고기들이 깜짝 놀라 헤엄친다. 아이들은 '물고기다'를 외치며 신이 났다. 그물로 길목을 막고 기다리던 아이들이 환호하며 들어올린다. 이 동네 말로 '산뚝지', '꾸그리', '피라미'라고 부르는 민물고기가 한데 걸려 올라온다. 백두대간보전회 회원인 배선복씨가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알려주며 설명한다. "이게 꾸그리라고 하는 건데 우리나라 토종 어종이야. 보기 힘든 건데 오늘 너희들 보라고 나왔나보다."
한 시간 남짓 물고기와 씨름을 하더니 어른들은 지친 표정이고 아이들은 아쉬운 표정이다. 그물로 잡아 올린 물고기를 모두 놔줘야 했기 때문이다. 젖은 옷을 입은 채로 냇가 앞 학교로 향한다. 지난 95년에 폐교된 옥계국민학교 산계분교다. 1940년부터 1천184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지만 산골 마을이라 아이들이 없어서 폐교가 됐다. 학교에는 간식이 준비돼 있었다. 냇가에서 물고기와 씨름하느라 지칠 때였다. 감자와 옥수수로 다시 힘을 낸다. 무공해 간식을 서둘러 먹고 아이들은 또 다시 학교 마당으로 뛰어간다. 여름의 더위는 오간데 없다.
알음알음 찾아오는 옥계 해수욕장
산골에서 놀고 나니 한 잠 자고 싶은 게 어른들의 마음이건만, 아이들은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럴 때를 대비한 묘책이 있으니, 해변으로 가는 것이다. 산계리에서 물이 내려가는 길을 따라 10분정도 달리면 해수욕장이 나온다. 영동고속도로가 동해까지 이어지면서 '해맞이 휴게로'로 알려진 동네, 옥계면이다. 여름 성수기에도 옥계해수욕장은 떠들썩하지 않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알음알음 찾아오거나 몇 몇 회사의 하계휴양지로 사용되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정동진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깎아지른 절벽의 해안단구가 보인다. 넓은 백사장과 대비돼 더욱 멋진 풍경이다. 바로 그 너머에 옥계 해수욕장이 있다. 정동진에서 불과 차로 5분 거리에 있지만 조용하고 여유로워 가족 휴양지로 즐기기 좋다.
아이들은 바다로 뛰어 든다. 어른들은 백사장에 몸을 파묻고 아이들을 바라본다. 철썩이는 파도에 신이 나서 뛰다가 모래사장에 탑을 쌓는다. 산과 계곡과 바다를 하루에 모두 즐긴다. 푹푹 찌는 더위도 이곳에선 딴 나라 이야기다.
인근에는 숨겨진 놀이 꺼리가 많다. 옥계면 낙풍천을 관리하기 위해 주민들이 타던 뗏목을 놀이로 만들었다. 20명까지 탈 수 있으니 여럿이 어울려 물위에서 수다 떨기 그만이다. 바닷바람을 막아내는 소나무도 절경이다. 오랜 세월 서로 붙어 지내다 결국 한 몸이 된 나무들이 눈에 띈다. 소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수박을 먹으면 일품이다. 산과 들을 오가며 즐기는 동안 백두대간 산 너머로 해가 진다. 파도소리, 냇물소리, 산바람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바로 이런 게 '피서'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에서 동해시 방면으로 내려간다. 옥계IC에서 나와 한라시멘트공장 방면으로 가면 산계리가 나온다. 이정표가 없고 갈림길이 많으니 인근 주민에게 물어보는 것이 제일 편리하다. 옥계IC에서 나와 좌회전 하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정표의 금진항 방면으로 다시 좌회전하면 옥계 해수욕장 표지판이 나온다.
관련정보/
산계리 쌍계산천마을 홈페이지를 통해 농촌체험을 할 수 있다. (http://sange.kr), 또한 코레일관광개발에서는 산계리 쌍계산촌마을과 옥계해수욕장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여름가족휴양캠프' 프로그램을 한국여성수련원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문의전화, 1544-7755)